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지옥만세>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지옥만세>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학교 폭력에 시달려온 나미(오우리 분)와 선우(방효린 분)는 다른 아이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사이 자살을 시도한다.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한다고 했지만 단번에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제 다른 방법이 있나 싶기도 하다. 어리숙한 실패 이후 두 사람은 SNS를 통해 채린(정이주 분)의 소식을 듣게 된다. 왕따와 따돌림을 주도하며 자신들을 이 상황에 밀어 넣은 주동자. 집이 망해 서울로 도망치듯 떠났던 그녀가 너무도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지금 세상을 떠나겠다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하다. 어차피 죽기로 한 거 그 인생에 작은 기스라도 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처참한 인생의 결말이야 이미 정해둔 상황에서 두려울 것이 없다. 나미와 선우는 채린을 찾아 복수를 할 생각이다.

임오정 감독의 영화 <지옥만세>는 십 대 소녀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학교 폭력으로 얽힌 세 사람의 모습을 통해 학교 폭력과 믿음, 옳고 그름의 딜레마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눈에 띄는 부분은 두 가지다. 학교 폭력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폭력을 전면에 내세워 전사하지 않는다는 것과 집단의식을 두고 학교의 또래 무리와 종교 시설을 동일한 위치에 놓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직접적인 폭력을 많은 장면에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동안 한국 독립 영화에서 학교 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조금 더 현실에 가까운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영화의 연출법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선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02.
자살까지 미뤄둔 채 복수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두 사람 앞에 나타난 문제는 어렵게 찾아낸 채린이 종교에 귀의한 모습으로 개과천선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멀리서 목소리만 들려도 벌벌 떠는 나미와 선우이지만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두 사람이 너무 반갑다며 왈칵 끌어안는다. 그리고 미안했다며 사과도 먼저 건네 온다. 어안이 벙벙해진다. 서울로 오면서 상정했던 상황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심지어 채린은 이 종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이미 자신의 죄를 모두에게 고백했고 회개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고 한다. 괴롭히는 상황 그 자체를 즐긴 것이 아니라 당시에 자신이 놓여 있던 상황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그랬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렇게 무릎까지 꿇고 화가 풀릴 때까지 때리라는 채린 앞에서 나미와 선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일이 한숨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내면 속 분노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을 때 상대가 먼저 무력해지거나 구원을 받았다고 여겨질 때 피해자의 마음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심지어 나미와 선우는 채린이 자신들의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그 일그러진 삶을 계속 살아야만 했고,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고자 했을 정도였으니 더욱 그렇다. 죽이는 것은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얼굴에 흠집을 내고 평생 자신들을 떠올리며 살도록 만들자고 할 정도면 거듭되며 쌓인 그 분노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러니까 이 영화가 악연으로 묶인 세 사람의 이야기를 같은 공간에 묶는 방식은 결국 분노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만큼은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기 전에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의 삶을 먼저 망가뜨리겠다는 결심. 그 계획이 가해자의 사과와 회개로 인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적어도 그녀의 삶에 작은 흠집 하나 정도는 내겠다는 또 한 번의 결심. 가해자와 두 피해자의 동행은 그런 무서운 마음에 의해 시작된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지옥만세>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지옥만세>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3.
세 사람의 이야기가 마주한 상태로 점점 선명해지는 동안 영화는 세린이 귀의했다는 종교 시설 겸 대안 학교의 이야기를 조금씩 더 키워내기 시작한다. '바시이누'라고 불리는 낙원에 가는 것이 이 종교의 최대 미션이라는 이곳은 이를 위해 노동과 봉사를 강요하고 있다. 많은 사역을 통해 봉사 점수를 가장 높이 받은 한 사람만이 남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낙원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모든 일이 기도 하나면 해결된다며 병원 가는 일조차 꺼려하는 이곳. 나미와 선우가 놓여 있던 또래 무리의 폐쇄성과 폭력성이 이곳에서 다시 한번 똑같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약 이 작품이 교내의 또래 무리와 종교 시설의 속성을 동일한 위치에 놓는 과정에서 뼈대만을 유사하게 갖추고자 설정했다면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서로 다른 지점에 놓인 두 집단을 서로 비춰내는 일은 구조나 외형적인 면만큼이나 그 내적인 속성의 유사한 정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나미와 선우의 관계를 동일하게 이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 속 또래 집단과 종교 시설 사이의 가장 큰 접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양쪽 모두의 공간에 나미와 선우가 놓여있다는 점이다.

