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손흥민의 눈물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손흥민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울보' 손흥민의 눈물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 손흥민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축구라는 스포츠는 인생과 같다. 이해해야 한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가나전에서 패배한 이후 기자 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축구는 인생을 닮았다. 그리고 인생은 다양한 얼굴로 찾아온다. '알 라이얀의 기적'이 만든 달콤함 역시 인생의 일부분이라면 좋겠다.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3차전 포르투갈전이 펼쳐진 12월 3일 새벽, 후반 45분이 지날 때까지 1대 1의 팽팽한 상황이 이어졌다. 16강 진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한 골이었다. 딱 한 골만 더 들어가면 되는데,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한 포르투갈은 이상하리만치 힘을 빼지 않았다.

올해 AC 밀란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끈 하파엘 레앙(AC 밀란), 베르나르두 실바(맨체스터 시티 FC)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후반에 투입될 때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포르투갈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던 추가시간, 단 하나의 찬스가 왔다. 캡틴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빈 공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와! 손흥민이 간다!'라고 외치며 흥분했지만, 한편으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월드컵 직전 리그 경기에서 당한 안와골절 부상으로 신음했다. 수술 후 회복이 덜 된 상황이지만 무리해서 마스크를 끼고 카타르에 갔다. 조별 예선 내내 손흥민은 우리가 아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의 위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손흥민의 시도는 높은 확률로 포르투갈 수비진에게 막히고, 기회는 좌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리석은 체념이었다. 결승골은 손흥민의 발끝에서 나왔다. 3~4명의 수비수가 그를 가로 막았지만, 박스 안에는 손흥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지난 두 경기를 놓쳤다가 교체 투입된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 FC)이 있었다. '황소'라고 불리는 그가 득달같이 달려와 패스를 마무리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손흥민은 마스크를 벗어 던진 채 엉엉 울었다. 슈퍼스타이자, 캡틴인 그가 지금까지 감당했을 무게를 감히 가늠해보았다. 90분의 공놀이는 90분을 넘어 수년 치의 서사를 담고 있다.

벤투호가 만든 레모네이드

영겁처럼 느껴진 가나와 우루과이의 추가 시간이 지나, 16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늘 도전자였던 우리의 목표 달성이자, 영화같은 서사의 완성이었다. 손흥민의 안와골절 부상 이외에도 우리에게 닥친 '위기'의 조건은 충분했다. 가나전 종료 후 퇴장당한 벤투 감독은 관중석을 지켰다. 수비의 사령관인 김민재(SSC 나폴리)도 종아리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않았다. 이른 선제 실점(전반 5분)이 보여주듯, 수비의 견고함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오히려 일련의 위기 속에서 희망이 빛을 발했다. 이른 실점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압박과 빌드업 등 준비된 축구에 집중했다.

늘 16강의 문턱을 넘지 못한 슈퍼스타, 부상과 부진으로 마음고생하던 선수들의 합작 골, 자신이 지휘했던 조국을 상대한 감독, 빌런의 역할을 도맡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리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16강 진출까지. 이른바 'K 신파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서사가 카타르에서 현실로 구현되었다. 

나는 이렇다 할 애국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스포츠 애국주의(Sport Patriotism)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 '선수들이 골을 넣는다고 나한테 이득이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의 아드레날린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다. 미움과 혐오, 조롱이 모든 것을 잠재우는 시대에, 여럿이 함께 부둥켜안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우직하게 도전하는 이들의 모습은 동시대인들에게 따스한 여운을 남길 것이라 믿는다.

경기장에 엎드려 울고 있는 손흥민, 그리고 경기장에서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펼치는 선수들을 보면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인생이 레몬을 준다면 그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서구의 오랜 속담이 떠올랐다. 마침내 레모네이드를 만든 벤투호에 축복을 보낸다. 이들이 만든 인간적인 드라마 덕분에 행복했다. 다가올 16강 브라질 전은 즐기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월드컵은 축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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