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장애인을 만나본 게 언제인가. 대화를 해본 건 언제인가. 함께 식사를 한 건 언제인가. 인사를 나눈 건 또 언제인가. 기억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이들이 바로 답할 수 있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엔 장애인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학교에서, 일터에서, 일상에서, 심지어는 거리에서조차 장애인들이 얼마 목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통계는 이 같은 흔한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선명히 드러낸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조사한 '2021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한국 장애인 수는 약 263만 여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1% 내외다. 서울시를 기준으로 할 때 각 구별로 1만 명이 훌쩍 넘는 장애인이 살고 있는데, 스무 명 당 한 명 정도가 장애인이란 뜻이다. 법적 요건에 맞지 않아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장애인 인구까지 고려한다면 장애가 한국 사회에서 결코 소외될 수 없는 주제임이 명백하다 할 것이다.
 
장애인이 받는 차별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가 사회 각계에서 꾸준히 일어나고 있으나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만큼은 여전히 제 자리 걸음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많은 경우 삶 가운데서 장애인을 만나기 어려운 현실이 그 첫 번째 장벽으로 꼽힌다.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 장애인을 만나지 못하고, 그리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죽여줘 포스터

▲ 나를 죽여줘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장애아를 둔 가정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지난 2020년 선보인 <나를 죽여줘>는 장애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의미심장한 영화다. 장현성, 안승균, 이일화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캐나다 유명 연극 <킬 미 나우>를 각색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연극은 앞서 2016년부터 한국 무대에서도 선보여 호평을 받았는데, 장애아를 가진 가족의 현실이 국경을 초월해 참담할 만큼의 슬픔을 자아낸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야기는 선천적 지체장애를 가진 현재(안승균 분)와 홀로 그를 돌보는 아빠 민석(장현성 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곧 성인이 되는 나이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재를 두고서 민석은 어깨가 무겁다. 그를 돕는 건 여동생 하영(김국희 분)과 가벼운 장애를 가진 활동지원사 기철(양희준 분) 정도가 고작이다. 소설을 쓰는 꿈을 포기한 채 시간강사 노릇을 하며 홀로 돈을 벌어오는 민석의 고된 삶이 영화를 보는 내내 무겁게 덮쳐든다.
 
영화는 장애인과 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이 만나는 여러 문제를 가까이서 다루려 노력한다. 스스로 성욕을 풀 수 없는 남성 장애인의 문제부터 시작하여,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소외며 좌절의 문제, 부족한 지원과 쉬이 마주하는 편견에 대하여 영화는 이야기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장애인을 돌보는 이들의 과다한 노동이며 부모가 전적으로 떠맡아야 하는 부담, 장애인의 존엄하지 못한 삶과 죽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꺼내기도 한다. 한 영화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 수개를 다루다보니 지나치게 무겁고 급작스럽다는 인상도 없지 않으나 <나를 죽여줘>는 이 모든 문제를 빠뜨리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려든다.
 
나를 죽여줘 스틸컷

▲ 나를 죽여줘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쉬운 출구 대신 절망적 현실을 보인다
 
영화는 쉬운 감동이며 해방적 출구를 허락하지 않는다. 장애 위에 역경과 고난, 실패와 좌절, 절망들을 덕지덕지 붙여 현실이 어떠한지를 선명히 각인하려 든다. 장애를 그저 가벼운 역경으로 소비하는 대신, 많은 경우 현실에서 그러하듯 삶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재앙으로 그려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적잖은 관객들이 상당한 피로감을 토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일각에선 <나를 죽여줘>의 설정이 과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한 영화에서 한둘을 다루기도 벅찬 주제를 그 서너 배쯤은 넣으려다보니 어느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탓이다. 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 역시 꼭 그만큼 무거워지기에 영화를 편케 즐기기 어렵게도 한다. 연극을 영화로 옮겨오며 그 극적이고 과장된 부분을 줄여 보다 현실에 맞는 이야기로 적극 각색할 필요가 있진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를 죽여줘>의 가치는 선명하다.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 <그것만이 내 세상>보다 훨씬 전격적으로 장애문제에 집중했다는 점, 문제제기는 의미 있으나 작품성 면에서 큰 혹평을 받았던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 비해 한 층 진전된 영화가 되었단 점이 그렇다. 선택과 집중의 측면에서 더 닦았다면 좋았을 부분이 수두룩하지만 한국의 장애문제를 다룬 영화로 이 정도까지 선명한 작품은 정말이지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로부터 더 깊고 진한 작품이 태어날 것이라고 나는 분명히 믿고 있는 것이다.
 
나를 죽여줘 스틸컷

▲ 나를 죽여줘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를 죽여줘 (주)트리플픽쳐스 최익환 장현성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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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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