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령> 스틸
CJ ENM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 덕분에 허구의 세계를 항해하는 <유령>은 현실에 닻을 내릴 수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보면 살아있는 캐릭터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유령은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클라이맥스는 극장에서 펼쳐지고, 영화관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끝난다. 영화관은 허구의 공간이다. 스크린 위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온갖 사건이 벌어지지만, 스크린 속 주체와 사건은 물리적으로 실체가 없다. 반면에 극장은 실체가 있는 공간이다. 실제 인물인 배우가 무대 위에서 움직일 때 이야기는 진행된다.
공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관에서 유령과 흑색단은 지령을 전달하고 비밀을 공유한다. 그들의 신념은 아직 그들의 가슴속에만 존재할 뿐, 총독 암살과 같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반면에 유령은 극장에서 직접 움직인다. 무대와 커튼 뒤에서 혈투를 펼친 끝에 자신의 희생과 피해가 헛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 덕분에 더 강한 의지로 영화관에서 지령을 내리며 총독 암살을 시도할 수 있다. 신념과 이념에만 갇혀 있지 않고 행동을 통해 시대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유령>의 각오와 궤를 같이하는 듯 느껴진다. 기록과 영상으로 남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대신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을 앞세워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항일 투쟁을 다루는 영화인데도 담배를 매개로 연결된 두 여성의 처연한 사랑과 유령 간의 애절한 동지애가 유독 인상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장르가 급변하는 순간 떨어지는 매력
그렇기에 <유령>은 장르가 급변하는 순간부터 매력이 급감한다. <유령>은 감독의 전작인 <경성학교>처럼 중반부부터 장르를 전환한다. 추리극은 또 한 명의 유령이 정체를 드러내자 액션 영화로 탈바꿈한다. 그 이후로 영화는 철저히 액션의 쾌감에 집중한다. 두 유령이 힘을 합쳐 호텔에서 탈출하는 과정은 온갖 폭발음과 불길로 가득하다. 다카하라가 흑색단을 잡기 위해 함정을 펼쳐둔 극장에서는 치열한 총격과 저돌적인 맨몸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마지막으로 기관총을 든 박차경이 연인이었던 '난영(이솜)'의 못다 이룬 총독 암살을 대신하는 장면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 특유의 난장판 마무리도 스쳐 보인다.
문제는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낭비되는 캐릭터가 너무 많고, 그로 인해 <유령>만의 특색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점이다. 가장 보편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 천은호 계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유령을 찾아내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모든 상황을 외면하며 피하려 한다. 그러나 두 유령의 활약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는 '평범한 시민 1'이 되어 바로 이야기에서 삭제되어 버린다. 무라야마의 후배 경관 역시 그 시대를 보여주는 독특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무라야먀의 어머니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크게 실망한다. 하지만 이내 무라야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혈통과 관계없이 그를 좋은 선배이자 좋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도 결국에는 유령과 흑색단을 잡겠다는 무라야마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소비되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허구의 시공간 안에서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역동적인 역사를 보여주려는 의도는 꺾이고, 현란하고 단순한 쾌락이 그 자리를 대신해 버린다.
▲영화 <유령> 스틸CJ ENM
그렇다고 해서 힘을 잔뜩 준 액션 연출이 인상적인 것도 아니다. 일례로 작중 일본군은 놀라울 정도로 무능하다. 그들은 박차경과 유리코의 액션을 빛내주기 위한 엑스트라에 불과할 뿐, 유령들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거나 위기에 빠뜨리지 못한다. 붙잡은 포로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탈출하는 걸 구경한다. 마치 <스타워즈> 속 제다이와 스톰트루퍼의 추격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주인공들이 위험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다만 <스타워즈>에서는 '포스가 함께 한다'는 핑계라도 있다면, <유령>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두 여성의 액션은 그 자체로 통쾌하거나 박력 있을지 몰라도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매력은 뽐내지 못한다.
필요한 디테일을 지나치게 생략하기도 한다. 멋진 액션 시퀀스는 많은데, 그 사이가 비어 있어서 의문점을 남긴다. 후반부 극장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이 장면은 분명 관객의 이목을 끌만하다. 무라야마가 흑색단 총책과 연락책을 체포하여 남은 인원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대목,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루어진 유령들의 역습, 무대 뒤 커튼 사이로 펼쳐지는 숨 막히는 추격전까지 숨 가쁘게 진행된다. 그러나 모든 순간에는 설명이 없다. 무라야마가 어떻게 흑색단 일부를 체포했는지, 유령들은 어떻게 그 타이밍에 발맞춰서 경성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는지 등 액션이 등장하기 전 상황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이처럼 의문이 뒤따르다 보니 액션에 푹 빠져 즐기기도 어렵다.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선사하는 시각적인 쾌감만큼이나 극적 순간을 조성하려는 무리수가 커 보이는 이유다.
그 결과 <유령>의 도전은 끝내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장르적으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거부한 도전과 의도를 밀고 나갈 줄 아는 뚝심은 비록 산만하기는 해도 생동감 넘치는 영화의 전반부를 만들어냈다. 반면에 더욱 드라마틱한 몇몇 순간을 꾸며내기 위한 변화는 자신만의 차별화된 매력까지 까먹어 버렸다. 영화 중반부 이후 액션영화로의 전환이라는 변화구를 던지는 대신 캐릭터 간의 심리극이라는 직구를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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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종교학 및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