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회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회 ⓒ 성하훈

 
30년 영화운동의 시간이 쌓은 자료는 방대했다. 산더미 같은 비디오테이프는 지나간 세월과 함께 역사의 흔적이기도 했고, 한 개인의 열정이었다. 영화인과 관객들은 여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지난 3일 오후 광주독립영화관에서는 당대 시네마테크 운동의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23일부터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원초적 비디오 본색' 기획전의 연계 행사로 마련된 '영화광의 기원-90년대 시네마테크와 우리의 극장' 집담회는 시네마테크 운동의 지난 시간을 회고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세상을 돌아이들이 바꾼다고 하는데,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이런 전시회를 마련했다는 경탄스럽다. 젊은 세대와 접점을 마련해주지 않을까 싶다" 등 참석한 패널들은 이날 행사의 주역인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에 대한 헌사를 아끼지 않았다. 영화운동의 한 시대를 만날 수 있는 전시회에는 조대영이라는 개인의 삶이 응축돼 있었기에 이를 응원하고자 그 시절 함께 시네마테크 운동을 펼쳤던 동지들이 광주로 발걸음한 것이었다.
 
한국 영화운동은 '영화'에 방점을 둔 활동과 '운동'에 중심을 둔 활동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시네마테크 운동은 '영화'에 방점을 두고 새로운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전초 기지로서 역할을 했다. 쉽사리 접하기 어려운 해외 예술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였고, 사회변혁 운동을 지향했던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1990년대 한국 영화운동을 말할 때 시네마테크 운동은 매우 중요한 한 축이었다. 1980년을 전후한 시기 영화에 심취한 20대~30대 젊은이들이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을 통해 해외 예술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면, 1990년 이후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시네마테크였다.
 
예술영화관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었다. 지금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봉준호 감독과 최동훈 감독 등이 시네마테크를 드나들며 영화의 기초를 다졌을 만큼 한국 독립영화의 기반이면서 한국영화 성장의 발판이었다.
 
1990년 전후로 서울을 중심으로 부산 광주 대구 등 대도시에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시네마테크는 지역 영화운동의 거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해외에서 비디오를 구해 와 영화제를 열었고, 각 지역의 시네마테크가 연대해 비디오테이프를 공유하며 예술영화를 향한 갈증을 해소하게 했다.
 
사라진 비디오 문화 재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원초적 비디오 본색' 기획전은 광주 시네마테크 운동의 지난 시간을 담고 있으나, 1990년대 시네마테크 운동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비디오는 그 당시 대중문화의 주축이었다.
 
 지난해 11월 23일 시작된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회

지난해 11월 23일 시작된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회 ⓒ 성하훈

 
전시회의 원천은 조대영 동구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가 꾸준히 수집해 보유하고 있는 5만 7천 점의 비디오테이프다. 조대영은 1991년 굿펠라스라는 예술영화 동호회 모임을 시작으로 광주 시네마테크 운동을 개척했고, 이후 광주독립영화협회 대표를 역임하는 등 광주 영화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디오대여점을 직접 운영했을 만큼 30년 넘은 영화운동의 발자취가 수만 점의 비디오테이프에 담겨 있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이라는 기획전의 제목에서는 샤론 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이나 주윤발의 연기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웅본색>이 떠오른다. 1990년대 인기가 많았던 영화들이면서 비디오 전성기를 장식한 작품들이다. 주윤발과 주성치 등이 출연한 영화가 별도로 전시돼 있어 옛 추억을 불러오기도 한다.
 
전시회에는 중복되거나 파손된 것을 제외한 2만 5천 점의 비디오테이프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1990년대 시네마테크 활동 과정에서 개최했던 영화제 포스터나 자료집 등도 함께 볼 수 있으나 수만 점의 비디오테이프로 장식된 전시장은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은 옛 비디오대여점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별도로 19금 영화들을 모아 놓은 레드존도 구성돼 주로 비디오 영화로 출시됐던 에로영화들을 모아 놨다.
 
40~50대에게는 1990년대 비디오 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이면서 20대에게는 겪어보지 못한 생소한 풍경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DVD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밀려난 비디오산업은 2016년 이후 단종됐다.
 
시네마테크 운동은 결국 관객 운동
 
90년대 시네마테크 운동을 회고하기 위해 마련된 집담회는 비디오가 중심이 됐던 당시 활동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참석한 패널들은 전국 각 지역 시네마테크 운동 대표자들이었다. 
 
