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에 설치된 센서가 먼지들을 찾아내 자동으로 집안 곳곳을 청소해주는 로봇청소기는 이미 각 가정마다 꽤 높은 보급률을 자랑하고 있다. 최신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면 로봇이 직접 음식을 서빙해 주고 주말에 대형공원에 가면 로봇 형태의 무인기 '드론'을 날리는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로봇은 이미 우리 삶 곳곳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산업현장이나 의료현장에서 로봇의 활용은 더욱 보편화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인간의 손이 닿기 힘든 정밀한 제조과정이나 무겁고 강한 힘이 필요한 공정에서 로봇의 힘을 빌리면 더욱 효율적인 제조가 가능하다. 의료현장에서도 로봇을 활용해 정밀한 수술이나 시술을 하고 환자들의 재활이나 간병, 식사 등을 도울 때도 로봇이활용되고 있다. 물론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로봇 역시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인간의 명령을 받아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휴머노이드, 소위 '인간형 로봇'은 아직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개념이다. 지난 2004년 개봉한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상화된 2035년의 지구를 배경으로 로봇이 인간이 입력한 프로그램을 엉뚱하게 해석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SF 액션영화다.
 
 <아이, 로봇>은 로봇과 함께 하는 2035년을 배경으로 한 SF 액션영화다.

<아이, 로봇>은 로봇과 함께 하는 2035년을 배경으로 한 SF 액션영화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많은 영화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로봇들

영화는 화면으로 구현할 수만 있다면 상상의 범위가 무한한 예술이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로봇이 영화에 등장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조적인 성격으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드로이드 콤비' C-3PO와 R2-D2가 대표적이다. 특히 90년대 이후에는 여러 영화에서 인간의 감정을 가진 로봇 캐릭터들이 등장해 관객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곤 했다.

1990년에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은 조니 뎁이라는 신예배우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작품이다. 손이 완성되지 못한 채 외딴 성에 홀로 살다가 화장품 외판원에 의해 마을로 내려온 로봇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그린 <가위손>은 조니 뎁의 열연과 팀 버튼 감독의 기괴한 연출이 더해진 독특한 멜로영화다. 특히 조니 뎁의 섬세한 감정연기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 중반부터 에드워드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1984년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아무런 감정 없는 살인병기였던 터미네이터는 8년 후 속편에서 선역이 되면서 인간미를 장착했다. 전편과 달리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 분)를 지키라는 임무를 가지고 과거로 온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 분)은 존 코너와 우정을 나누며 무서운 사이보그 T-1000(로버트 패트릭 분)으로부터 코너 모자를 지킨다. 특히 용암에 들어가기 전, 존 코너를 안아주는 장면에서는 터미네이터의 인간미가 극대화된다. 

<포레스트 검프>와 <식스 센스>에 출연하며 '천재아역'으로 불리던 시절의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감정형 아이로봇 데이비드를 연기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 A.I. > 역시 대표적인 로봇 소재의 영화다. 영화 < A.I. >는 스필버그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독특한 소재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당시 이 영화를 통해 지금은 보편화된 'A.I.'라는 개념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018년에 개봉한 이완 맥그리거와 레아 세이두 주연의 <조>는 자신이 로봇인 줄도 모르고 상담사로 살아가던 여주인공 조와 직장에서 만난 로봇 엔지니어 콜의 이야기를 다룬 멜로 영화다. 자신이 만든 로봇으로부터 사랑고백을 받은 콜은 "당신이 이렇게까지 진화할 줄은 몰랐다"는 말로 로봇의 고백을 받아준다. 아직은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조>는 로봇과 인간의 사랑을 표현한 독특한 감성의 멜로영화다.

로봇과 함께 하는 시대가 12년 남았다고?
 
 스푸너 형사는 언제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로봇을 신뢰하지 않는다.

