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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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의 정권교체로 CIA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정치개입과 비밀공작에 한층 자신감을 얻게 됐다. CIA의 다음 목표가 된 쿠바는 본래 친미국가였으나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베라가 1959년 쿠데타로 독재정부를 무너뜨리면서 반미국가로 돌아선다.
미국은 1961년 4월 덜레스 CIA 국장의 주도하에 반카스트로파로 구성된 쿠바 망명인 세력을 모아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자파타 작전(쿠바 상륙작전)'을 실행했다. 그러나 이를 사전에 눈치챈 카스트로의 반격으로 쿠데타는 처참하게 실패했고, 오히려 쿠바가 소련과의 동맹까지 맺게 되면서 당시 존F 케네디 대통령은 덜레스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CIA의 라틴아메리카 비밀공작의 역사는 계속됐다. 브라질, 영국령 가이아나 등 여러 나라들이 CIA의 공작으로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정권이 교체됐다. 그 후유증으로 다당제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잡은 미국과 북미 지역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는 공산주의 국가는 없었지만 대신 친미 독재국가들이 대거 들어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1960년대는 CIA 공작의 전성기로 꼽힌다.
1970년대에는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이끄는 칠레가 CIA의 새로운 타깃으로 떠올랐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린 아옌데는, 경제적 착취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강조하며 칠레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은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리처드 헬름스 CIA 국장의 주도로 CIA가 '퓨벨트' 프로젝트를 통하여 칠레의 경제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를 꾸민다. 1973년 CIA의 후원을 받은 당시 참모총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결국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켰다.
아옌데는 도주하거나 망명하는 대신 대통령궁에서 마지막 국영 라디오 방송 연설을 통하여 "저들은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지만 어떤 범죄행위와 무력으로도 사회의 진보를 막을 수 없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그 역사는 국민들이 만들어간다. 칠레여 영원하라. 국민들이여 영원하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 연설은 아옌데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고 그는 얼마 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다. 이로서 칠레의 사회주의 정부는 3년 만에 막을 내렸다.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피노체트는 이후 17년간 칠레를 철권통치하며 잔혹한 독재자로 등극했다. 피노체트 집권기간 살해 당한 칠레 국민의 숫자만 3200여 명, 고문당한 이들은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훗날 공개된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통화 내용에는 칠레의 쿠데타 성공을 자축하며 아옌데 정권을 공산주의자로 폄하하고 조롱하는 표현들을 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자신들의 초래한 타국의 비극에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합리화하는 두 사람의 소름끼치는 모습은 마치 할리우드 범죄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간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닉슨은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몰락하는데, 당시 불법도청에 동원된 것이 FBI나 CIA 출신 요원들, 그리고 자파타 작전의 가담자였다는 것이 알려졌다. 1974년 닉슨은 결국 불명예스럽게 사임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CIA의 활동도 한동안 크게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왜곡된 권력의 사유화와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마약과 테러 조직 후원한 미국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tvN
1980년대 레이건 정권의 출범과 함께 CIA는 다시 부활한다. 레이건은 강한 미국을 표방하며 막강한 정보력과 비밀공작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갖춘 CIA에 다시 힘을 실어줬다. 니카라과의 1979년 쿠데타로 사회주의를 표방한 산디니스타 정권이 들어서면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12월, CIA 주도로 니카라과에 대한 비밀공작을 추진하는 기밀문서를 승인한다.
CIA는 반군단체 콘트라를 후원하여 산디니스타 정부에 맞섰다. 콘트라는 친정부 세력으로 의심되는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대량학살하는가 하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마약사업에까지 진출하는 등 여러 가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미국 정부는 이를 알고도 콘트라를 사실상 묵인했다.
심지어 콘트라는 라틴아메리카에 마약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미국에 코카인을 밀반입하여 유행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레이건이 공공연하게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뒤에서는 마약과 테러 조직을 후원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다.
보수주의자에 반공주의자였던 레이건의 본심은, 마약보다 공산주의를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미 의회는 레이건의 콘트라 후원 정책에 제동을 걸려고 했지만, 레이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레이건은 방송출연과 캠페인을 통하여 콘트라를 "자유의 투사",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같은 존재"라고 미화하며 후원을 독려했다. 1986년에는 결국 레이건의 의지 대로 콘트라에 대한 지원금을 제공하는 법이 미 의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같은해 11월, 레바논의 한 신문사인 <아쉬 시라>의 보도를 통하여 "미국이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판 돈으로 콘트라를 후원한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 정부는 30여 명의 민간인이 헤즈볼라군에 생포된 사건을 계기로, 인질석방을 위하여 헤즈볼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란에게 접근한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었던 이란은 미국에 무기판매를 조건으로 제시했고 레이건은 이를 수락했다.
이는 레이건이 "테러국가와 협상은 없다"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고 이란에 무기를 지원했으며, 여기서 얻은 자금이 다시 콘트라 반군에게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란-콘트라 게이트다.
레이건은 이 사건으로 한때 탄핵위기까지 몰렸으나 "자신은 모르게 수행한 활동"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고, 결정적 증거가 밝혀지지 않아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정직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잃고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레이건은 그럼에도 여전히 니카라과에 대한 공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산디니스타 정권을 반대하는 정당 및 시민단체들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원조기금이라는 명목하에 450만 달러를 지원했다.
1990년 산디니스타 정권의 정적인 비올레타 차모로가 니카라과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비로소 레이건 정권과 CIA의 집요한 비밀공작은 막을 내렸다. 또한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반공을 명분으로 했던 CIA의 비밀공작 규모도 크게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니카라과를 비롯하여 CIA가 개입했던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후로도 정치적 혼란속에서 사회 성장이 늦어지면서 많은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CIA의 공작은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체제로부터 민주주의 질서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실체는 오로지 미국의 국익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정치공작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발전에 큰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핵물리학자 조지프 로트블렛은 "냉전은 끝났지만 냉전적 사고는 살아남는다"는 어록을 남겼다. 21세기 현대사회가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은 미국의 역할과 지나간 역사가 주는 교훈은 지금 우리에게 생각해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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