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에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특히 123분의 런닝타임 내내 관객들의 긴장을 늦추기 못하게 하는 나홍진 감독의 탄탄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나홍진 감독은 차기작 <황해>와 <곡성>에서도 스릴러 감독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사실 범죄 스릴러야말로 감독의 역량이 가장 필요한 장르 중 하나다. 잘 만든 범죄 스릴러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의 해석에 대한 치열한 토론의 장이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들과의 두뇌싸움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영화를 지나치게 어렵게 비틀어 놓는다거나 어설픈 이야기 전개로 영화의 내용과 주제를 관객들에게 너무 일찍 들켜 버리면 그것 또한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범죄 스릴러는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연출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색깔과 완성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감독이 기존에 있는 시나리오에 각색 작업만 참여했음에도 긴장감 넘치는 연출을 통해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지난 2007년에 개봉해 많은 관객들을 긴장시켰던 원신연 감독·김윤진 주연의 범죄 스릴러 영화 <세븐데이즈>였다.
 
 <세븐 데이즈>는 <가발>과 <구타유발자들>이 흥행실패했던 원신연 감독에게 첫 흥행의 기쁨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세븐 데이즈>는 <가발>과 <구타유발자들>이 흥행실패했던 원신연 감독에게 첫 흥행의 기쁨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충무로에서 흔치 않은 스턴트맨 출신 감독

원신연 감독은 '스턴트맨'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감독으로 1996년 <피아노맨>, 1997년 <넘버 쓰리>와 <깊은 슬픔>, 1999년 <카라> 등에서 무술감독을 맡았다. 그렇게 정두홍 감독처럼 전문 무술감독의 길을 가는 듯 했던 원신연 감독은 2000년대 들어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들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2003년에는 단편영화 <빵과 우유>를 통해 여러 영화제에서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 받았다.

2005년 채민서와 유선, 걸그룹 티티마 출신의 김소이 등이 출연했던 공포영화 <가발>을 통해 데뷔한 원신연 감독은 이듬해 한석규와 이문식,오달수 등이 출연한 독특한 장르의 범죄코미디 <구타 유발자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전국 54만에 그친 <가발>에 이어 한석규를 비롯해 유명배우들이 출연했던 <구타 유발자들> 역시 영화에 대한 호평과는 별개로 전국 16만 관객에 머물며 흥행에서는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흥행에서 두 번이나 큰 실패를 경험했지만 원신연 감독은 좌절하지 않고 2007년 곧바로 3번째 장편영화 <세븐데이즈>를 선보였다. 탄탄한 각본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이 조화를 이룬 <세븐 데이즈>는 극장가의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21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원신연 감독에게는 장편영화 데뷔 후 의미 있는 첫 번째 흥행작이었다.

원신연 감독은 200억 원의 제작비가 책정된 <로보트 태권브이> 실사화 프로젝트가 무산됐지만 2013년 공유가 단독주연을 맡은 액션영화 <용의자>가 410만 관객을 모으며 또 한 번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김영하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설경구, 김남길,설현 주연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연출해 26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세 편 연속으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저력을 보였다.

원신연 감독은 2019년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있었던 봉오동 전투를 배경으로 만든 근현대사 사극 액션 드라마 <봉오동 전투>를 연출했다. 유해진과 류준열, 조우진 같은 떠오르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150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봉오동 전투>는 전국 470만 관객을 기록하며 원신연 감독의 최고 흥행기록을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원신연 감독은 올해 구교환과 유재명이 출연하는 신작 <왕을 찾아서>를 촬영할 예정이다.