사실 나미와 선우는 친한 친구 사이이기는 하나 서로 놓여 있던 자리가 다르다. 가장 낮은 자리에 놓여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무리 내에 속해있던 나미와 달리 선우는 그 무리에 속하지도 못한 채 일방적인 괴롭힘만 당해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집단의 경계에서 안과 밖에 위치하는 두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 종교 시설에 머무는 동안의 두 사람은 역시 같은 모습이다. 나미는 세린과 선생님(박성훈 분)의 따뜻한 말투와 행동으로 인해 집단 내부로 조금씩 스며드는 모습을 보이고, 선우는 여전히 외부인의 모습으로 이 종교 시설의 여러 부조리한 모습들을 바라보게 된다.

04.
같아도 너무 똑같다. 채린은 여기에서도 자신이 낙원에 가기 위해 경쟁자인 해진을 괴롭히고 따돌림시킨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교묘한 방법으로. 같은 상황에 놓여본 일이 있는 선우에게는 해진의 상황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고, 이는 잠깐이나마 나미와 선우가 대립하는 계기가 된다. 물론 그런 심리도 반영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채린을 물리적으로 해하기 위한 마음을 두 사람이 갖고 있지만 실제로 누군가를 다치게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다시 한 번 반복이다. 자신이 놓여 있던 자리에서 학습된 행동과 시선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만다. (여기에서는 이들이 아직 성인이 아닌 청소년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래 집단에 소속되어 그 소속감을 느껴본 나미와 철저히 홀로 버려진 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선우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완전히 같을 수 없고, 누군가를 괴롭히고 짓밟는 삶을 살아온 채린이 장소만 옮긴다고 해서 쉽게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세 사람의 내면이 복잡하게 엇갈리는 동안 나미와 선우는 채린의 사과 이면에 가장 높은 점수가 걸린 회개와 용서의 시스템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이번에도 채린은 두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이단 종교의 부조리함이 드러나며 구성원들의 추악함과 함께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동안 영화가 교내의 또래 집단과 종교 내부의 모습을 통해 일종의 부조리함을 드러냈다면, 지금부터는 일종의 반영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듯 보인다. 부조리했던 종교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또래 집단의 폭력과 일그러진 면들 또한 언젠가 모두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암시다. 여기에는 영화가 러닝타임을 통해 강하게 쌓아온 두 집단 사이의 유사성은 물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조금은 성장했을 두 소녀의 모습이 큰 힘이 될 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지옥만세> 스틸컷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지옥만세> 스틸컷 ⓒ 서울독립영화제


05.
"이런 말 다 소용없는 거 알지만, 나 너랑 같이 다니면서 덜 죽고 싶었어."

학교 폭력과 이단 종교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영화 곳곳에 배치한 유머 코드에 대해 임오정 감독은 10대 소녀들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한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웃음을 참지 못 하다가도 현실의 무게 앞에 쉽게 넘어지고 마는, 아직 여물지 못한 그 시절의 모습을 영화의 톤과 매너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관객에 따라서는 이 지점에 있어 조금 어색함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쓰러지지 않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적절해 보인다. 아무래도 이 나이대의 소녀들에게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스스로의 목을 매달고자 하는 모습보다는 울고 웃으며 친구의 이름을 힘껏 부르는, 내일의 어려움은 내일로 미뤄두더라도 오늘의 웃음을 활짝 지어 보일 수 있는 모습이 더욱 잘 어울려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미와 선우는 지옥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는 말로 만세를 외친다. 서울에 가 있는 동안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또래들의 따돌림과 폭력이 다시 곧 시작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에 이제 더 이상 내일을 포기할 것만 같은 무기력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그 어려운 시간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무너진 믿음 앞에 무력해 보이던 채린의 손을 놓지 않은 마음이라면 (용서와는 별개의 마음이다.) 앞으로의 어려움도 충분히 이겨낼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함께라면. 모든 부조리한 상황은 언젠가 깨지고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그것으로 되었다. 그저 더 많이 아파할 일만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영화 서울독립영화제 지옥만세 임오정 S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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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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