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필름다빈

 

각박한 세태에 지친 이들은 흔히 상상의 휴식처를 구한다. 토마스 모어가 영국 종교개혁 와중에 극심한 정쟁에 지쳐 집필했던 <유토피아>는 오늘날까지 이상향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정작 작가 본인은 끝내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음은 역사에 기록된 아이러니다. 옆 나라 프랑스의 신교 대 구교 골육상잔에 지친 프랑수아 라블레는 유쾌한 거인 영웅들의 황당무계한 모험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로 문화와 예술은 그런 열망을 반영하고 재현해냈다. 시대와 상황은 차이가 제법 나지만 남북조 시대의 혼란에 지친 도연명은 '무릉도원'이라는 동북아시아 이상향의 전형을 선보인 바 있다.
 
후발주자인 영화 역시 의외는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독립영화는 극단적 현실을 더 잔인하게 극화하는 경향과 치유로의 회귀적인 경향을 3-4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해왔다. 특히 '불행 포르노'란 소리가 나올 만큼 유독 극심하게 표현되곤 하던 2030 MZ세대가 처한 잔혹한 현실 극화가 이어졌고, 반작용으로 피난처의 영화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곤 한다. <열여덟, 어른이 되어가는 나이>는 후자의 경향으로 명백히 방향타를 잡은 새로운 변주의 작업이다.
 
잘못된 만남에서 시민의 연대로 이행되는 이야기
 
바다를 낀 지방 소도시에서 시청 정기간행물 인터뷰어로 일하는 39살 윤서는 영화 시작과 함께 다음호에 소개할 지역 시민 인터뷰를 작업하는 중이다. (우리가 종종 우연히 펼쳤다 지나치곤 하는, 그다지 주의 깊게 들쳐볼 일 없는 관공서 소식지 기사의 정석처럼) 윤서는 어떻게든 적당히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상대에게서 끌어내 기승전결을 갖추려 유도한다. 그런데 정작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인터뷰 상대는 통 재미라곤 찾아보기 힘든 대답만 꺼내는 중이다. 윤서는 장래희망이나 일하는 보람을 뽑아내려 하지만 그런 인터뷰어의 기대(와 그 배후에 있는 발행처의 희망하는 서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뿐이다. 기사의 기본골격과 어긋나게 무한히 반복되는 저임금 불안정노동에 처한 데다 소비자가 왕 대접받길 바라는 진상노릇에 시달리는 인터뷰 상대는 맥 빠지는 답만 내놓는다. 윤서는 심히 곤란해진다.
 
썩 원치 않았던 내용 때문에 얼른 인터뷰를 정리하고 포장해서 기사거리 작성할 생각에만 몰두하던 윤서는 인터뷰 대상이 취재가 끝나고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내미는 수제 샌드위치를 필요 없다며 사양한다. (정작 나중에 그가 샌드위치를 즐겨먹는다는 사실이 툭 지나치듯 언급된다) 그리고 무심한 듯, 어쩌면 무척이나 서늘하게 자신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고 던진다. 자신은 일로서 인터뷰한 것뿐이라는 건조한 태도다. 결국 인터뷰 취지인 지역 곳곳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시민을 소개한다는 목표와는 별개로 상대에게 실은 별 관심이 없다는 삭막한 본심의 표현이다.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그리고 귀가한 윤서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배달음식을 주문하지만 지연배송 때문에 은근히 짜증이 쌓인다. 그런 심리상황 때문에 한참 늦게 도착한 배달 아르바이트생에게 거듭 사과를 요구하며 그를 붙든다. 어린 알바생 청년은 조목조목 항변하지만 소비자의 지위를 십분 활용하는 윤서의 맹공에 질린 나머지 주문을 취소하라며 도로 갖고 가버린다. 어차피 자기가 무슨 해명을 해도 믿지 않을 것 아니냐는 신랄한 멘트를 남긴 채 말이다. 그저 짜증 좀 풀려 했을 뿐 밥을 굶게 된 이런 결말까지는 원치 않던 윤서는 망연자실한다.
 