김윤진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 안긴 영화
 
 김윤진은 <세븐 데이즈>에서 열연을 펼치며 대종상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김윤진은 <세븐 데이즈>에서 열연을 펼치며 대종상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원신연 감독은 데뷔작 <가발>부터 최신작 <봉오동 전투>까지 6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하면서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작이었던 <구타 유발자들>을 제외하면 한 번도 각본을 직접 쓴 적이 없다. <세븐 데이즈> 역시 2009년 차승원과 송윤아, 류승룡 주연의 <시크릿>으로 데뷔한 윤재구 감독이 각본을 썼고 원신연 감독은 각색에만 참여했다. 하지만 원신연 감독은 <세븐 데이즈>에서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관객들을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세븐 데이즈>는 주요인물을 소개한답시고 초반 이야기 전개가 늘어지는 다른 범죄 스릴러 영화들과 달리 영화 시작 10분 만에 주인공의 딸이 납치되면서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범인은 유괴사건의 피해자이자 승소율 99%를 자랑하는 최고의 변호사 유지연(김윤진 분)에게 딸의 목숨을 살리고 싶으면 여대생 살해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흉악범 정철진(최무성 분)을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나게 하라는 미션(?)을 던진다.

<쉬리>의 여전사 이방희 이후 정체기가 찾아왔던 김윤진은 2004년 미국의 인기드라마 <로스트 시즌1>에 출연하며 다시금 월드스타로 떠올랐다. 그리고 실질적인 첫 단독주연영화였던 <세븐 데이즈>에서 열연을 펼치며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김윤진이 연기한 유지연은 말로 먹고 사는 변호사임에도 딸을 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여전사 역할의 <쉬리> 때보다 더욱 몸을 많이 쓰는 연기를 했다.

관객들로부터 한국형 범죄 스릴러 영화의 수작으로 평가 받은 <세븐 데이즈>는 주요 영화제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렸다.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무려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3개 부문(음향기술상,편집상)을 수상했다.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대한민국 영화대상(2010년을 끝으로 폐지)과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청룡영화상에서는 유지연 변호사의 친구인 김성열 형사를 연기한 박희순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세븐 데이즈>는 당초 <목요일의 아이>라는 가제로 김선아가 주연을 맡아 촬영까지 일부 진행됐지만 중간에 제작이 중단됐던 영화였다. 하지만 주인공이 김윤진으로 바뀌고 제목이 <세븐 데이즈>로 변경되면서 촬영이 재개됐고 힘들게 영화가 완성됐다. <세븐 데이즈>는 지난 2015년 인도에서 < JAZBAA >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고 2018년에는 일본 아사히 TV에서 <유괴법정~세븐 데이즈~>라는 제목의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유괴사건 범인이 알고보니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
 
 김미숙 배우는 <세븐 데이즈>를 끝으로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김미숙 배우는 <세븐 데이즈>를 끝으로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 ⓒ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라디오 진행 경력만 20년이 넘을 정도로 목소리가 좋은 김미숙 배우는 안정된 연기와 우아한 외모로 많은 인기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정작 영화 출연은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출연한 영화는 단 두 편 뿐이었는데 <말아톤> 이후 2007년에 선택한 작품이 바로 <세븐 데이즈>였다. 김미숙 배우는 <세븐 데이즈>에서 놀랍게도 유지연 변호사의 아이를 납치하는 유괴범 한숙희 교수를 연기했다.

딸을 죽인 범인이 교수형으로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한숙희 교수는 유지연 변호사의 딸 은영양(이라혜 분)을 납치해 유지연 변호사로 하여금 살인사건의 범인 정철진을 풀려나게 한다.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된 정철진을 납치한 한숙희 교수는 정철진의 몸에 불을 질러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처형을 마무리한다. 모든 일을 마치고 경찰에 자수한 한숙희 교수는 유지연 변호사에게 자신의 변호를 부탁한다.

한숙희 교수의 딸을 잔인하게 살해한 흉악범 정철진 역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태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택이 아빠, <미스터 션샤인>의 장승구 등 선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최무성이 맡았다.

오광록은 영화 시작과 함께 유지연 변호사의 능력 덕분에 무죄로 풀려나는 조폭 두목 양창구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양창구는 재판이 끝나고 유지연 변호사에게 증거품을 받으면서 "나 양창구, 한 번 신세를 지면 꼭 갚아.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 재판에서 법정에 나타나 강상만(정동환 분)의 녹취테이프를 공개하며 유지연 변호사가 재판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세븐 데이즈 원신연 감독 김윤진 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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