사회를 맡은 조영각 피디는 문화학교 서울에서 기획을 책임졌고,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는 문화학교 서울 사무국장이었다. 김희진 감독은 1993년 부산 씨네마테크 1/24을 시작해 부산독립영화협회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강민구 대전 아트시네마 대표는 1994년 황규석의 영화세상에 합류하면서 대전 시네마테크 운동에 뛰어든 이후 독립예술전용관까지 만들었다. <밀정>을 기획한 이진숙 피디는 1990년대 비디오체인점인 영화마을 종로점을 운영했다. 하나같이 비디오 시대의 산증인들이다.
 
 3일 오후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열린 ‘영화광의 기원-90년대 시네마테크와 우리의 극장‘ 집담회

3일 오후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열린 ‘영화광의 기원-90년대 시네마테크와 우리의 극장‘ 집담회 ⓒ 성하훈

 
이진숙 피디에 따르면 당시는 영화보다 비디오 시장이 컸기에 영화 제작비 절반을 비디오 판권료로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시네마테크 운동은 영화의 저변을 넓히는 관객운동의 성격이 짙었다. 조대영 동구 인문학당 프로그램 디렉터는 "20대 당시 제가 봤던 좋은 영화를 광주의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문화학교 서울 도움받았고, 관객운동을 염두에 두고 영화제 등을 개최했다"고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부산에서 활동했던 김희진 감독은 "프랑스문화원에서의 영화 공부는 확장성이 없었기에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고, 강민구 대전 아트시네마 대표는 "지역 대학에 영화학과가 없었기에 비전공자들이 모여 사무실을 얻어 영화 학습을 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시네마테크 운동의 특징은 불법의 장벽을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느슨한 상황도 한몫했으나, 군사독재 시절 문화예술 통제의 영향이 남아 있던 시대였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법 조문에 없음에도 16mm 필름으로 제작된 민중 영화를 불법으로 몰아 정권 차원의 탄압을 자행하던 시절이었기에, 이를 뛰어넘기 위한 불법이 필요한 시기였다.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의 회고처럼 한국영화의 발전과 새로운 영화에 대한 고민도 작용했기에 일본까지 가서 비디오테이프를 구해왔고, 이는 다시 복사돼 전국의 시네마테크로 퍼졌다. 김희진 감독은 "화질이 좋은 원본을 갖고 복사한 테이프를 돌려주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문화학교 서울과는 기획전을 열 때 번역을 나눠서 하는 것으로 협력했다"고 시네마테크 활동을 설명했다.
 
당시 전국적 시네마테크 활동은 한국영화 르네상스와 부산영화제 출발 등과 맞물리며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냈다. 각 지역 독립영화협회가 만들어질 때 기반이 됐고, 독립영화 활동의 촉매제가 됐다. 지금의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때 시네마테크 운동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재단장해 전시회 재개 예정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회. 2월 19일까지 예정됐으나, 관람객들이 많아 재단장을 거쳐 이어질 예정이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회. 2월 19일까지 예정됐으나, 관람객들이 많아 재단장을 거쳐 이어질 예정이다. ⓒ 성하훈

 
지난 시절을 만날 수 있는 특징 때문인 듯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회를 찾은 집담회 참석자들의 감회도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전시회를 찾는 관람객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20대 관람객들이 많아 2015년 개관 이후 지난 7년간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시 행사 중 가장 흥행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장 안은 평일인데도 둘러보는 관람객들이 적지 않았다. 원래 2월 19일로 끝날 예정이었으나 재단장을 통해 시즌2로 이어갈 예정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하지만 조대영 프로그램 디렉터는 전시회 이후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비디오테이프가 어디로 갈지 정해진 바가 없다며 최악은 창고를 구해 보내는 것이지만 비디오 아카이브에 대한 논의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며 "광주의 자산으로 만들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비디오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수많은 비디오테이프는 산업폐기물로 전락해 버려졌으나 오랜 시간 이를 지켜온 한 개인의 노력은 지난 시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귀중한 문화적 자산의 유지를 개인에게만 부담 지우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시네마테크 운동의 회고에는 이를 계속 보전해야 한다는 요구가 깃들어 있기에, 사회적 제도적 화답이 필요해 보인다.
영화운동 시네마테크 원초적 비디오 본색 조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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