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노동주 포스터

▲ 영화감독 노동주 포스터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다 정확히는 불가능이라 여겨지던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인류가 쌓아올린 수많은 공적 가운데 한때는 불가능하다 여겨진 일이 적지 않다. 말보다 빨리 달리고, 물 위를 건너며, 하늘을 나는 일이 모두 그랬다. 어디서나 불을 피우고 어둔 밤을 밝게 하며 멀리까지 소리와 색채를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불가능에 도전하는 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영화를 만드는 일도 누군가에겐, 어쩌면 거의 모든 이들에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일이다. 시각매체인 영화를 시각장애인이 만들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 시작부터 난감함을 마주한다. 지팡이나 안내견 없인 집 밖도 제대로 나다닐 수 없는 이들이 현장을 섭외하고 사람들과 논의하며 영화를 총지휘해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감독 노동주>는 현존하는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노동주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 급작스럽게 시각장애를 얻은 중도시각장애인으로서 그는 영화찍기에 나선다. 10여 년 전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와 <한나의 하루>란 단편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는 그가 보다 많은 스태프와 함께 단편 <그냥 걸었어>를 제작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담았다. 통상의 메이킹필름에서 한 걸음 나아가 시각장애인 영화감독의 역경과 도전을 중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로 보면 좋겠다.
 
영화감독 노동주 스틸컷

▲ 영화감독 노동주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시각장애인 감독의 영화만들기
 
영화 속 영화 격인 <그냥 걸었어>는 노동주 감독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다. 주인공부터가 시각장애인으로, 감독이 가까이 사귀고 지낸 다른 시각장애인을 롤모델로 삼았다. 광주 천변을 걷던 시각장애인에게 한 여성이 관심을 보이며 일어나는 일련의 이야기로, 풋풋하고 은은한 로맨스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영화감독 노동주>는 감독으로서 노동주가 마주하는 일련의 일들을 차근히 풀어낸다. 스태프들과의 미팅부터가 그에겐 도전이다. 제작자부터 함께 촬영할 촬영감독과 스태프들을 만나 제가 찍고 싶은 영화와 가진 어려움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촬영감독은 그의 눈을 대신해 장면을 볼 것이니 사실상 통상의 촬영감독보다 중요할 터다. 노동주는 그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할 밖에 없으리라고 이야기하고 촬영감독 역시 충실히 그를 보좌하겠다 다짐한다.
 
촬영에 돌입하고도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노동주가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염두에 뒀던 시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으려는 데 대해 제작자와 촬영감독이 난색을 표한 것이 시작이다. 이들은 비전문 배우에다 시각장애인인 그를 기용하면 표정이나 몸짓 등 표현에 제약이 많을 것이라 주장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감독으로서 오래 알고 지냈으나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인을 영화를 통해 보여지게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끔 한다.
  
영화감독 노동주 스틸컷

▲ 영화감독 노동주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메이킹필름을 넘어 다큐멘터리로 

영화는 이 외에도 노동주가 겪는 여러 어려움을 하나씩 보여준다. 촬영지를 섭외하러 나가서도 장소가 어떤 감상을 일으키는지를 상상만 할 뿐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럴 때면 그는 스태프들에게 의지할 밖에 없고, 이는 매 장면 촬영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란 예술 자체가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이의 공동작업이라 말하고들 하지만, 감독 노동주에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때는 세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 중도시각장애인으로서 노동주는 제 스태프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한다. 영화는 촬영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감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영화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살뜰히 챙기길 잊지 않는다. 스태프들은 제가 보고 느낀 바에 대해 가감 없이 감독에게 설명하고 감독은 이를 받아들여 제 나름의 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어찌됐든 영화는 조금씩 나아가니 <그냥 걸었어>는 그렇게 완성에 이르게 된다.
 
스태프며 배우들에게 월급을 주고 영화를 만드는 여정이 만만할 수는 없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노동주가 안마사며 복지관 영어강사, 장애인권 강사 등으로 활동하는 모습도 영화에 담긴다. 거기서 머물지 않고 제가 쓴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투자를 받으러 제작사 대표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도 담겼다. 노동주에게 영화는 실현불가능한 무엇이 아닌 충분히 다가설 수 있는 꿈인 것이다. 그 꿈은 조금씩, 그러나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다.
 
영화감독 노동주 스틸컷

▲ 영화감독 노동주 스틸컷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노동주 본인보다는 그가 찍은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 임형진의 모습이다. 앞을 보지 못하고 소극적인 그가 스태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메라 앞에 선 뒤의 모습들이 영화를 보는 이에게도 위태롭게 느껴진다. 어렵게 캐스팅이 되고 나서도 표정이며 몸짓에서 당혹스러움이 읽힌다. 실수연발, 그러나 조금씩 변화한다.
 
백미는 영화가 다 만들어져 관객 앞에 내보이는 순간이다.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그에게 발언권이 주어진다. 그는 마이크를 쥐고 말한다. 엄마, 늘 미안하고 고마워. 그 말 한 마디에 담긴 감정이 얼마나 절절했던지 그 말을 들은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쳤다. 장애를 가진 아이는 살아가는 자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그를 좋은 마음으로 보듬는 이들에겐 또 한없이 고마운 일이 아닌가. 어쩌면 <영화감독 노동주>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과거 박중훈 주연의 <체포왕> 연출을 하기도 했던 임찬익은 <영화감독 노동주>로 영화만들기의 초심을 되짚어 본다. 비록 감독 노동주 내면의 소리를 충분히 이끌어냈다고는 못하겠으나 불가능에의 도전을 자못 감동적으로 보여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가 없지 않다고 하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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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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