스푸너 형사는 언제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로봇을 신뢰하지 않는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 <아이, 로봇>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아이, 로봇>과 제프 빈타의 초고각본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크로우>와 <다크 시티> 등을 연출했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아이, 로봇>은 1억2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세계적으로 3억5300만 달러의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국내에서도 윌 스미스의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전국 170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아이, 로봇>은 각 가정마다 인간의 삶을 돕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키우는 게 보편화된 2035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개봉 당시에도 약 30년 후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지만 2023년 현재는 단 12년 후의 근접한 미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됐다. 물론 <터미네이터>나 <아일랜드>처럼 실제 미래와 영화 속 미래는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 로봇>의 배경이 실제 2035년에 펼쳐질 거라고 기대할 필요는 없다.

<아이, 로봇>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한다','로봇은 1,2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세 가지 원칙이 프로그래밍돼 있다. 하지만 새롭게 출시된 NS-5 모델과 이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슈퍼컴퓨터' 비키는 인간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인간들을 억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선 논리적인 로봇이 인간을 통제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미 <인디펜던스 데이>와 <맨 인 블랙> 시리즈 등을 통해 지구를 지키는 일에 특화된 히어로 윌 스미스가 기계의 반란(?)을 두고 볼 리 없었다. 델 스푸너 형사는 수잔 캘빈 박사(브리짓 모이나한 분), 그녀가 차마 죽이지 못한 휴머노이드 로봇 써니(앨런 투딕 분)와 힘을 합쳐 인간을 향한 로봇들의 반란을 막는다. 특히 스푸너 형사가 써니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써니와 윙크로 사인을 주고 받는 장면은 <아이, 로봇> 최고의 명장면이다.

자살로 위장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알프레드 래닝 박사(제임스 크롬웰 분)의 집을 조사하던 스푸너 형사는 거대 무인 중장비로부터 공격을 받으며 큰 위기를 맞고 결국 래닝 박사의 집은 폭발한다. 제작진은 영화 속에서 약 3초에 불과한 이 짧은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약 3개월에 걸쳐 3만개의 미니벽돌을 사용해 3개의 미니어쳐 집을 제작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더욱 긴장감 넘치고 역동적인 폭발장면을 즐길 수 있었다.

'범블비'의 집사도 시작은 단역이었다
 
 <아이, 로봇>에는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가 단연으로 출연한다.

<아이, 로봇>에는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샤이아 라보프가 단연으로 출연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생전에 동료이자 스승에 가까웠던 래닝 박사와 함께 로봇 연구에 매진한 캘빈 박사는 로봇에 대한 지나친 맹신으로 로봇을 믿지 않는 스푸너 형사와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가진 로봇 써니를 만난 후 로봇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고 결함로봇으로 처분될 위기에 처한 써니를 살려낸다. 캘빈 박사는 영화 중반 로봇들에게 쫓길 때 스쿠너 형사에게 "이미 전 세계를 로봇에게 넘겼다"는 자책이 담긴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아이, 로봇>에서 여주인공 수잔 캘빈 박사를 연기한 브리짓 모이나한은 모델 출신의 배우로 TV시리즈 <섹스 앤 시티>와 영화 <코요테 어글리>를 통해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액션과 멜로, 호러, 가족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던 모이나한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시즌에 걸쳐 방송된 범죄 드라마 <블루 블러드>에서 뉴욕 검사이자 레이건 가의 둘째 에린을 연기했다.

사실 <아이, 로봇>에서 주인공 윌 스미스를 제외하면 관객들에게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감정이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써니였다. 써니는 로봇들에겐 절대적인 '3원칙'을 자신의 의지로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로봇으로 자체적인 사고로 마지막까지 스푸너 형사를 도와 비키의 전원을 끄는데 도움을 준다. 써니의 모션캡처와 목소리 연기는 <주먹왕 랄프>,<주토피아> 등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던 배우 겸 성우 앨런 튜딕이 맡았다.

개봉 19년이 지난 2004년 영화 <아이, 로봇>에도 몇 년 후 스타로 성장한 배우가 단역으로 출연했다. 바로 영화 초반 스푸너 형사에게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차를 빌려달라고 조르는 동네 친한 동생 파르베 역의 샤이아 라보프였다. 후반에 다시 등장해 NS-5의 통제에 저항하며 맞서 싸우는 역할로 나오는 라보프는 3년 후 <트랜스포머>에서 주인공 샘 윗위키를 연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아이, 로봇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 윌 스미스 브리짓 모이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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