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는 싱글 대디가 지난 18일 방송된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를 찾았다. 첫째 아들은 15세, 세 자매는 각각 초등학교 5학년, 4학년, 2학년이었다. 아빠는 어떤 고민이 있어 오은영에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그는 세 자매가 아이에서 여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 사춘기를 맞은 딸들의 세상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쉽지 않은 듯했다. 

매일마다 운동을 하며 체력을 관리하는 아빠는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케어했다. 식사를 준비하고 머리까지 묶어주는 손길이 능숙했다. 세 자매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아빠는 속옷 가게를 방문했다. 여자 속옷을 고르는 일은 싱글 대디에게 어렵기만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구매에 성공했다. 그리고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속옷 착용 방법을 연구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좋아하는 눈치였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은 무슨 까닭인지 분위기가 어두웠다. 막내가 음식을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려 하자 아빠가 이를 지적했다. 언니와 오빠는 모두 자리를 뜨고 막내만 혼자 남았는데, 아빠는 뒤에 앉아 꼭꼭 씹어 먹는지 감시했다.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아빠가 화를 내자 막내는 울컥하고 말았다. 항상 식사 때마다 막내와 부딪치는 아빠는 엄마 몫까지 챙기느라 엄한 아빠가 되어 버렸다. 

오은영 박사는 아빠가 애를 많이 끈다고 격려하면서도 막내의 저작(咀嚼) 문제가 건강 이슈로 이어질까봐 우려했다. 아빠는 막내가 두 돌 무렵에 엄마와 헤어졌는데, 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빨리 안 먹는다고 타박했다고 털어 놓았다. 매일 혼나다 보니 음식을 거부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오은영은 막내가 구강 자극을 못 다루는 듯하다며, 부정 교합이 저작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금쪽이네는 다 함께 봉인당을 찾았다. 6년 전 췌장암 투병 중 예고도 없이 곁을 떠난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6년이 지나도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얼굴을 마주한 아이들은 울음을 삼키려 애썼지만, 결국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잘 키운다고 했는데.." 아빠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아빠는 힘내서 잘 키워보겠다며 떠난 아내 앞에서 서글픈 다짐을 했다. 

금쪽이 아빠는 6년 전 상황을 회상하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아내를 황망하게 보내고 5개월 만에 또 한번의 이별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며느리를 가장 예뻐했던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그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1년 사이에 연이은 이별을 경험하고, 예상하기도 힘든 상실감에 괴로웠을 그의 심정이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오은영은 아이들이 엄마의 죽음에 대해 충분히 애도를 했는지 질문했다. 아빠는 한 명이 울면 온 가족이 울음 바다가 될 게 뻔하기 때문에 "울지 마라, 적당히 울자"고 만류했었고, 아이들이 힘들어할까 봐 엄마 사진도 거의 다 태워버렸다고 대답했다. 실컷 운 적이 있냐는 묻자, 아내를 화장하는 날 아이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써 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했는지 아빠는 다시 한번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한참을 흐느껴 우는 걸 지켜본 오은영은 생각과 감정은 별개라며, 지금처럼 속절없이 느껴지는 게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별 후의 애도는 당연한 과정이고, 슬픔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더 이상 참지 말고 가족과 슬픔을 나눠보라고 조언했다. 

"아빠가 안 아프기 위해서 노력이 아니라 발악을 하는 거야." (금쪽이 아빠)

온 가족이 모여 앉았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대뜸 아빠가 아프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아이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셋째는 아빠가 던진 무서운 가정에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강한 불안을 느끼는 듯했다. 언니가 울자 막내도 따라 울었다.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집안 내력에 당뇨가 있는 아빠는 유독 건강에 집착했다. 금쪽이네는 이대로 괜찮을까.
 
다음 날, 둘째는 혈당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학교 보건실을 찾았다. 평소 고햘당과 저혈당을 왔다갔다 하는데, 이번에는 과도하게 높은 수치가 나왔다. 극단적인 당 수치에 당뇨가 의심됐다. 실제로 둘째는 1형 당뇨(몸에서 혈당 조절 호르몬인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혈당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질환)를 진단받은 상태였다. 뚜렷한 원인이 없어 전반적으로 조심해야 했다. 

