지난해 있었던 제75회 칸영화제 개막작은 < Coupez! / Final cut >이었다.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은 미셸 아자나비슈스, 2011년작 <아티스트>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랑스의 거장이다. 그가 찍은 < Coupez! >가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는데, 이 영화가 일본의 저예산 독립영화를 그대로 따라 만든 리메이크작이란 게 특별한 관심을 모았다.

< Coupez! >의 한국제목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18년작 일본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그 원작이라 하겠다.

우리 돈 3000만 원 남짓에 배우들은 무보수 출연으로 알려진 원작 일본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투자 대비 1000배가량인 300억 원대 수익을 거뒀고 미국과 유럽까지 수출되는 성과를 올렸다. 무엇보다 정신 없는 촬영장의 소동극 가운데서 의외의 가족애와 영화에 대한 애정을 뽑아올리는 솜씨가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해도 좋겠다.

세상 어느 영화도 그렇게 대충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거라고, 보잘 것 없어보이는 상업영화 한 편도 얼마든지 중요할 수 있다고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시해보이는 저 영화 한 편도 나름의 치열함 가운데 만들어졌음을 알게 된다면 관객은 자세를 고쳐 앉아 영화를 바라보게 되리라고, 그렇게 믿는 작가가 저 스크린 너머 카메라 뒤에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포스터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프랑스에서도 포스터 ⓒ (주)까멜리아이엔티

 
저예산 좀비영화가 말하는 예술론

미셸 아자나비슈스가 주목한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을 테다. 할 일 없는 시간에나 보는 그깟 영화가 무어가 중요하냐고,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냐는 그렇고 그런 시선 가운데 그래도 이건 중요한 일이라고, 대중을 무시하지 말라고 외치는 그 모습에 매료됐던 것이리라. 피가 튀고 토사물이며 배설물이 곳곳에서 쏟아지는 이 어설프게 잔인하며 더러운 영화를 이토록 공들여 다시 찍은 데는 그런 관심이며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영화는 프랑스 어느 외딴 건물에서 시작된다. 좀비로 변한 사내가 옛 연인이었던 여자에게 다가서는 장면으로부터, 그 촬영을 하는 이들과 그들이 직면한 소동까지 한달음에 내보인다.

주인공은 싸고 빠르게 영상을 찍는 사내 레미(로맹 뒤리스 분)로, 일본의 어느 제작자는 그에게 성공한 일본 논스탑 좀비물을 프랑스판으로 찍어보자 제안을 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받아들인 제안이 바로 이 영화가 되는 것으로, 30여  분 동안 한 번의 컷도 없는 롱테이크 좀비물을 한달음에 찍어내야 한다는 과제가 그에게 주어진다.

세계적 감독이 저예산영화에 관심을 보인 이유

그러나 그것이 어디 마음처럼 되는가. 촬영현장에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져나온다. 누구는 취해 나자빠지고, 누구는 설사가 터져 촬영장을 뛰쳐나가며, 출연할 배우들도 제때 도착하지 않는 것이다. 동선은 꼬이고 촬영은 어긋나며 사람들의 마음 역시 상하는 게 다반사다. 레미는 과연 영화를 찍을 수가 있을까.

어느 한 분야에 깊은 애정을 쏟아본 이는 안다. 노력을 부어 성장을 거듭하다보면 제 기준치도 어느새 훌쩍 높아져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들인 노력이 대단치 않게 보이고, 어느 이의 마음가짐도 시시하게 여겨지기 일쑤다. 그러나 돌아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연 그러한가. 대단하거나 엄청나진 못해도 어느 작품들엔 제법 귀한 미덕들이 담겨있고는 한 것이다. 미셸 아자나비슈스가 주목한 3000만 원짜리 저예산 일본영화가 그러했고, 그 영화를 새로 만든 프랑스 영화도 어느정도는 그러하다. 영화계 거물이 그 작품을 알아보기 전 이름없는 대중들이 그 영화를 알아보았다. 그 이야기가 그대로 세계 영화의 중심지에 우뚝 섰다.

이제 나는 한 번쯤 더 생각하곤 한다. 그 시시한 어느 작품조차 나름의 치열함 가운데 쓰였을 수 있겠다고.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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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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