출판사 사무실에 들른 윤서는 편집장인 선배 민경을 통해 그들 고용주 격인 시청에서 원하는 플랫폼 노동자 취재 건을 의뢰받는다. 그런데 취재원과 대면하는 자리에는 전날에 끝내 사과하지 않고 가버린 그 알바생 청년, 수찬이 나온 게 아닌가. 둘은 서로를 대번 알아보지만 굳이 그 일을 끄집어내지는 않는다. 역시 마트 계산원 인터뷰와 동일한 맥락으로 무미건조한 인터뷰가 이어진다. 그렇게 진행되던 중 갑자기 수찬이 인터뷰 못하겠다며 뛰쳐나간다. 일정상 반드시 오늘 인터뷰를 마져야 하는 윤서는 엉겁결에 뒤를 쫓게 된다.
 
알고 보니 수찬은 전날 길가에 세워뒀던 전동 킥보드를 도난당한 상황이다. 마침 인근에서 목격자를 찾았다는 소식에 급하게 달려 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 관련해 우연히 단서를 쥐고 있었던 윤서는 인터뷰를 마치는 조건으로 자신이 가진 정보를 교환하기로 하고 이제 둘은 킥보드 찾는 모험을 개시한다. 온갖 해프닝을 겪으며 그 여정을 거친 후부터 윤서는 수찬과 친분을 쌓게 되고 인터뷰 과정에서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상이한 세대와 조건을 가진 두 주인공
 
영화는 '내'가 제일 불행하기에 '타인'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 작금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잡았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리바이어던>의 세계관이 현실로 구현된 것 같은 2020년대, 여기저기에서 '천하제일 불행대회'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냉혹한 한국사회가 영화 내내 구현되는 현실이다. 두 주인공, 윤서와 수찬은 그런 세태 가운데 각자 성장하며 교류하는 가변적 캐릭터들로 이야기의 중심축이 된다.
 
윤서는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며 냉소적 태도를 취하는 지식인 캐릭터다. 적당히 지적이기도 하고, 타인의 부당한 갑질에는 단호하게 맞서는 결기도 가끔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정의감은 지극히 선택적으로 발휘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갑질을 자행할 수 있다는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에서 자신이 상대하던 - 자기보다 못해 보이는 - 존재들에 대해선 별다른 동정심이나 연대감을 보이지 않는다. 자기 권리와 몫은 알아서 본인이 챙겨야 하지 않느냐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사회 일각의 빈곤문제에 대한 전형적 시각이기도 하다) 그렇게 윤서는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일정하게는 냉소적인 면모도 보이는 인물이다. 그래서 정작 자기 주변 등잔 밑은 놓치곤 한다. 게다가 수찬과는 20년이 넘게 차이 나는 세대다. 어쩌면 윤서 캐릭터는 소위 '낀 세대'인 동시에 '꼰대'를 혐오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렇게 되어가는 지는 포착하지 못하는 전형일지도 모르겠다.
 
수찬은 18살 청년이다. 그는 정확히 윤서의 대척점에 선 존재다. 한창 나이에 어울리는 꿈같은 건 없냐고 인터뷰에서 집요하게 묻는 윤서에게 그는 내뱉듯 답한다. 자신이 타인의 도움 없이 그저 먹고 자는 데에만 한 달에 90만원 넘게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처지이다 보니 그저 돈 많이 벌어 소박하게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희망을 수찬은 일관되게 피력한다. 꿈도 포부도 찾아볼 수 없는 수찬의 답변에 윤서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윤서에게 일감을 제공하는 지위에 있는 이들이 취하는 자기본위 식 강요에 종종 그는 혐오감을 내비치곤 하지만, 정작 본인 역시 취재대상을 진지하게 이해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세상 일 대충 다 안다는 지식인의 오만과 함께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라는 냉소적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개별화된 '시민'의 전형인 셈이다.
 
