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관객과 아티스트가 함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지난 10월 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관객과 아티스트가 함께 공연을 즐기고 있다. ⓒ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지난 1일, 강원도 철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꽤 가벼웠다. 철원 고석정(孤石亭) 잔디 광장에서 개최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2018년에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작지만 가장 재미있는 페스티벌'로 정평이 나 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던 지역의 가치를 음악과 춤에 접목시켰다. 역사적인 록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원년 멤버 존 케일이 내한했던 것은 음악 마니아들 사이의 소소한 이슈였다.

2018년, 피스트레인은 "음악을 통해 정치, 경제, 이념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는 취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남북의 접경 지역인 철원에서 페스티벌을 연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 등 몇 차례의 훈풍이 한반도에 불던 참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다'라는 낙관도 잠시, 한반도의 기류는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페스티벌을 둘러싼 상황도 그랬다. 팬데믹 이후 이어진 두 차례의 취소, 그리고 예년 대비 3분의 1 정도로 삭감된 예산 등 여러 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피스트레인이 돌아왔다. '우리의 평화는 음악'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잔디밭 위에 누워 부른 'Imagine' 
 
 지난 10월 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미국 록밴드 스타크롤러(Starcrawler)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월 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미국 록밴드 스타크롤러(Starcrawler)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3년 만의 오프라인 개최에 앞서, 주최 측은 바뀐 상황에 관하여 설명했다. 해외 아티스트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행사장의 규모 역시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점 역시 라인업이었다. 예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의 정성스러운 큐레이션이 돋보였다. 2019년에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있었다면 올해에는 한영애와 윤수일 밴드가 있었다. 우리 대중음악의 두 전설은 숱한 명곡을 노래하며 추억을 자극하는 한편,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 존재임을 증명했다. 2030 관객은 물론, 뮤직 페스티벌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의 화합이 벌어졌다.

해변의 낭만을 연주하는 밴드 CHS,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 &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얼터너티브 힙합 크루인 바밍 타이거,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 일렉트로니카를 결합한 여성 듀오 해파리 등 오늘날의 젊은 뮤지션들 역시 관객을 춤추게 했다. 해외 라인업이 축소된 상황이었지만 다양한 음악 신을 소개하는 역할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의 여성 디제이 마키마쿡(Makimakkuk)의 미니멀한 비트, 태국의 인디팝 듀오인 하입스(HYBS)의 세련된 팝송, 헝가리의 집시 포크 밴드인 보헤미안 바티야스(Bohemian Betyars)의 광란도 즐거웠다.
 
 지난 10월 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윤수일 밴드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월 1일,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윤수일 밴드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으쌰라으쌰)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으쌰라으쌰!)"


토요일 밤의 영웅은 윤수일 밴드였다.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한 명곡 '아파트'가 연주될 때는 모두가 짜기라도 한 듯 '으쌰라으쌰'를 외쳤다. 윤수일 밴드가 존 레넌의 'Imagine', 원조 시티팝 '아름다워' 등을 연주하는 순간, 수많은 관객이 잔디밭 위에 드러누워 자유를 만끽했다. LA 출신의 록밴드 스타크롤러가 공연할 때는, 한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가 기타를 연주하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둘째 날에는 예상을 넘어서는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우비 차림의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을 형성하며 몸을 부딪히고, 두 팔을 벌린 채 한영애의 '조율'을 노래했다.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 '나락도 락이다', 등 개성 있는 문구가 적힌 깃발 부대는 여름 락 페스티벌 시즌에 이어 다시 집결했다. 자신의 공연을 마친 아티스트들 역시 자유롭게 음악과 먹거리를 즐겼다. 뮤직 페스티벌은 아티스트와 운영의 몫도 중요하지만, 잘 즐기는 관객이 있을 때라야 완성될 수 있다.

철원에 펼쳐진 '경계 없는 춤판'
 
 2022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관객층을 만날 수 있었다.

2022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관객층을 만날 수 있었다. ⓒ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도심의 대형 뮤직 페스티벌에서는 볼 수 없는 순간이 이어졌다. 스타크롤러가 펑크록의 전설 라몬스(Ramones)의 'Pet Sematary'를 연주할 때, 한 어린이는 '나락도 락이다'라고 적힌 깃발을 건네받아 흔들고, 춤을 췄다. (나는 어린이가 흔드는 깃발에 머리를 맞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디제이가 틀어주는 하우스 음악에 맞춰 춤판을 벌이는 노인들의 모습도 이 곳만의 것이었다. 음악과 춤이라는 공통 분모 속에는 위계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 페스티벌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라는 DMZ 피스트레인의 구호는 현실로 구현되었다.

'지역성'의 가치를 살린 것 역시 주목할 만 하다. 1회 때 도입된 철원 군민과 철원 소재 군인의 무료 입장 정책은 올해에도 유지되었다. 다른 페스티벌에 비해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이 보였던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티켓을 구매하지 않은 사람도 분수대 앞에 설치된 SCR 스테이지는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었다. 페스티벌을 위해 낯선 고장을 찾은 사람들은 공연장 근처에 펼쳐진 한탄강, 소이산의 자연 경관도 눈에 담아 갔다. 행사장 내의 푸드 존 뿐 아니라, 인근 식당에서 만두전골, 메밀전 같은 향토 음식들을 자유롭게 먹고, 막걸리를 즐기는 식도락 여행도 겸했다. 페스티벌의 정체성이 뮤지션의 위용 뿐 아니라 공간의 가치와도 직결된 것이다.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되어가는 시대, 평등과 평화, 공존과 같은 단어는 좀처럼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페스티벌에서는 이 단어들이 충분히 빛을 발했다. 마음껏 춤추며 노래하고, 교류하며 맛난 것을 먹었다. 지난한 코로나 시대를 지나 3년 만에 돌아온 평화 열차는 순항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DMZ 피스트레인 피스트레인 윤수일 한영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