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세상 모든 연극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을 꼽으라면 답은 이 작품일 수밖에 없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보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이들에 의해, 더 자주 무대 위에 올려진 작품은 정말이지 단 한 편도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정수라 불린 4대 비극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 있는 이 작품은 무려 500년을 지나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관객을 모을 만큼의 명성을 얻었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손을 거쳐 무려 수백년 동안이나 고뇌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남았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고뇌하게 했는가.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배신, 작은 아버지의 비열함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햄릿은 선왕의 복수를 하려 하고 끝없이 괴로워하며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다.
 
햄릿: 소리의 심리학 포스터

▲ 햄릿: 소리의 심리학 포스터 ⓒ 하랑씨어터

 
소리로 햄릿의 심리를 표현한다

하랑씨어터가 고양문화재단과 함께 이달 선보인 <햄릿: 소리의 심리학>은 <햄릿>의 결정적 순간들을 발췌해 모아놓은 음악극이다. '소리의 심리학'이란 명명에서 볼 수 있듯, 햄릿과 극중 인물들의 심리를 소리로 표현했다.

클라리넷, 플루트, 첼로, 비올라, 피아노의 선율이 <햄릿>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소리로 풀어내는 가운데, 다섯 배우가 햄릿부터 클로디어스와 거트루트, 오필리어, 플로니우스 등의 캐릭터를 돌아가며 연기한다. 이 같은 구성은 현대 유럽 연극에서 종종 확인할 수 있는 바이지만 한국에선 흔히 마주할 수 없는 것인 만큼 파격적 형식이 눈길을 끈다 하겠다.

모두 10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이뤄진 극은 <햄릿>의 90분짜리 하이라이트라 해도 될 만하다. 극은 햄릿이 두 친구와 만나는 2막 2장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여성인 남명지 배우의 강렬한 연기로 관객에게 독특한 극의 출발을 알린다. 다섯 개의 선율이 서로 덧씌워지는 가운데 극은 점차 격렬한 소용돌이 가운데로 향해간다.
 
햄릿: 소리의 심리학 공연사진

▲ 햄릿: 소리의 심리학 공연사진 ⓒ 하랑씨어터

 
소리로 되살아난 연극 속 명장면

극은 <햄릿> 속 가장 강렬한 열 개의 장면을 하나씩 소환한다. 햄릿은 오필리어에게 결별을 고하고, 제 아비를 죽인 왕을 죽이겠다 결심하며, 선왕이 죽은 뒤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어머니에게 격렬한 반감을 표출한다. <햄릿>을 읽어본 이라면 오래 전 접한 장면이 하나씩 머릿속에 떠오를 법한 강렬한 재현으로, 고뇌며 갈등이며 분노 따위를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제법 새롭게 다가온다.

원작을 그대로 되살리는 대신 발췌해 새롭게 표현하는 시도는 기존 극의 주제의식 사이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듯도 보인다. 내면에서 충돌하는 자아가 햄릿을 넘어 작가와 배우, 관객들 가운데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은 식상하긴 할지언정 완전히 무의미하진 않은 질문이다. 셰익스피어와 연출자의 언어와 그가 역시 발췌한 양귀자의 글 너머로 어떤 관객은 제 안에서 충돌하는 자아를 목도하는 경험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한국의 평범한 관객들에게 <햄릿>은 익숙한 극이지만 그 내용이 그렇느냐 하면 그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 보통의 관객들은 셰익스피어와 햄릿을 들어보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이름 뿐이다. 누구든 그들을 붙들고 <햄릿>에 대해 말해보라 하면 덴마크의 왕자란 사실은 커녕 아버지와의 만남이나 어머니의 재혼 같은 기본적인 설정조차 떠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십중팔구가 아닐까. 그럼에 이 땅에 이 극을 변형해 소개하려는 자는 관객이 극에 자연스레 몰입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햄릿: 소리의 심리학 공연사진

▲ 햄릿: 소리의 심리학 공연사진 ⓒ 하랑씨어터

 
고전과 음악의 현대적 결합

불행히도 <햄릿: 소리의 심리학>은 그 역할을 소홀히 한 듯 보인다. 햄릿의 고뇌며 분노가 관객의 감정선을 크게 앞지르고 음악 역시 마찬가지여서 적잖은 관객이 극에 자연스레 몰입한 기회를 잃고 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실제로 이날 극을 함께 감상한 이들도 이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관객이 극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제작자의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소리를 통해 극중 인물의 심리를 풀어 설명하겠다는 시도는 제법 참신한 것이어서 이 같은 괴리는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심청전> 같은 한국 전래동화나 이순신의 이야기를 이와 같이 만들었다면 관객의 이해가 훨씬 높았을 게 분명하다. 이 시대 한국의 평균적인 관객의 이해를 놓고 보자면 <햄릿>과 <심청전>, <햄릿>과 이순신 사이에 큰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할 때 <햄릿: 소리의 심리학>의 표현방식과 콘텐츠 선택 사이엔 무리한 지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엔 매력적인 요소가 적잖다. 적어도 <햄릿>을 먼저 접한 이들에겐 이 극이 던지는 해석이 제법 흥미로울 게 분명하다. 어쩌면 훗날 <햄릿> 속 장면을 떠올릴 때면 이 극 속 음악이 함께 들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음악은 그렇게 사람 깊이 비집고 들어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는 것이다. <햄릿: 소리의 심리학>이 이뤄낸 미덕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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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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