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차이나타운>과 <뺑반>을 만들었던 한준희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드라마 < D.P. >가 대한민국 군필 남자들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D.P.란 2022년 8월에 폐지된 헌병대의 탈영병 체포조로 탈영한 병사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가진 부대를 뜻한다. 김보통 작가의 웹툰 < D.P. 개의 날 >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 < D.P. >는 탈영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각종 군대 부조리들이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병영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지만 군대는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또래의 남자들이 계급사회를 형성하며 생활하는 곳인 만큼 크고 작은 부조리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군대에서는 각 부대마다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후임들을 괴롭히는 각종 가혹행위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진화해 후임들에 의해 계승(?)되기도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부대 내에서 전해 내려오는 악습과 부조리들은 각종 사고와 연결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부대 내에서 벌어지는 좋지 않은 사건들은 되도록이면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는 군대의 특성상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은폐될 때가 많다. 지난 1992년에 개봉한 로브 라이너 감독의 <어 퓨 굿 맨>은 군대 내 부조리로 인해 벌어진 사망사고의 진실을 파헤치는 법정 스릴러 영화다.
 
 4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어 퓨 굿 맨>은 세계적으로 2억4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41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어 퓨 굿 맨>은 세계적으로 2억4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때론 액션영화보다 박진감 넘치는 법정영화 

물론 현실에서는 법정다툼을 하는 일을 최소화하는 게 가장 좋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창작물에서 법정장면은 관객들과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몰입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실제로 잘 만든 법정 장면은 많은 물량을 투입한 액션영화보다 더욱 박진감 넘치고 보는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대를 불문하고 법정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이유다.

1991년 <양들의 침묵>을 만들었던 조나단 드미 감독의 차기작 <필라델피아>는 대배우 톰 행크스에게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타이틀을 안긴 영화다. <필라델피아>는 대형 로펌의 능력 있는 선임 변호사가 성소수자이자 에이즈 환자임이 밝혀지면서 회사에서 해고된 후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임에 맞서는 법정영화다. 주연을 맡은 톰 행크스와 덴젤 워싱턴 외에도 무명 시절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조연으로 출연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기복이 심한 감독 중 한 명인 조엘 슈마허 감독이 1996년에 연출했던 <타임 투 킬>은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작품 중에서 호평을 받는 작품 중 하나다. <타임 투 킬>은 2014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매튜 맥커너히의 뽀시래기(?)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영화 후반 맥커너히가 연기한 제이크의 마지막 변론 장면은 <타임 투 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1990년대 중반 짧았던 슬럼프를 극복하고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노팅힐>을 연속으로 흥행시키며 제2의 전성기를 연 줄리아 로버츠는 2000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에린 브로코비치>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이기도 한 에린 브로코비치-엘리스는 법률 사무소에서 일했던 환경운동가다. 영화에서도 소송과 법정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에린 브로코비치는 실제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법조인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이후 법정영화가 자주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소수의견>과 <성난 변호사> <의뢰인> <재심> <변호인> 등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법정영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다. 2013년 개봉해 1280만 관객을 울렸던 이환경 감독의 휴먼드라마 < 7번 방의 선물 >에서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용구(류승룡 분)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법정장면이 영화 속에서 매우 중요하게 등장한다.

명령복종 때문에 망각했던 해병대의 정신
 
 잭 니콜슨은 <어 퓨 굿 맨>에서 권위적인 전방부대 지휘관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잭 니콜슨은 <어 퓨 굿 맨>에서 권위적인 전방부대 지휘관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군기(軍紀)는 '군대의 기강'을 의미하는 단어로 언제든지 지휘관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적과 가까운 곳에서 대치하며 24시간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전방부대에서는 군기가 더욱 중요하게 요구된다. 그리고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던 불특정 다수가 모여 생활하는 군대에서 군기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방법은 안타깝게도 바로 '폭력'이다.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어 퓨 굿 맨>은 '코드 레드'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나 소방용어에서나 쓰일 법한 쿠바의 미 해병 경비부대에서 쓰던 '얼차려 용어'다. 쿠바의 인접지역 콴타나모 해군기지 해병대 경비중대의 네이선 제섭 대령(잭 니콜슨 분)을 비롯한 지휘관들은 적과 대치하며 강한 군기를 유지해야 하는 부대의 특성상 '코드 제로'는 필요악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코드 제로'를 지시했던 자신들에게 수사망이 좁혀 오자 명령을 실행한 병사에게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다.

