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빅슬립>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빅슬립>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1.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것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말고, 사회와 미디어가 찍어내듯 반복하는 이야기 말고, 그보다 더 아래에, 더 짙게 깔려 있는 어둠들. 그 속에서 뒹굴다 어렵게 제자리로 돌아온 이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두려움을 이미 경험해 본 이들이 밖으로 나와 일반 사람들이 떠드는 명암을 듣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될까? 그 끝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지금 자신이 어떤 곳을 향해 기어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까불거리는 이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 모습을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상대가 아직 아무것도 모를 청소년에 불과하다면 더욱더.

김태훈 감독의 장편 연출작 <빅슬립>에는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가출한 청소년의 인생이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기영(김영성 분)과 오갈 데 없는 가출 청소년 길호(최준우 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추운 새벽, 집 앞 평상 위에서 작은 난로 하나에 의지해 잠들어 있던 길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곁을 내어주는 기영의 모습이 이 작품의 첫 시작이다. 이후 영화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가정 폭력이 청소년을 얼마나 쉽게 길거리로 내몰 수 있는지, 그렇게 내몰린 아이들의 끝이 어떤 모습인지, 또 이들을 구원하는 것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 비춰낸다. 극의 무게는 역시 두 인물 기영과 길호에게 주어진다. 두 사람이 마주하게 된 시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어떤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지가 극 전체를 움직이도록 한다.

02.
두 사람의 인연은 Give & Take, 기영의 어쩔 수 없는 Give와 길호의 자연스러운 Take에 의해 이뤄진다. 바깥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집에서 하루 재워줬더니, 다음날도 능청스럽게 찾아와 재워달라고 한다.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집에 있는 새아빠는 얼굴만 보면 죽일 듯이 욕을 하며 폭력을 행사한단다. 아직 열일곱밖에 되지 않은 그가 길바닥으로 내몰린 이유다. 이런 사정까지 알게 된 기영은 그를 내치지 못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집 밖에서 지내본 일이 있고, 그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뭐 한 게 뭐가 중요해, 지금이 중요하지."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모습이 어딘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외부에 대한 표현 방식이 정제되어 있지 않고 강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실제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대화의 방식이나 행동의 태도가 감정적이고 방어적이다. (기영은 도움을 주고자 하면서도 내키지 않으면 나가라는 식이고, 길호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불편한 요구는 하지 말라는 식이다.) 어쩌면 두 사람이 놓여 있던 환경이 유사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길호에게는 기영의 그런 표현이 나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단순히 따뜻한 공간을 내어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표현 안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눈만 마주치면 손부터 들고 내리치던 새아빠와는 다른 어떤 것이다. 실제로 길호는 아주 잠깐이지만 그런 길호의 품 안에서 길 위에서와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빅슬립>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빅슬립>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3.
한편, 기영에게는 길호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옥죄어오는 것들이 있다. 애증의 감정을 채 털어내지 못한 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폐기물을 불법적으로 투기하고 있는 회사의 사정을 알게 된 일이다. 어릴 적 집을 나와 인생이 꼬인 이후, 어렵사리 지금의 자리를 마련한 뒤로는 묵묵하게 주어진 일만 하면서 문제없이 살아오고자 했던 그에게는 어렵고 두려운 일들이다. 길호를 내치지 못하고 집안까지 들인 이유도 여기에 놓여 있다. 자신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옳은 길로 인도해줄 어른이 없었지만, 적어도 길호에게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보다는 조금 더 순탄한 삶을 살게 해 주고픈 마음이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들여 허락도 없이 잠을 재운 길호의 행동은 기영의 모든 마음을 무너뜨리고 만다. 그가 분노에 찬 모습으로 아이들은 물론 길호까지 내쫓아버리는 이유다. 자신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않은 길호의 행동도 문제지만, 기영의 입장에서는 모두 배신을 당한 기분일 것이다. 평생 몸을 바쳐 일하려던 회사도, 이제와 연을 끊자는 부모도, 자신의 뜻도 모르고 제멋대로 구는 길호도. 물론 길호의 입장에서는 무리의 협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택한 행동이지만 이를 그가 알 수 있을 리 없다.

"저기요. 우리 잠만 잤어요. 우리 잘못한 거 없는데?"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당당한 가출 청소년 무리는 다음날 다시 돌아와 기영의 집을 모두 박살 내버리고 떠난다.

04.
이 영화가 가출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꽤 현실적이다. 마냥 호기롭지도 않고 쉽게 교화되지도 않는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인 데다, 아무것도 없이 길바닥으로 내몰려 그럴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그저 당장의 안락함만을 (그것이 진짜 의미의 안락함인지와는 무관하게) 구할 뿐이다. 무리를 지어 빈집을 털다 경찰에 붙잡힌 무리. 그 과정에서 기영을 다시 만나 울분을 쏟아내는 길호의 모습에도, 그런 길호를 찾아 다리 밑까지 쫓아온 기영을 대하는 무리의 태도에도 그 성숙하지 못한 시기의 그림자가 그대로 일렁인다.

같은 맥락에서 앞서 언급한 기영의 문제들을 투영하는 모습에도 우회의 형식은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와 비난을 일으킬 정도로 큰 회사의 불법 행위 앞에 분노하면서도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는 그의 모습과 자신의 유년 시절을 불행하게 만든 대상의 무력한 모습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심정을 카메라는 그저 관망하듯이 지켜볼 뿐이다. 이 소재의 볼륨을 더 키우고 발전시켜 영화의 다른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것조차 거부한 채 서브텍스트를 형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스만을 던져낸다.

한마디로 이 영화가 극 중 모든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주의 깊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개입하지 않는 선, 꼭 그 안에서 머문다는 의미다. 예쁘게 포장하거나 유약한 방식으로 매듭짓지 않고 조금은 거칠 수 있지만 정확한 시선으로 말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빅슬립>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빅슬립>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5.
기영의 분노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길호는 조금 더 나은 길을 향한 걸음과 기대를 가지려던 찰나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고 만다. 한번 수렁에 빠진 발을 꺼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길호의 보호 아래에서 가지고자 했던 꿈 역시 길거리로 내몰리고 난 후에는 다시 꾸기가 쉽지 않다. 당장 오늘 몸을 뉘일 곳을 찾기에도 급급한 삶으로 돌아온 셈이다. 다만 과거와 완전히 같은 모습은 아니다. 기영이 길호에게 심은 작은 씨앗이 그 짧은 시간에도 싹을 틔우며 그의 방향을 희미하게나마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작고 사소한 관심과 도움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큼 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확인시켜준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일종의 안식과 평온이다. 이에 대해 김태훈 감독은 잠이야말로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며 이 순간의 편안함은 누구나 공평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설명한다. 짧은 시간 많은 사건을 지나며 방황하던 두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기영과 길호에게는 각자의 삶이 짊어져야 할 고난의 순간들이 앞으로도 계속 주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두 사람이 이 평화의 시간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로의 곁에 항상 두 사람이 잠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서울독립영화제 빅슬립 김영성 최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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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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