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 최고의 영광은 무엇일까. 출연한 작품이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것일 수도 있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반짝이는 트로피를 받는 일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감독이며 작가가 이 배우가 아니면 안 된다고, 그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을 가져와 출연을 요청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곰곰이 따져보니 '어쩌면'이 아니다. 동료의 인정, 작품 전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배우라는 믿음,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한 명의 배우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는 아닐는지.
 
한국시각으로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배우 윤정희는 그런 귀한 영광을 누렸던 드문 배우다. 한국 최고의 감독인 이창동이 오직 그녀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그렇게 출연을 요청한 작품이 지난 2010년 개봉한 <시>다. 극중 인물의 이름은 윤정희의 본명인 손미자의 미자를 땄다.
 
시 포스터

▲ 시 포스터 ⓒ (주)NEW

 
시를 사랑한 미자, 미자가 되었던 정희
 
영화는 제목 그대로 시에 대한 이야기다. 문학가 출신인 이창동 감독이 문학의 정점인 시를 이야기한 작품으로 예술 애호가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오랫동안 은막을 떠나 있던 대스타가 제 나이듦을 감추지 않고 돌아와 열연을 펼쳤다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작품은 그 환호가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이야기는 경기도 작은 도시 서민아파트를 배경으로 출발한다. 중학생 손자와 단 둘이 살아가는 미자는 나이답지 않게 화려하게 치장하길 좋아하는 엉뚱한 할머니다.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동네 문화원을 찾았다가 시를 쓰는 수업을 수강하며 시세계와 만난다. 시상을 찾기 위해 일상의 사물들을 다른 시각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 그녀의 섬세한 감수성을 일깨운다. 미자는 소녀로 돌아가 저의 아름다운 시세계에 빠져들지만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그녀에게 현실을 일깨운다.
 
워낙 아름다운 영화라, 보는 과정 하나하나가 감동이 되는 작품인지라, 줄거리를 줄줄이 늘어놓을 수 없음을 이해하기를. 대신 한 가지 이야기만 풀어놓기로 한다.
 
시 스틸컷

▲ 시 스틸컷 ⓒ (주)NEW

 
치열하게 제 시세계를 지켜내는 사람들
 
미자가 나가는 시 강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 한 형사가 있다. 미자는 형사의 시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모두에게 저마다의 시가 있어서다. 미자에게 시는 순수한 아름다움이었고, 형사에게 시는 일상의 음탕한 유머였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시라고 생각하는 미자에게 형사의 태도는 그저 시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질 밖에 없다. 그러나 형사는 또 그 나름의 시세계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형사가 시를 모독하고 있다고 말했던 미자였지만 자신의 시세계를 지켜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미자보다 나은 인간이었음을 영화가 차근히 드러낸다.
 
영화의 어느 순간에 미자는 엉엉 울음을 운다. 그녀의 대답 없는 오열은 순수하지도, 또 아름답지도 않게 되어버린 그녀 자신의 삶 때문이었을 것이다. 순수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아서 그저 울어버릴 밖에 도리가 없던 미자는 아무런 시도 써낼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형사에게 제 비밀을 이야기한 건 자신의 시세계를 구해낸 것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제야 그녀는 당당히 아름다움과 순수를 말할 수 있었고, 시를 써낼 수 있었으니까.
 
마지막 강좌에서 오직 그녀만이 자신의 시를 써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자신의 시세계를 오롯이 지켜내는 사람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시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꽃다운 생을 마감하게 될지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시 스틸컷

▲ 시 스틸컷 ⓒ (주)NEW

 
이창동이 선택한 단 하나의 시어
 
시는 표현이고, 표현은 예술이고, 영화 역시 또 하나의 예술이다. 이창동 감독은 넓은 의미에서 엄연한 시인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영화감독인 그에게 배우들은 저마다 하나의 시어이기도 하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꽃무늬 옷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누구에겐가 멋쟁이라고 불릴 때면 그렇게도 좋아하던 미자였다. 그 삶과 어울리지 않는 순수의 표현, 윤정희는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가 아니었던가.
 
중풍걸린 노인의 욕망과 부끄러움, 오래되고 추악한 습관들을 현실감 있게 연기한 김희라 배우를 떠올린다. 속물적이었던,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 안내상의 연기 역시 오래 바라볼 만하다. 그저 가해자만은 아니었던 이다윗은 얼마나 반짝였던가. 언제나 그러했듯 이창동 감독의 선택은 훌륭했다.
 
시인은 말했다.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라고. 미자는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쏟을 수 있는 온 정신을 다해 사과를 마주하고, 그 사과를 깨어물었던 것이다. 미자가 마침내 자신이 외면해온 삶의 진실과 마주하기까지, 그리고 그 진실을 자신답게 해결하기까지, 너무도 고통스러웠을 미자의 선택은, 그러나 그녀가 쓴 시보다도 훨씬 더 감격적이었다.
 
하나의 시어 같았던 배우, 윤정희(손미자)를 추모하며.
 
시 스틸컷

▲ 시 스틸컷 ⓒ (주)NEW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NEW 이창동 윤정희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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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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