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본즈 앤 올>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본즈 앤 올>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의 흥행으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국내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이탈리아 감독이다.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청초함을 극대화했던 지난 작품의 영향으로 그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상미를 잘 살리는 감독으로 국내에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그가 진짜 강점을 갖고 있는 부분은 다른 지점이다. 그는 스스로가 환영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고자 노력하는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그 과정에서 극 중의 인물이 갖는 사랑의 감정, 사랑으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모습에 대한 것, 특히 클래식한 방식으로 인물의 감정을 극도로 이끌어내어 관객들이 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낸다.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을 능가할 인물이 과연 또 있을까.

영화 <본즈 앤 올> 역시 그의 그런 장점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다만 한 가지, 그는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자주 드러나는 소재의 전형적 활용을 깨뜨리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고도 불리는, 식인과 관련한 코드를 극 전반에 심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호러 장르로 인식될 만큼 장르적 속성에 온전히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에서 이처럼 고어한 느낌을 받게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놀랍기도 하다.

02.
영화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식인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는 매런(테일러 러셀 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수년간 아무 일 없이 잘 통제되던 욕망이 아버지 몰래 친구들을 만나러 갔던 자리에서 느닷없이 발현되며 가족이 숨기고 있던 자신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그 일로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빠가 자신의 곁을 떠나자, 그가 남기고 간 엄마에 대한 단서를 갖고 일면식도 없는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다. 길 위에서 만난 리(티모시 샬라메 분)와의 동행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도록 만든다. 같은 행위를 하는 이들을 만나며 두 사람 외에도 더 많은 '이터(Eater, 식인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지만, 모두가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작품에서 활용되고 있는 식인과 관련한 코드들은, 분명히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으나, 기존의 호러 작품들이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시각적 표현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의미적인 측면에서 그 이유를 더 크게 찾아볼 수 있는데, 영화 <본즈 앤 올>에서의 식인은 단순히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보다 두 주인공 매런과 리가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더 나아가 고립된 상황에서 하나로 묶일 수 있도록 강제하는 장치이자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인 로드 무비의 특징 중에 하나로 외부와 차단된 인물들의 여정이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설정은 그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인물들이 바깥으로 튕겨져 나갈 수 없도록 강요한다. 자신의 가족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한 이들에게 남는 방법은 철저히 감추거나 같은 처지의 인물에 기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본즈 앤 올>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본즈 앤 올>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그런 점에서 마렌이 리를 아직 만나기 전에 등장하는 설리(마크 라일런스 분)라는 인물은 그녀가 자신이 품고 있는 비밀과 리가 안고 있는 배경을 이해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위해 초석을 놓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닫는 역할을 하는 것도 그다.) '이터'들이 냄새를 맡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몇 가지 생존 양식을 알려주는 그로 인해 마렌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설리가 마렌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단지 자신의 목적에 의해 마렌을 도울 뿐이고, 이는 나중에 비틀린 욕망으로 다시 분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렌이 설리를 만나는 장면은 인물 개인에게도, 또 영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연출가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렌과 리라는 인물이 안고 있는 숨겨진 배경으로 인해 두 사람의 여정은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설리를 통해 그 존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이후에는 상황에 대한 가치 판단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렌이 리를 향해 이렇게 60~70년을 더 살 수는 없다며, 지금처럼 물건을 훔치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며 미래도 없이 살 수는 없다고 울부짖는 것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엄마와의 면회가 끝나고 나와서 자신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04.
굳이 분류를 하자면 마렌의 엄마와 리는 존재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그 삶에 종속되어 살아가려는 인물들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대개의 '이터'들이 이 쪽에 속한다. 반대로 마렌의 아빠와 할머니는 그들이 가족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먹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자식이 처음 그 행위를 발현시켰을 때 지켜주고자 노력했다.)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마렌은 어느 쪽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하고 그 경계에 서 있다. 오랫동안 식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어할 수 있다고 믿고 일반적인 삶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다시 발현되며 내부에 강하게 자리 잡은 식인에 대한 숨겨진 욕망도 느끼기에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며 갈등한다.

