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비극을 다시 겪어내더라도 살아가고 싶은 생은 어떤 것일까. 그 삶이 보통의 인간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쯤은 더 고될지라도 기꺼이 살아내겠다고 외치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마음인 것일까.

'죽고 싶다'고, '버거운 생을 던져버리고 어딘가로 숨고 싶다'고, 너무나 쉽게 투덜대는 이들 사이에서, 제 생을 긍정해내는 인간을 아주 가끔은 본다. 그런 이들과 마주하여 어떤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생을 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언제나 물어보고 싶었다.

여기 한 편의 연극이 있다. 몹시도 괴로운 삶을 산 형제의 이야기다. < 필로우맨, The Pillowman >이란 제목답게 극엔 베게인간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온 몸이 베게로 된 푹신푹신한 인간이 아무렇지 않게 끔찍한 일들을 수행한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찾아가서는 아무렇지 않게 죽여 버린다. 살얼음 위를 걷게 해서, 자동차에 치이게 해서,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서, 그야말로 온갖 방법으로 아이들을 살해한다. 그러나 필로우맨은 시시한 악당이 아니다.
 
필로우맨 포스터

▲ 필로우맨 포스터 ⓒ 창작집단 현인

 
예고된 불행, 당신의 선택은

세상엔 불행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전쟁과 인종말살, 살인, 강도, 강간, 폭행 등의 범죄가 하루에도 수없이 벌어지는 게 인간들의 삶이다. 그 가운데서 인간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통 받기 일쑤다. 그 불행한 삶을 구제하는 게 필로우맨의 일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필로우맨은 시간을 넘어 고통 받는 자의 어린 시절로 향한다. 아이에게 그가 겪을 모든 고통을 알려준 뒤 죽겠느냐 묻는다. 죽기를 선택하면 이후의 고통은 단박에 사라진다. 그러나 살기를 택하면, 예고된 불행이 약속된 시간에 닥쳐온다. 그러니 필로우맨은 사람을 죽임으로써 그를 구하는 것이다. 살인자이며 구원자인 필로우맨, 그가 연극 속에서 한 인간과 대면한다.

극은 현재와 과거, 현실과 이야기를 넘나든다. 시작은 경찰서 취조실이다. 두 형사가 한 남자를 거칠게 다룬다. 사내의 이름은 카투리안, 보다 정확히는 카투리안 카투리안 카투리안이다. 형사들은 그가 근래 발생한 아이들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이라 의심한다. 일련의 잔혹한 살인이 카투리안의 소설과 닮아 있단 게 이유다. 옆방엔 카투리안의 형이 잡혀 있다. 그 얘기를 들은 카투리안은 정신이 나가버릴 지경이다.

카투리안에겐 지적 장애로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진 형이 있다. 카투리안은 형을 위하여, 때로는 글 자체를 위해서 잔혹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나 둘씩 만들어간다. 이야기 가운데는 끔직한 것이 적지 않다. 아이들은 학대받고 고문당하다 마침내는 죽는다. 그 이야기들 가운데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이 있었던 걸까? 형은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몹시 좋아한다.
 
필로우맨 배우소개

▲ 필로우맨 배우소개 ⓒ 창작집단 현인

 
세상 가장 불행한 이가 필로우맨 앞에 선다면

삶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들은, 심지어는 가장 사랑하는 인간조차 내 마음처럼은 움직여주지 않는다. 불행은 시시때때로 닥쳐오고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일조차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고야 만다.

비극은 인간이 쉽게 도망치도록 놓아줄 만큼 무르지 않다. 운명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게 고통 받는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심지어 공평하지조차 않다. 누군가는 희망 없는 삶 가운데 절규하고, 다른 누군가는 제 일이 아니라며 웃고 떠든다. 곧 닥쳐올 또 다른 비극조차 알지 못한채로.

그러나 그 모든 비극에 앞서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모든 비극이 닥쳐오기 전에 자비로운 필로우맨을 만날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할까? 극중 한 인간이 저를 찾아온 필로우맨과 만난다. 필로우맨은 그가 겪을 재앙 같은 삶을 말하고 그에게 먼저 죽기를 원하느냐 묻는다. 그가 그대로 죽기를 선택한다 해도 극장 안 어느 누구도 잘못됐다 말할 수 없으리라.
 
필로우맨 배우소개

▲ 필로우맨 배우소개 ⓒ 창작집단 현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천재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그가 천재가 아니라 말할 수는 없을 맥도나가 바로 이 장면으로부터 이 한 편의 극을 썼다. 가장 비판적인 평론가의 입조차 다물게 한 걸출한 극작가인 맥도나는 셰익스피어 이후 제 작품 네 편을 동시에 런던 극장에 내건 거물이 됐고 미련 없이 대서양을 건너 훌훌 날아갔다. 그는 <쓰리 빌보드>로 왜 영국 연극인들이 그를 셰익스피어에 빗대곤 했는지를 할리우드에 입증해냈다. 그해 할리우드는 맥도나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선사했다. 그는 오랫동안 동경해온 스콜세지, 타란티노와 어깨를 맞대고 걷고 있다.

<필로우맨>은 맥도나의 작품 가운데서도 대중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영국 초연 4년여 만인 2007년부터 극단을 바꿔가며 한국에서도 수차례 공연됐다. 작품의 명성이 워낙 대단해서, 초연 당시 최민식이 출연을 확정했을 정도였다. 이 연극이 이번 주말에 다시 선보인다. 이달 9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젊고 열정 가득한 배우들을 입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때로 아주 귀한 것은 큰 고통 속에서 빚어진다고 나는 믿어왔다. 카투리안과 그의 형과 맥도나에게 그러했듯이. 만일 이 연극에 훌륭한 점이 있다면 연출가와 배우들이 겪어낸 고통의 크기 만큼일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 역시 맥도나에게 동의할 밖에 없다. 절망을 견디게 하는 건 언제나 상응하는 용기다. 그 용기를 있게 하는 건 애정이다. 저를 찾아온 필로우맨 앞에서 맥도나의 모자라지만 충만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이보다 삶을 대하는 훌륭한 자세를 나는 들어본 일이 없다.
 
필로우맨 무대

▲ 필로우맨 무대 ⓒ 김성호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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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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