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는 자신에 적대적인 언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덴마크 드라마 'Borgen'(이하 보르겐)은 총리 비르기트와 언론인 카트리네, 권력자와 그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을 두 가지 큰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보르겐>은 방영 당시 덴마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시청했고,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덴마크 드라마로 손꼽힌다. 부패인식지수 세계 1위(2022년 국제투명성기구 발표), 언론자유지수 세계 2위(2022년 국경없는기자회 발표) 덴마크 사회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망언 한마디에 대변인 해고한 총리
 
 덴마크 드라마 <보르겐(Borgen)>의 주인공 비르기트 총리

덴마크 드라마 <보르겐(Borgen)>의 주인공 비르기트 총리 ⓒ 넷플릭스

 
드라마는 총리의 아내가 국고 7만 크로네(한화 약 1300만 원)를 사적으로 쓴 일이 탄로 나 선거에 크게 패하며 시작한다. 집권 여당은 부정(不正)으로 망했고, 제1야당은 흑색선전으로 국민의 반감을 샀다. 이에 세 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한 온건당의 대표 비르기트는 예기치 못하게 총리가 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덴마크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다. 전체 의석 179석 중 과반 90석 이상을 획득한 정당이 내각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다당체제가 선명한 덴마크 의회 특성상 한 정당이 과반을 독식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 여러 정당이 연합한 '연립정부'가 출범한다.

비르기트는 절대 다수당이 없는 혼란한 정국에서 다른 정당들과 가까스로 타협에 성공해 내각을 구성한다. 한편 약한 지지기반 때문에 임기 내내 반대 진영의 공격에 시달린다. 극 중 가상의 신문사 '엑스프레스'는 비르기트 내각에 악의적인 흠집 내기를 일삼는 곳이다.

생방송 TV 토론에 출연한 총리실 대변인은 흥분한 나머지 '엑스프레스' 편집장에게 '망언'을 하고 만다.

"'엑스프레스'의 주요 고객층은 가장 수준 낮은 대중입니다. 솔직히 '엑스프레스'에 한해선 언론의 자유를 좀 제한해도 좋겠죠."

이를 본 비르기트는 몹시 분노하고, 바로 다음 날 대변인은 해고된다. 고작 1300만 원어치 횡령에 정권이 바뀌고, 망언 한마디로 자리가 날아갔다. 한국의 시청자로선 당황스러운 시작이다.
 
 카트리네는 언론인으로서 종종 비르기트와 충돌하는 인물이다.

카트리네는 언론인으로서 종종 비르기트와 충돌하는 인물이다. ⓒ 넷플릭스

 
또 다른 주인공 카트리네는 언론인으로서 권력 감시라는 본분에 충실하며 비르기트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다. 당연히 "외람되오나" 같은 말은 그녀 사전에 없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방송국은 총리 가족을 밀착 취재할 기회를 얻는 대신 편집권을 총리실에 넘겼다. 이 사실을 알게된 카트리네는 사직서를 제출한다.

"당신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 죽어가는 전 세계 기자들에게 침을 뱉었다. 나는 알아서 재갈을 무는 일에 동참하지 않겠다."

권력자가 의도적으로 연출한 사진이 보도되는 한국의 시청자로서 또다시 당혹스러움을 느껴지는 대목이다. 문제된 영상은 정책에 관련한 내용도 아닌, 비르기트 총리의 일상생활을 취재한 것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총리 측이 편집권을 스스로 폐기하며 끝난다.

비르기트와 카트리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지만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선을 지킨다. 그 선은 바로 언론의 자유다.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덴마크인의 높은 긍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NO 리메이크, NO 각색"

<보르겐> 제작진이 세운 원칙은 단순하다.

"사회의 현안을 각색 없이 다룬다."

작품 속 다양한 정당이 대립하고 또 연합하는 구도는 현실과 흡사하다. 모든 소재는 실제 덴마크 사회에서 가져왔다. 극 중 이야기되는 연금 개혁, 기후 정책, 여성 임원 할당제,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은 덴마크 폴케팅(Folketing, 의회)이 실제로 논의했던 의제다.

2022년 6월 새 시리즈로 돌아온 <비르기트: 왕국, 권력, 영광 (Borgen: Power & Glory)>은 그린란드의 자원 분쟁을 다룬다. 현직 의원이자 전 외교부 장관 마르틴 리데고르가 자문에 직접 참여해 더욱 현실감을 높였다.

리데고르 의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덴마크 정치인이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정말 덴마크가 <보르겐> 같냐는 것인데, 드라마에서 다뤄진 모든 것들이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All that happens could be reality)"라고 답했다.
 
 11월 10일, MBC '대통령 순방' 취재진은 민항기를 통해 출국했다.

11월 10일, MBC '대통령 순방' 취재진은 민항기를 통해 출국했다. ⓒ MBC

 
'MBC 취재진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뉴스와 <보르겐>을 번갈아 보고 있자면 어느 쪽이 허구인지 헷갈린다. 덴마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 만큼 멀게 느껴지다가도, 오히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저쪽이고 우리는 하나도 웃기지 않은 블랙코미디 영화 속 단역같다. 물론 가장 웃기지 않은 점은 이게 영화가 아니란 사실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순방에 MBC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1월 9일, 동남아 해외순방을 앞두고 대통령실이 출입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다.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특정 언론사에 불이익을 준 것이다. 불과 6개월 전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를 35회 언급했다. '자유'를 쉽게 입에 올리는 권력자, 역설적이게도 언론의 자유는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보르겐>의 인물들이 '자유'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에 가슴 벅차오름도 잠시, 한국의 정치뉴스로 채널을 돌리자 마음은 다시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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