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한국영화 최다관객(1760만)을 보유한 <명량>의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만든 후 속편 <한산: 용의 출현>이 개봉하기까지 무려 8년의 시간이 걸렸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19년 1620만 관객을 동원한 <극한직업>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도 드라마 <멜로가 체질> 연출과 <어게인 마이 라이프> 각색, <최종병기 앨리스> 총감독으로 참여하면서 박서준과 아이유가 출연한 차기작 <드림>의 개봉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이처럼 천만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5년 이상 휴식기를 갖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천만 영화를 연출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재충전의 시간도 더 많이 필요하다. 물론 예전부터 구상했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느라 차기작이 늦어지는 감독들도 있다. 그나마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이나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차기작을 비교적 빨리 선보인 케이스다. 

하지만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은 다른 감독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연출패턴을 가지고 있다. 2005년 겨울 <왕의 남자>를 연출하며 123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 개봉 후 약 4개월이 지난 2006년 4월 차기작 촬영에 들어가 그 해 추석연휴에 곧바로 그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그 어떤 작품보다 빨리 찍었지만 완성도는 결코 떨어지지 않았던 이준익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라디오스타>다.
 
 1200만 관객을 모은 <왕의 남자> 개봉 후 9개월 만에 개봉한 <라디오스타>는 전국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1200만 관객을 모은 <왕의 남자> 개봉 후 9개월 만에 개봉한 <라디오스타>는 전국 1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 시네마 서비스

 
관객들의 낭만 건드리는 라디오 소재 영화

워낙 많은 영상매체가 쏟아지는 시대가 되면서 과거만큼 사람들이 라디오를 열심히 듣진 않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일상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특히 마음껏 영상매체를 즐길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게 라디오는 가슴 한 켠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라디오는 영화에서도 때때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해 관객들의 감성과 낭만을 건드리며 영화와 좋은 시너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라디오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영화는 역시 미국 현지에서 유명했던 고 로빈 윌리엄스를 일약 세계적인 배우로 만들었던 <굿모닝 베트남>을 꼽을 수 있다. <굿모닝 베트남>은 전쟁터 한 가운데서 재치 있는 입담과 진행으로 전쟁에 지친 군인들을 위로하는 파병DJ 애드리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13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굿모닝 베트남>은 세계적으로 1억2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할리우드 최고의 청춘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주연을 맡은 <볼륨을 높여라>는 내성적인 고교생이 해적방송 DJ가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지난 1995년부터 현재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방송되며 이본과 최강희,유인나 등 인기 DJ들을 배출했던 KBS 2FM의 <볼륨을 높여요>가 바로 이 영화에서 프로그램 명을 따온 것이다.

1993년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2억2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멜로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도 라디오는 두 사람의 사랑에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아내와 사별한 샘(톰 행크스 분)이 시애틀로 이사온 후에도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자 보다 못한 아들 조나(로스 말린저 분)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다. 그리고 이를 애니(맥 라이언 분)가 공감하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빠르게 진전된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전도연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배출한 <접속>에서 한석규가 연기한 동현의 직업이 바로 라디오PD였다. 홈쇼핑가이드 수현(전도연 분)은 PC통신을 통해 라디오에 신청곡을 보내고 그 사연이 자신의 옛사랑일거라 생각한 동현이 PC통신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접속'이 시작된다. 이민정의 첫 단독주연 영화였던 <원더풀 라디오> 역시 라디오 부스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담아낸 잔잔한 휴먼 코미디 영화였다.

뮤지컬로도 제작된 이준익 감독의 수작
 
 안성기(왼쪽)와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를 시작으로 <투캅스>,<인정 사정 볼 것 없다>,<라디오스타>까지 4편에서 호흡을 맞췄다.

안성기(왼쪽)와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를 시작으로 <투캅스>,<인정 사정 볼 것 없다>,<라디오스타>까지 4편에서 호흡을 맞췄다. ⓒ 시네마 서비스

 
<라디오 스타>를 시작으로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로 이어지는 세 작품은 이준익 감독의 '음악 3부작'이라 불린다. 하지만 정진영과 김윤석, 장근석 등이 출연한 <즐거운 인생>은 120만 관객으로 만족스런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전국 170만 관객을 동원한 <님은 먼 곳에> 역시 70억 원의 제작비에 비하면 흥행스코어가 다소 아쉬웠다. 반면에 <라디오 스타>는 제작비 40억 원으로 180만 관객을 모으면서 제작비 대비 쏠쏠한 성적을 올렸다.

