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윤수일 밴드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으쌰라으쌰)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으쌰라으쌰!)"
토요일 밤의 영웅은 윤수일 밴드였다.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한 명곡 '아파트'가 연주될 때는 모두가 짜기라도 한 듯 '으쌰라으쌰'를 외쳤다. 윤수일 밴드가 존 레넌의 'Imagine', 원조 시티팝 '아름다워' 등을 연주하는 순간, 수많은 관객이 잔디밭 위에 드러누워 자유를 만끽했다. LA 출신의 록밴드 스타크롤러가 공연할 때는, 한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가 기타를 연주하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둘째 날에는 예상을 넘어서는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우비 차림의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을 형성하며 몸을 부딪히고, 두 팔을 벌린 채 한영애의 '조율'을 노래했다.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 '나락도 락이다', 등 개성 있는 문구가 적힌 깃발 부대는 여름 락 페스티벌 시즌에 이어 다시 집결했다. 자신의 공연을 마친 아티스트들 역시 자유롭게 음악과 먹거리를 즐겼다. 뮤직 페스티벌은 아티스트와 운영의 몫도 중요하지만, 잘 즐기는 관객이 있을 때라야 완성될 수 있다.
철원에 펼쳐진 '경계 없는 춤판'
▲2022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관객층을 만날 수 있었다.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도심의 대형 뮤직 페스티벌에서는 볼 수 없는 순간이 이어졌다. 스타크롤러가 펑크록의 전설 라몬스(Ramones)의 'Pet Sematary'를 연주할 때, 한 어린이는 '나락도 락이다'라고 적힌 깃발을 건네받아 흔들고, 춤을 췄다. (나는 어린이가 흔드는 깃발에 머리를 맞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디제이가 틀어주는 하우스 음악에 맞춰 춤판을 벌이는 노인들의 모습도 이 곳만의 것이었다. 음악과 춤이라는 공통 분모 속에는 위계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 페스티벌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라는 DMZ 피스트레인의 구호는 현실로 구현되었다.
'지역성'의 가치를 살린 것 역시 주목할 만 하다. 1회 때 도입된 철원 군민과 철원 소재 군인의 무료 입장 정책은 올해에도 유지되었다. 다른 페스티벌에 비해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이 보였던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티켓을 구매하지 않은 사람도 분수대 앞에 설치된 SCR 스테이지는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었다. 페스티벌을 위해 낯선 고장을 찾은 사람들은 공연장 근처에 펼쳐진 한탄강, 소이산의 자연 경관도 눈에 담아 갔다. 행사장 내의 푸드 존 뿐 아니라, 인근 식당에서 만두전골, 메밀전 같은 향토 음식들을 자유롭게 먹고, 막걸리를 즐기는 식도락 여행도 겸했다. 페스티벌의 정체성이 뮤지션의 위용 뿐 아니라 공간의 가치와도 직결된 것이다.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되어가는 시대, 평등과 평화, 공존과 같은 단어는 좀처럼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페스티벌에서는 이 단어들이 충분히 빛을 발했다. 마음껏 춤추며 노래하고, 교류하며 맛난 것을 먹었다. 지난한 코로나 시대를 지나 3년 만에 돌아온 평화 열차는 순항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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