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 작곡가는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에 스위스에서 열린 제76회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의 작곡 부문에서 1위를 수상했다.

김신 작곡가는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에 스위스에서 열린 제76회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의 작곡 부문에서 1위를 수상했다. ⓒ ⓒ Anne-Laure Lechat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한 편성에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제76회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의 작곡 부문에서 1위 수상의 쾌거를 전한 차세대 젊은 작곡가인 김신(27)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1970년대 초반, 정명화 첼리스트의 수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 대회는 1939년에 시작해 오랜 역사를 자랑할만큼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콩쿠르다. 쇼팽 콩쿠르(폴란드), ARD 국제콩쿠르(독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벨기에) 등 국제적 명성이 있는 콩쿠르들의 연합체인 세계국제음악콩쿠르연맹(WFIMC, The World Federation of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에 소속된 대회로,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음악콩쿠르 중 하나다. 

역대 한국인 우승자로는 1971년에 최초로 수상됐던 첼리스트 정명화를 비롯해 10년 전부터는 작곡가 조광호(2013년), 피아니스트 문지영(2014년), 작곡가 최재혁(2017년), 퍼커셔니스트 박혜지(2019년) 등 젊은 수상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국내 대중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씨가 수상한) 작곡 부문은 2년에 한 번씩, 다른 부문은 순서를 바꿔가며 매년 열리고 있다. 무엇보다 작곡은 매번 요구하는 편성이 달라서 오랫동안 미리 준비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긴 역사를 가진 콩쿠르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많은 지원자들이 몰렸는데, 이번에는 총 97명이 경연에 참여했다.

'6인의 보컬앙상블, 선택적 전자음향 사용 가능'

제네바 콩쿠르는 다른 대회와는 다르게 매번 편성을 다르게 제시한다. 그래서 지원자들은 미리 작품을 준비할 수 없기 때문에 김 씨도 처음 편성을 받자마자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할" 정도라며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특히 사람의 목소리가 직접적이며 주요하게 들어가야 할만큼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전달'에 초점을 맞췄다. 덧붙여 전자음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 구상하며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에 몇 배의 시간을 투자할만큼 정성을 들였다.

"아무래도 성악 앙상블을 위한 곡이다보니 작업할 때마다 직접 노래를 부르고, 목소리로 여러 실험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작곡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그는 최종 결선에 오른 세 명의 지원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마이크를 사용하게 된 이유를 묻자 그가 준비한 과정을 이렇게 들려줬다. "우선 편성에 '선택적으로 전자음향을 사용할 수 있다'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사용 가능한 전자음향 기기 목록에 마이크가 보이더라구요. 이밖에도 여러 음향기기와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전자음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것은 굳이 사용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에게서 나는 소리를 적당히 보완해주면서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음향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역할로는 마이크가 적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수상한 '오네이로이의 노래(The Song of Oneiroi)는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사람의 꿈에 담긴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꿈 속에서 겪는 공간, 시간적인 왜곡에 대한 작품이라며, 이를 위해 자신이 직접 꾼 꿈을 곡의 주요 구조로 삼았다. 꿈의 다양성과 입체성은 사람의 인격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에 인격을 부여했고, 이를 위해 그리스 고대 문학에 나오는 꿈의 화신인 '오네이로이'를 곡의 화자로 삼은 것이다.

"이번 요강은 '여섯 성부의 목소리'를 위한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닌 '6인으로 이루어진 보컬 앙상블'을 위한 곡이기 때문에, 단지 목소리뿐 아니라 박수와 들숨, 날숨, 발 구르는 소리 등까지 함께 활용해 음악을 더 흥미롭고 입체적으로 진행시키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소리들을 증폭시키는 데에는 마이크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번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의 수상 소식을 알리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9월에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콩쿠르 교향악 작곡 부문에서 우승한 바 있다. 2022년은 그에게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다양한 콩쿠르에서 상을 타기는 했지만 올해가 돋보이는 이유는 연이은 국제대회에서 수상함으로써 이제는 국내를 너머 전 세계에서도 주목하는 작곡가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고, 마치 꿈을 꾼 것 같아요. 마냥 행복하고 기쁘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이 무거움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세계에서 주목해줬으니 더욱 겸손하고 성실하게 정진해서 정말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하는 아창제
 
 지난 10월 26일, 제76회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에서 김신 작곡가는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지원자들 중 1위를 수상했다.

지난 10월 26일, 제76회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에서 김신 작곡가는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지원자들 중 1위를 수상했다. ⓒ ⓒ Anne-Laure Lechat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그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는 학부로 재학 중이던 2016년부터 약 1년간 공부를 했다. 당시에 서울에서 유학을 준비 중이던 2021년에는 제13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의 양악 부분에 선정된 경력이 있다. 이렇게 길지 않은 작곡가의 경력임에도 불구하고 국내를 벗어나 세계적인 작곡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로 아창제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아창제는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현대음악계에서 큰 역할을 해왔는데, 작곡을 전공하고 있는 많은 학도들과 젊은 작곡가들에게는 꿈의 무대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마침 새로 쓰고자 마음 먹은 곡이 아창제에서 연주될 수 있는 편성이었기에 이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곡이 <혼잣말 7번>이었다. 

"아창제는 제가 꾸준하게 작곡할 수 있는 것에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아창제 당선된 이후에는 '앞으로도 꾸준히 작곡하면 또다른 좋은 기회가 올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아창제 당선은 저뿐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의 경력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력서에 눈에 띄는 한 줄 더 채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대회를 통하여 작곡가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지 가능성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들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한편, 아창제에 당선된 작품이 워낙에 크고 야심찬 곡이었기 때문에 곡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연주과정을 지켜봄으로써 하나의 곡을 완성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 단계 더 높은 도약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곡가들이  오케스트라 작품이 실제로 연주되는 것을 직접 보면서 음향 효과와 악기 사용의 효율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과정 덕분에 그는 아창제 때 얻은 것들을 이후의 작품들에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덧붙여 이런 과정이 모여 이번 콩쿠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콩쿠르가 끝난 이후 그는 여러 곳으로부터 위촉 제안들을 받고 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왕립음악원 (Royal Academy of Music)에서 지난 9월부터 루벤스 아스케나르(Rubens Askenar) 교수의 지도 아래 석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국제현대음악협회 한국지부 회원이자 앙상블 소노르21의 상임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 활동 계획을 이렇게 들려줬다. 

"내년 1월에 런던의 듀크홀에서 지휘자 니콜라이 포드빈의 지휘로 제 관현악곡 <님을 위한 행진곡에 의한 교향적 환상곡>이 재연될 예정이고, 내년 여름 전에 런던에서 제 신작 5곡이 초연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위촉을 받아 현재 조율 중에 있으나, 대부분 내년이나 내후년에 연주 및 녹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4년도에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콩쿠르 우승작인 제 첫 교향곡이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초연될 예정입니다. 교향곡 1번 완성 후 바로 2번 교향곡을 쓰고 있는데, 이 곡도 좋은 곳에서 좋은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 아창제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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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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