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90년대 대중가요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장르 및 시대를 아우르는 과거 명반을 현재 시각에서 재해석하며 오늘날 명반이 가지는 의의를 되짚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클론 1집 < Are you ready? > 앨범 이미지

클론 1집 Are you ready? 앨범 이미지 ⓒ 라인음향

 
1996년 한 유치원에서 엄마에 비해 아들, 딸과 다소 소원한 아버지를 초대해 아버지와 유치원생이 함께 하는 여행을 기획했다. 아이들을 따라 나온 아버지들은 막상 자녀들과 함께 흥겹게 놀아야 할 자리에서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 어색한 순간에 한 아버지가 불쑥 일어나 한마디를 했다. "우리 한 번 '꿍따리 샤바라' 같이 불러볼까요?"

그걸로 끝이었다. 그때까지 점잔을 빼고 앉아있던 아버지들은 어느새 일어나 어깨를 들썩이고 다리를 흔들며 '꿍따리 샤바라'를 외치며 자녀들과 춤판을 벌였다. 갑자기 조용했던 방은 사물놀이를 방불케 하는 아우성의 현장으로 돌변했다. 춤추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빠를 보는 어린 자녀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 무렵 한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도 '꿍따리 샤바라'의 힘을 실감했다.

"한 사은 행사에서 그저 재밌겠거니 하는 생각에 '꿍따리 샤바라'를 연주했어요. 그랬더니 세상에 그전까지 자리에 앉아 박수만 치던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춤추며 큰 소리로 따라 부르는 거예요. 그 순간 알았죠. 바로 이런 게 진짜 대중가요라는 걸요!"

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김창환은 클럽 DJ를 할 때도 이런 장면을 통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대중성을 지닌 음악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차렸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방정맞음을 떼어내 모두를 행동으로 아우르게 하는 음악, 댄스음악. 그게 상기한 기타리스트의 혀를 내두르게 한 진정한 대중성의 음악일 것이다.

"일각의 사람들은 댄스음악을 가볍게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대중이 원하고 즐거워 따라 춤추는 음악이 대중가요의 진정성 아닐까. 난 그런 노래를 명곡으로 간주한다."

'꿍따리 샤바라'는 그의 대중성에 대한 오랜 신념이 낳은 대중가요사의 명곡이다. 미래를 앞질러 재미의 실체를 알리고 가수와 적합한 곡을 꾸려내려는 계산, 그 기획의 치밀함을 축약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본 것은 당시 댄스음악에 부재한 박력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었고 가수와 적합한 곡을 위해 춤에 재능은 있지만 가창력이 우월하지 않은 클론 멤버들을 배려해 단순하고 음폭이 거의 없는 곡을 썼다.

우연히 가게 된 자메이카의 클럽에서 걸쭉하게 주절거리는 랩 곡을 듣고 강원래, 구준엽에게 이게 통할 수 있겠다는 힌트를 얻고 나서 모든 대중가요의 충분조건을 갖춘 그는 시작만 울려도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떼거리로 몰려나올 '무분별' 자극의 리듬을 창의했다. 이 말만 하면 되었다. "준비됐나요? Are you ready?" '꿍따리 샤바라'의 장르포괄, 세대포괄의 자이언트 파워는 2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새롭다.

흑인 댄스음악의 진수
 
 KBS <가요톱10>에서 '꿍따리 샤바라'로 골든컵을 수상한 클론

KBS <가요톱10>에서 '꿍따리 샤바라'로 골든컵을 수상한 클론 ⓒ KBS

 
국내 공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기념비적인 1996년 마이클 잭슨의 첫 내한공연 오프닝 무대는 클론의 것이 되었다. '꿍따리 샤바라'로 펼친 '초월적' 무대장악력의 클론에게 관객들이 마이클 잭슨에 뒤지지 않는 갈채와 환호로 답한 장면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 곡 못지않게 사랑받은 첫 앨범 레퍼토리로 '꿍따리 샤바라'에 이어 <가요 톱10> 1위에 오른 '난'은 방송을 통해 엄청난 환영을 받았던 리믹스 버전이 이 LP에 처음 수록되어 반가움을 자아낸다.

'난' 역시 일렉트로닉 하우스 성향으로 김창환 프로듀서의 대중성 시선을 따른 곡이며 '이대로 멈출 수 없어'와 '사랑+거짓말=끝'도 이 노선에 속하는 신나는 댄스리듬을 포진하고 있다. 이 곡들에서 김창환은 역사적으로 가요화 작업이 더딘 펑키 리듬을 동원해 흑인 댄스음악의 진수에 도전하고 있다.

시대를 앞서가도 결코 당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자세는 랩 댄스 풍의 '널 포기한 이유'와 '다 잘못됐어'로 읽을 수 있으며 라디오 리퀘스트가 만만치 않았던 우울한 발라드 '영화처럼'은 획일화된 스타일을 경계하는 본능에 의한 곡이다. 어느 곡이든 공통분모는 김창환과의 동의어, 대중성이다. 대중가요의 본질이라 할 이 성질은 결코 로컬에 국한되지 않으며 시차가 있을지 몰라도 끝내는 '국제적'이다.

'꿍따리 샤바라'가 뿜어낸 무소불위의 파워는 당장 대만에서 나타났다. 모두를 무장해제 시키는 무궁한 대중성이 대만 인구를 파고들어 1999년 클론의 3집 수록곡 '돌아와'와 더불어 그해와 이듬해 대만에서 음반 최고판매고를 기록했다. 2000년 총통 선거전에서 한 후보의 캠페인 송으로 채택될 정도였다. 결국 이 열기는 중국 본토로 넘어갔다. 이데올로기를 덜 섬기며 금지옥엽으로 자란 중국의 신세대인 '소황제'들에게 클론의 음악은 경이로운 환희를 선사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한국의 대중음악에 눈을 돌리게 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와 H.O.T 그리고 클론은 역사적인 '한류'의 시작점이다.

아시안 팝으로서 아시아를 강타하고 이어 글로벌 K팝의 태동에 찬란한 빛을 선물하면서 우리만이 아닌 세계 각국의 젊음에게 재미와 전율을 선사한 클론과 '꿍따리 샤바라'가 무거움과 진지함의 사조와 거리를 둔 평범한 재미, 어쩌면 무의미한 쾌락에서 잉태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꿍따리 샤바라'는 뚜렷한 의미를 갖지 않는 의성어에서 따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래는 엄청난 부피의 응원과 위로를 우리들에게 제공한다. 바로 대중가요의 대중성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대중성의 실체가 이 클론의 1집에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 웹진 '이즘'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임진모 기자는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팝 칼럼니스트로 대중음악 웹진 이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명반다시읽기 클론 꿍따리샤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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