수찬은 한눈팔지 않고 성실하고 긍정적으로 일하며 자립하고자 하는 건실한 청년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정작 그런 수찬에게 세상은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는 생업수단인 전동 킥보드를 도난당해 당장 다음날 배달알바도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것 뿐 아니라 영화 후반까지 줄곧 삶의 기본조건을 위협당하는 위기에 처하곤 한다. 하지만 만18살 청년에게 험한 세상 헤쳐 나가는데 절실하게 필요한 등대는 도무지 눈에 띄지 않는다. 관공서의 공적인 지원서비스는 형식적일 뿐더러 이용자가 직접 알아보고 해결하기를 종용한다. 복지현장에서 실제 절실하게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이 토로하곤 하는 주객전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게다가 순진한 청년 등쳐먹을 궁리하는 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중반 이후 밝혀지는 '보호 종료 아동'이라는 수찬이 처한 조건은 그를 시혜와 온정의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리곤 한다. (후반부의 핵심 갈등 중 하나다)
 
물론 차가운 외면보다 일방적일지언정 실질적 도움이 되는 시혜가 그나마 더 낫지 않느냐는 시각이 등장할 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흔히 간과하는 문제는, 그런 단선적 사고 역시 상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사안에서 흔히 깨닫게 되는 교훈을 윤서역시 뒤늦게 알아챈다. 그리고 반성과 성찰의 터널을 경유해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조건이 좀 다를 뿐인 동료 '시민'으로 수찬과 교류하는 도전에 나선다. 그렇게 사막 한가운데에서 생존의 동아줄이자 격의 없는 만남의 장으로 기능하는 우리 시대의 오아시스가 완성된다.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세상의 단면을 재현하는 작업
 
그렇게 완성된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가 그저 찰나의 환상을 심어 보는 이에게 찰나의 위안을 주는 신기루에 불과할 뿐인지,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관객의 뇌리에 오래 아로새겨지는 실체로 남게 될지는 미지수의 영역이다. 일단 1차적으로는 영화를 만든 이들의 솜씨가 어라나 설득력 있게 다가오느냐가 관건일 테다. 그리고 2차로는 제작진이 전달하고픈 주제의식과 기대효과를 관객이 얼마나 누수나 곡해 없이 수용할지 여부에 달려 있다. 영화라는 대중예술 장르는 본래 완성되고 나면 만든 이들의 손을 떠나 관객의 평가와 반응을 통해 완성되는 법이다.
 
아쉽게도 본 작품에서 세계적 거장으로 인정받는 다르덴 형제나 켄 로치의 역작들이 나올 때마다 세상을 놀라게 하던 완성도를 기대하기란 난망한 노릇이다.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평등한 연대의식이나 플랫폼 노동으로 대표되는 21세기의 소외된 노동문제를 독자적인 세계관과 척도로 자유자재로 압축하고 묘사해내는 마술은 오랜 수련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수준을 한국의 저예산 독립장편영화마다 기대하는 건 과도한 요구일 테다.
 
그럼에도 몇 가지 단점은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영화 속 음악은 지나치게 뜬금없이 통통 튀는 식으로 밝게 들리곤 한다. 좀 더 생활 속 배경처럼 묘사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다. 또한 방송 드라마처럼 몇 장면이나 풍경은 상투적으로 종종 눈에 들어오고 귓가에 울기도 한다.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모순적인 행태가 깨알 같이 수록되어 있지만 작품 속 에피소드 상당부분은 우리가 흔히 SNS 등에서 접하게 되는 세태풍자 만담이 풍자하던 현실 단면과 그렇게 큰 차별성을 선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거제라는 남쪽 바닷가를 배경으로 (대부분의 독립영화가 창작되는 수도권에 비해) 적당히 느린 속도감과 따뜻한 날씨 배경을 활용해 제작진은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이들에게 적당히 개운한 뒷맛의 성장 드라마를 펼쳐내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대작 영화에 도전하기는 부담스럽지만 현실에 지친 이들이 휴식 같은 탈출구를 찾을 때 권할 만하다.
 
<작품정보>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Adulting at Eighteen
2022 | 한국 | 드라마
2023. 1. 25. 개봉 | 90분 | 12세 관람가
감독 주영
주연 임선우(한윤서 역), 김명찬(양수찬 역),
이상희(강유석(도배사) 역), 박현숙(이민경(편집장) 역)
출연 정용주(남현우(선배) 역), 엄채영(심민지(중학생) 역),
       이동용(장범철(장사장) 역), 공재경(강윤희(계산원) 역),
       강준석(석강준(주민센터 팀장) 역), 서수민(박소연(신문사 직원) 역),
       남이슬(장문영(신문사 기자) 역)
제작 체리코끼리
배급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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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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