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청중들에겐 어떻게 들릴지 궁금해요."
 
오는 2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에 참여하는 이수연(29) 작곡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대한민국 창작음악의 산실이라 불리는 '아창제'에 선정되어 대중에게 공개되는 이 곡은 <'점'과 '선'으로부터>라는 제목에서 유추하듯 추상미술의 대표 화가인 칸딘스키의 대표작인 <점·선·면>에서 시작한 곡이다. 
  
 이수연 작곡가 프로필 사진

이수연 작곡가 프로필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칸딘스키(음악에서 미술로) vs 이수연(미술에서 음악으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추상회화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는 다양한 패턴이 공존하는 현대미술에서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을 그렸다고 평가를 받았다. 그의 방식은 대상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고, 점·선·면과 같은 조형요소을 결합시켰는데, 후세에 사람들은 이것을 '추상미술'이라고 불렀다. 한때는 주목 받는 법학도로, 음악적 감상이 풍부한 음악가로 활동했지만, 결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추상화가로 기억하는 칸딘스키에서 이번 곡이 태어난 배경이 궁금했다.  

"미술 작품에서 점과 선은 시각적으로 대조된 형태를 나타내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조화를 이룹니다. 음악에서도 '대조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수연 작곡가의 <'점'과 '선'으로부터>는 회화의 기본 요소인 '점', '선'의 방식과 같이 연주된다. 다시 말해,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새로운 언어와 어법으로 '점'과 '선'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곡 안에서 자신들의 속성을 드러낼뿐 아니라 점과 선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여기에 상호작용을 통해 여러 음형들을 조화시켜 새로운 음향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에 초연한 작품을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해 
 
 Deutsche Radio Philharmonie 연주 당시 리허설

Deutsche Radio Philharmonie 연주 당시 리허설 ⓒ 이수연

 
<'점'과 '선'으로부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2020년 겨울이다. 2021년 석사(독일 바이마르 국립음악대학교) 졸업 논문을 목표로 곡을 만들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독일 자브뤼켄 방송국 오케스트라(Deutsche Radio Philharmonie) 관현악 작품 공모에 당선됐다. 원래는 당선 직후인 2021년에 연주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됐고, 2022년 6월 10일, 자브뤼켄 카이자라우트에서 초연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번에 아창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초연작을 재구성해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는 이번 아창제 연주를 위해서 잠시 귀국했으며, 지난 19일 유선으로 통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지도교수였던 신수정 선생님께서 칸딘스키의 작품을 추천해줬어요. 곡을 쓰면서 음악적 고민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까 마음 속에 와닿았어요. 그래서 제 곡으로 풀어보고 싶더라고요." 
 
책 속에서 칸딘스키가 점, 선, 면의 완급조절을 통해서 작품을 구성했는데, 이 작곡가는 반대로 회화의 기본 요소를 음악 안에 녹여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탄생한 <'점'과 '선'으로부터>은 그가 처음으로 쓰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책의 내용도 가볍지 않아서 곡을 쓰기 전부터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멈추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오히려 시작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이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점과 선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예를 들면, '점'이 짧은 음가의 스타카토로, 맥박같이 느껴지게 악센트로 만들어진 펄스(pulse)로 표현했고, '선'은 긴 음가, 긴 호흡을 갖는 흐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음악은 시간 예술이지만 회화는 그렇지 않다. 관람자들은 미술 작품을 통해 점과 선의 관계가 표현되는 순간만을 볼 수 있지만, 음악에서는 청중들이 이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종류의 예술 영역이 충돌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비슷한 점과 차이점이 보였다. 그리고 미술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의 탄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8분간 연주되는 이 곡은 도입부를 포함해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어요. 우선, 도입부에서는 직관적으로 풀었습니다. 각 섹션을 점과 선 등 두 요소의 관계에 따라서 나눴어요. 도입부는 점과 선이 공존하면서 소개를 해주는 역할을, A에는 대조를 이루고, B에서는 선이 부각되고, C에서는 조화를 이루며 왈츠리듬을 형성하고, D에서는 다시 대조를 이루고, E에서는 완전히 분리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각 섹션 마다 점과 선은 특정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그들의 관계를 추측하며 곡을 감상한다면 더욱 흥미로울 거예요."
 