<라디오스타>는 왕년의 가수왕 최곤을 연기한 박중훈의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관객들의 더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박중훈 역시 9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계의 독보적인 원톱배우로 군림하다가 한석규와 박신양,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 등이 급부상하면서 정상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라디오스타>에서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 박중훈은 2006년 청룡영화제에서 안성기와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라디오스타>는 뮤지컬영화는 아니지만 이준익 감독이 선보인 '음악 3부작'의 시작을 알린 영화답게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 편이다. 특히 영화 내에서 최곤의 유일한 히트곡으로 나오는 <비와 당신>은 박중훈이 직접 부른 오리지널 버전과 펑크록밴드 노브레인이 부른 록버전이 동시에 사랑 받았다. <비와 당신>은 2009년에는 럼블 피쉬, 2021년에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OST로 이무진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영화 <라디오스타>가 많은 사랑을 받자 2008년 뮤지컬로 제작돼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 역을 맡은 정성화가 매니저 박민수를 연기했다. <라디오스타>는 초연의 인기에 힘입어 2009년과 2010년에도 무대에 올랐는데 가수 임창정과 <무한도전> 멤버 정준하가 박민수 역에, 90년대 꽃미남 가수로 큰 사랑을 받았던 김원준이 최곤 역에 캐스팅돼 열연을 펼쳤다.

<라디오스타>에서 최곤이 방송을 진행했던 곳은 실제로 KBS 영월방송국으로 쓰였던 건물이다. 2004년 KBS 지역국 통폐합 때 방송국이 폐쇄되고 AM중계소로 쓰였는데 영화에서는 이곳을 빌려 촬영장소로 사용했다. 이곳은 촬영 종료 후 한 동안 방치됐지만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들의 방문이 꾸준히 이어지자 영월군청에서 이곳을 '라디오스타 박물관'으로 단장해 2015년 3월부터 운영중이다. 

 록밴드 아닌 '배우' 노브레인의 열연
 
 펑크록밴드 노브레인은 <라디오스타>에서 영월의 유일한 인디밴드를 연기했다.

펑크록밴드 노브레인은 <라디오스타>에서 영월의 유일한 인디밴드를 연기했다. ⓒ 시네마 서비스

 
크라잉넛과 함께 대한민국 인디밴드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노브레인은 <라디오스타>에서 영월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인디밴드 이스트리버로 출연했다(이스트리버라는 밴드명은 영월에 흐르는 '동강'을 영어로 읽은 것이다). 이스트리버는 거친 인생을 살아온 최곤을 존경하고 최곤이 진행하는 '오후의 희망곡'이 성공할 수 있도록 불철주야 뛰어 다닌다. 실제 <오후의 희망곡>이 전국에 송출된 것은 이스트리버의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김선아 분)에게 베이커리를 배우는 동료로 출연했던 안미나(신인시절엔 '한여운'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는 <라디오스타>에서 영월다방에서 일하는 김선옥을 연기했다. 라디오부스에 커피를 배달하러 왔다가 최곤에 의해 즉석으로 엄마에게 사연을 남기는데 이 장면이 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라디오 진행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최곤 역시 김양이 다녀간 후로 라디오의 매력을 깨닫기 시작했다.

최정윤이 연기한 강석영 PD는 원주방송국에서 라디오 PD로 일하다가 게스트를 욕하는 소리가 방송에 송출되는 바람에 영월로 좌천돼 <오후의 희망곡>을 연출하게 됐다. 처음엔 영월로 쫓겨 내려 온 자신의 처지와 의욕 없이 방송에 임하는 최곤을 보며 크게 실망하지만 최곤이 진행에 재미를 붙이고 방송도 인기를 얻으면서 강 PD 역시 의욕을 되찾는다. 어색한 사이였던 최곤과는 술자리를 함께 한 후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영화 초반 최곤이 가수왕에 오르는 장면은 1988년 MBC 10대 가수가요제 화면에 MBC로고를 MBS로 바꿔 사용했다. 다만 가수왕 최곤을 발표하는 음성은 다시 녹음했는데 당시 사회를 봤던 이덕화가 직접 녹음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덕화가 드라마 촬영 도중 말에서 떨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개그맨 최병서가 성대모사로 녹음을 대신 했다. 재미 있는 사실은 훗날 이준익 감독이 밝히기 전까진 누구도 최병서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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