톰 크루즈는 출세작인 <탑건>에서 해군 파일럿을 연기한 적은 있지만 군 법무장교 역을 맡은 것은 <어 퓨 굿 맨>이 처음이었다. 군 법조인으로서 사명감이 약한 대니얼 캐피 중위는 군검찰과의 협상으로 형량을 줄이는 것에만 신경 썼지만 진실을 파헤치려는 조앤 갤러웨이 소령(데미 무어 분)의 열정에 감복해 제섭 대령을 증인석에 앉혔다. 참고로 <어 퓨 굿 맨>에서는 할리우드 최고 스타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의 러브라인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은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였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출연분량에도 엄청난 카리스마로 법정을 휘어잡은 인물은 바로 아카데미 3회(주연2회, 조연1회), 골든글로브 6회(주연 5회, 조연1회) 수상에 빛나는 대배우 잭 니콜슨이었다. 로스쿨을 갓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캐피 중위를 못 마땅해 하는 권위적인 지휘관 제섭 대령은 법정에서 군기의 중요성을 주장하다 자신이 '코드 레드'를 명령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그렇게 사건의 가해자로 내몰렸던 해럴드 도슨 상병(볼프랑 보디슨 분)과 로든 다우니 일병(제임스 마셜 분)은 지휘관의 명령을 따른 것이 인정돼 살인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끝내 불명예 제대를 피하진 못했다. 다우니 일병은 잘못이 없는 자신이 왜 불명예 제대를 당하냐며 화를 냈지만 도슨 상병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바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느라 약자를 지켜야 한다는 해병대의 기본정신을 망각한 것이다.

톰 크루즈의 반대편에 있던 군검찰 케빈 베이컨
 
 톰 크루즈와 법정다툼을 벌인 군검사 잭 로스 대위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케빈 베이컨이었다.

톰 크루즈와 법정다툼을 벌인 군검사 잭 로스 대위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케빈 베이컨이었다. ⓒ 콜럼비아트라이스타(주)

 
<어 퓨 굿 맨>을 연출한 로브 라이너 감독은 1986년 리버 피닉스 주연의 <스탠 바이 미>를 통해 이름을 알린 후 1989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연출하면서 일약 스타감독으로 떠올랐다. 1990년 공포스릴러 영화 <미저리>를 연출하며 변신을 단행한 라이너 감독은 1992년 군대 내 부조리를 고발한 법정 스릴러 <어 퓨 굿 맨>을 통해 골든글로브 감독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액션물에서도 주인공과 치열하게 싸우는 강한 빌런이 있어야 영화가 더욱 재미 있어지는 것처럼 법정물에서도 주인공 못지 않은 입담과 논리를 보여주는 상대측 검사나 변호사가 있어야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워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어 퓨 굿 맨>에서 케빈 베이컨이 연기한 군검찰 잭 로스 대위는 뛰어난 논리로 두 주인공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물론 로스 대위 역시 군검찰로서 본분을 다했을 뿐 <어 퓨 굿 맨>의 악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업에서도 말단직원이 회장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처럼 군대에서도 명령체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어 퓨 굿 맨>에서도 제섭대령이 명령한 '코드 레드'를 해군기지 경비소내장 조너선 켄드릭 중위가 도슨 상병에게 명령하고 도슨 상병이 이를 다우니 일병에게 전달한다. 법정에서 끝까지 '코드 레드'를 명령한 적이 없다고 거짓진술을 했다가 체포되는 켄드릭 중위를 연기한 배우는 드라마 < 24 >로 유명한 키퍼 서덜랜드였다.

<어 퓨 굿 맨>에서는 법정에서 여러 증인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는 칼 햄메이커 상병 역을 맡은 무명 시절의 쿠바 구딩 주니어도 있었다. 햄메이커 상병은 법정에서 피해자인 윌리엄 산티아고 일병(마이클 데로렌초 분)이 사망하기 전날, 켄드릭 중위가 병사들을 집합시켰을 때의 내용과 상황을 진술했다. 쿠바 구딩 주니어는 4년 후 톰 크루즈와 <제리 맥과이어>에서 재회해 열연을 펼치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어 퓨 굿 맨 로브 라이너 감독 톰 크루즈 잭 니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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