그렇기 때문에 리의 동생으로부터 그가 안고 있는 배경을 듣기 직전의 장면에서 리와 엄마의 곁에서 떠나는 것에는 '이터'의 삶을 받아들이고 완전한 그들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리가 잠을 자는 사이 두 사람의 벤을 떠나고, 엄마의 사진을 길 위에 버린다.) 먹거나, 갇히거나, 스스로를 해치는 방법 이외에도 자신이 살아갈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일반적인 성장 영화의 틀에서 조금 비틀어진 방식으로 인물이 성장하는 방식을 비춰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터'라는 존재 안에서의 성장이 아니라, '이터'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치는 몸부림 그 자체가 성장이 되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본즈 앤 올> 스틸컷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본즈 앤 올>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한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자신의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방식을 탈피하기 위하여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다소 과격한 코드까지 이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지만, 그 설정이 작품 전체를 삼키지는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두 인물이 미 중북부를 여행하는 동안에 펼쳐지는 시골 마을들의 풍경을 목가적으로 담아내는 일이다. 이 느긋하고 고요한 장면으로 피가 낭자한 장면의 충격을 상쇄하기 위하여 카메라는 전후로 과격하게 움직이는 줌이나 상하로 흔들리는 틸팅 앵글의 화면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간혹 고정된 상태로 좌우로 이동하는 패닝 앵글만이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어떤 의미를 담기보다는 조금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사랑이 표현되는 장면 역시 최대한으로 절제되어 연출된다. 식인이 이루어지는 과격한 지점과 대비라도 이루어지듯이 두 사람의 사랑은 그 흔한 베드신 하나 없이 가벼운 스킨십 정도로 표현되고 있으며, 놀이동산 신이나 영화의 마지막에 배치되는 두 배우의 아련한 순간까지도 영화는 최대한의 순수성을 놓치지 않고자 한다. 이는 두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특유의 코드, 스스로 환영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입지를 찾고자 노력하는 인물의 주제 의식이 이번 작품에도 녹아 있다면, 이들의 식인 행위야말로 그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법일 뿐이며 두 사람 모두 이로부터 벗어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06.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은 정말로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 위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더 이상 위태롭지 않고, 과거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창에서 피어난 사랑이 하나의 온전한 모양으로 꽃을 피운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에 그려지는 잠깐 동안의 모습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마렌과 리의 사랑이 일반적인 모습으로 완성되는 것이 영화 속 다른 '이터'들과의 형평성에서 너무 크게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역량으로 두 사람을 잠깐 사이에, 영화에서 가장 슬프고도 역겹고, 비참한 상태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 그들의 숨겨져 있던 욕망이 처음 발현하던 시점에 정당하다고 말하던 배경이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일갈하며 원죄에 대한 벌을 내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2019년 10월, 코로나 시대가 열리기 직전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티모시 샬라메가 방문했던 때를 기억한다. 넷플릭스 영화 <더 킹 : 헨리 5세>의 프로모션으로 초청된 그는 영화제 초반의 가장 큰 이슈였다. 당시에 이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뷰티풀 보이>(2019) 등의 작품으로 유명했던 그는 좌중을 압도하는 소년미와 장난스러움으로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어쩌면 이 영화 <본즈 앤 올>은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뇌쇄적인 눈빛을 하고 입가에 선홍색 핏물을 떨어뜨리는 티모시 샬라메의 이미지는 조금 잔혹해 보일지언정 눈을 뗄 수는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곁에서 끝까지 에너지를 잃지 않고 극을 이끌어 나가는 테일러 러셀의 연기에도 반하게 될 것이다. 티모시의 사랑을 받는 그녀에 대한 약간의 질투심만 이겨낼 수 있다면 말이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본즈앤올 루카구아다니노 티모시샬라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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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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