둘째의 건강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혈당 쇼크로 몇 번이나 위급한 상황을 겪었고, 119에 실려간 적도 10번 정도 됐다. 아빠는 자신이 직접 심폐 소생술을 실시해 3번이나 살려냈었다며, 한 번은 병원에서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어 가슴이 철렁했다고 털어 놓았다. 딸과의 이별은 그에게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던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식사 시간, 아빠는 둘째에게 식단 관리는 목숨과도 같은 일인데, 어째서 기록하지 않았냐고 혼을 냈다. 둘째는 수학여행을 간 날이라고 둘러댔지만, 아빠는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식사 시간은 불편해졌고, 셋째와 막내도 눈치를 봐야 했다. 딸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기에 냉정해야만 하는 아빠와 방에 들어가 숨죽여 우는 아직 어린 둘째, 그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새벽 1시까지 둘째 딸의 당 수치를 체크하던 아빠는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힘겹게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은 혈당 체크였다. 갑자기 저혈당 쇼크가 올까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난 아빠는 다시 혈당을 체크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아빠의 수면 시간은 최대 5시간, 평소에는 2시간 남짓이었다. 그러다보니 코피를 쏟는 날이 많았다. 

"상황은 다 이해하겠어요.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죽음과 연관되어 있어요. 즐겁게 행복하게 잘 생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죽지 않기 위해서 죽게 될까봐 죽으면 큰일나니까. 너무 심각하고 비장한 것 같아요." (오은영)

오은영은 식사 시간이 지나치게 비장하고 괴로워 보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하면 금쪽이네가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지낼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 오은영은 문장 완성 검사 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4남매의 답변에 목이 메이고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첫째는 '우리 집 빚이 다 갚아지는 것', 둘째와 셋째는 '아빠가 건강해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보통 그 나이대에는 나를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하기 마련인데, 금쪽이네 4남매는 하나같이 '나'보다 '아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준이 배려의 차원을 넘어 눈치를 보는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조차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자녀가 일찍 철이 드는 건, 기특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부모에게만 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금쪽이가 제일 두려운 건 뭐야?"
"아빠가 돌아가시는 거, 엄마처럼.." (둘째)


오은영의 금쪽 처방은 '엄마를 그리워해도 괜찮아' 프로젝트였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에 있어 충분한 애도는 무엇보다 중요한데, 금쪽이네는 그 과정이 부족했다. 슬픔을 미루기만 했고, 그 때문에 마음 속 상처가 치유되지 못했다. 오은영은 주변으로부터 엄마 사진을 많이 받아 집 안에 걸어두고 지난 추억을 함께 나누라고 조언했다. 슬픔을 미루지 말고 가족들과 충분히 나누라는 의도였다. 

'엄마의 품' 텐트를 만들어 힐링의 공간으로 삼았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텐트를 찾았고, 학교를 가기 전에도 인사를 잊지 않았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도 썼다. 금쪽이네에서 엄마는 더 이상 슬픈 존재가 아니었다. 며칠 뒤, 아빠는 엄마와의 추억들을 들려주는 시간을 만들었다. 몰랐던 엄마 이야기를 듣게 된 아이들은 관심을 보였다. 

아빠는 병원에 있던 엄마의 사진도 처음으로 보여줬다. 또, 엄마의 마지막 순간도 공개했다. 병상에 누운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는 참지 말고 함께 울기로 했다. 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슬픔을 마음껏 쏟아냈다. 애도 후,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첫째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고, 둘째는 1형 당뇨 멘토와 정기 상담을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의 얼굴이 새겨진 다섯 개의 팬던트를 준비했는데, 가슴에 지니고 다니며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했다. 솔루션을 통해 셋째와 막내도 조금씩 밝아졌고, 오은영에게 직접 전수받은 저작 방법으로 꾸준히 훈련한 덕분에 막내도 이제 식사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아빠의 변화도 가시적이었다. 그는 더 이상 슬픔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하늘에 있는 아내와 일상을 공유하며 마음을 다잡아갔다. 금쪽이네에 행복이 가득하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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