 독일에서 작품을 만들어낸 특별한 과정
 
 독일 학교 생활

독일 학교 생활 ⓒ 이수연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전공한 이수연 작곡가는 지난 2018년 독일에 공부하러 넘어갔다. 독일 바이마르 국립음악대학교에서 작곡전공 석사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자브뤼켄 국립음악대학교 최고 연주자 과정(Konzertexamen)에 재학 중이다. 최고 연주자 과정은 원래 내년에 끝나는데, 학기를 연장할 수도 있단다. 2017년 대학교 재학 당시에 '제40회 창악회 콩쿠르'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독일로 넘어간 초반인 2018년에 <음악오늘>에서 젊은 작곡가로 위촉되어 작품을 발표했다. 최근 그의 경력 중 대부분을 독일에서 보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들려줬다. 
 
"독일 자브뤼켄 방송국 오케스트라 관현악 작품 공모에서 당선이 됐던 과정이 기억에 남아요. 독일 유학 생활하면서 이룬 첫 성과죠. 정말 힘들게 썼거든요. 이게 단순한 콩쿠르가 아니고 일주일 정도 워크숍을 참여하는 과정에서 결과물이 나옵니다. 여기에 선정된 총 6명의 작곡가들이 다 같이 모여서 서로의 리허설을 보고, 의견을 나눠요. 리허설이 끝난 후에는 매일 다른 분의 파트장(수석)들이랑 각자의 곡에 대한 이야기도 공유해요. 그렇게 음악이 완성되는 과정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를 비롯해 중국, 독일,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각자의 곡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서 다양한 음악적 수업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히 음악적 테크닉뿐 아니라 서로 다른 친구들의 음악적 세계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중에서 중국 친구가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곡이 연주되기에 앞서 연주자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면 그들의 입장에서 더 흥미롭게 연주할 수 있을 것이란 소리를 들었어요. 그림에 관한 곡을 섰던 중국 친구가 프로그램북에 자신의 그림을 삽입했는데, 그것을 본 연주자들이 곡을 연주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도움이 됐고, 흥미로운 과정이었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신도 곡에 대해서 연주자들 앞에서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지휘자가 이 작곡가에게 말해주기를, "설명 전후에 소리들이 달랐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작곡가 점, 선에 대한 의도를 연주자들이 알아챈 것이다. 예를 들어, 점을 표현한 부분은 조금 더 샤프하게 연주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그랬는데, 그런 요소들이 더 뚜렷하게 보였으며, 점과 선의 관계, 각각의 요소들이 가진 음향적 특징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이번 아창제에 대한 기대감
 
지난해 6월 11일의 초연 이후 반 년이 지난 오는 2월 1일에 재연 공연을 앞두고 있다. 초연하고 재연이 달라지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그는 아직 리허설 전이라 직접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는 부분은 곡이 연주자,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서 다르게 들려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 연주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정치용)가 맡았다. 굳이 두 작품의 차이를 말한다면 지휘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정치용과 마누엘 나우리(Manuel Nawri) 등 지휘자의 해석이 어떻게 달리질 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창제는 콩쿠르는 아니에요. 이름 그대로 '오케스트라 축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콩쿠르와는 다르게 특별한 경계를 두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죠. 그런데 다른 콩쿠르는 각자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그런데 아창제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성격의 작품들이 한꺼번에 연주됩니다. 저는 이런 것이 축제라는 단어에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열네 번의 역사뿐 아니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국내에서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클래식 전용 대규모홀에서 연주되는 사례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재연작으로 받는 상금의 액수보다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내 역량있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의미가 더 있다고 본 것이다.
 
"영광스럽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저도 처음에 실감하지 못했는데, 그 홀이 주는 무게감, 기대감이 상당하는 것을 피부로 느껴서 지금은 얼떨떨해요. 그곳에서 연주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 설레는 일이죠. 학생 때 유튜브로 보면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까 믿겨지지 않거든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반 관객에게 어려운 추상미술에서 출발한 현대음악을 선보이는 것을 한국과 독일에서 활동경험을 비교해서 소감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독일에서는 제 곡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또한 현대음악 축제가 다양하게 개최되기 때문에 동시대 작곡가들의 곡을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아요. 연주가 끝나면 그 곡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는 문화도 있고요. 그런 것을 보면서 현대음악을 설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1~2년 내에 귀국할 것 같은데, 그때가 되면 현대음악을 계속 작곡할 거예요. 기회가 된다면 앙상블에 들어가서 활동하거나 직접 만들 수도 있지만 앙상블과 같이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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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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