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공포의 강남 침수 사태, 과연 막을 수 없었나.
 
지난 8월 서울에 내린 기록적인 집중호우는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도시 한복판이 거대한 물바다로 변했고 도로엔 맨홀에서 역류한 흙탕물이 가득 찼으며 침수된 수만은 차량들이 오도가도 못한 채 물위를 떠다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거나 건물까지 물에 잠겨 인명피해가 속출하기도 했다.
 
21세기의 도시 서울의 한복판에서 수재민이나 물난리같은 이야기를 다시 듣게된 사람들은, 우리가 믿었던 시스템이나 문명이 여전히 자연의 기습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절감했다. 과연 이번 사태는 인간이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이었을까.
 
9월 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죽음의 구멍 - 도시는 왜 흉기가 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발생한 서울 대폭우와 강남 침수사태에 대하여 조명했다.
 
강남은 대한민국의 경제-교육의 중심지이자,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지역으로 '부자동네'의 대명사로 통했다. 이처럼 그동안 주로 도심의 화려한 수식어로만 기억되던 강남은 지난 8월 8일, 뜻밖의 자연재난으로 세계적인 화제의 중심이 됐다.
 
강남침수 사태 당시 피해자였던 서미진씨(가명)는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었다. 한동안 무서워서 잠을 못잤다"라며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서씨는 차를 몰고 남편을 데리러 가기위해 두 아이를 데리고 길을 나섰으나, 진흥아파트 사거리 구간에서 폭우로 인하여 고립됐고 차량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남편과 통화로 상황을 알린 서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차에서 대피했고, 서씨 가족이 떠난지 불과 10여분만에 차는 완전히 물속에 잠겼다.
 
당시 같은 도로 위에 있었던 버스에 탑승중이었던 박지훈씨는 당시 침수된 도로의 심각했던 상황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앞서 물에 잠근 승용차들은 이미 운전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미리 대피한 상태였다. 박씨를 비롯한 버스 탑승객들은 협력하여 서로를 뒤에서 밀어주고 받쳐주면서 간신히 하차하여 위험지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외신들도 강남 침수 사태에 주목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나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에 비유하며 강남 침수사태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외신들은 발달된 도시의 중심에서 자연재해에 이토록 취약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꼬집었다.
 
당시 수도권 곳곳에 내린 폭우중에서도 서울 지역에만 일 최대 382.5mm, 시간당 강우량 141.5mm를 기록하며 300년에 한번 내릴까말까한 비가 쏟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린 비보다도 사람들을 정말 두려움에 빠뜨린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도로 곳곳에서 위치한 맨홀 뚜껑이 열리면서 물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역류 현상이었다.
 
폭우가 쏟아진 8일, 서울 한복판에서 평범하게 길을 걷던 사람들이 맨홀에 빠져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하여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두 사람은 남매였다. 건강이 불편한 부친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매는 안타까운 변을 당했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맨홀 뚜껑이 열리며 역류 현상이 일어났던 구간에 주목했다.
 
제작진은 강남의 화려하기만 한 지상 풍경 이면에 숨겨진 땅 속의 상황을 분석했다. 강남역은 빗물을 처리하기 위하여 지역을 나누어 관리하고 있으며, 사고가 발생한 맨홀이 위치한 강남역 사거리 일대의 빗물은 하수관을 통하여 반포천을 따라 한강으로 흘러가게 되어있다. 사고맨홀이 있던 지점으로 반포천으로 이어지는 하수관에는 총 16개의 맨홀이 있었다. 맨홀에 빠진 희생자 남매의 시신은 이 하수관에서 4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발견됐다.
 
두껍고 무거운 맨홀이 그렇게 쉽게 열릴수 있었을까. 서초구청은 <그알> 제작진의 질문에 대하여 강남역 일대가 지형이 낮고 순간적 폭우로 많은 빗물이 유입되어 우수박스내 엄청난 수압이 발생하여 맨홀이 버티지 못하고 비산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초구청은 맨홀이 열린 정확한 시간을 확인해줄 수 없으며 CCTV 공개열람도 거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제작진은 기상과 도심 상하수도 정보 등을 통하여 침수 여부를 확인하는 SWMM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하여 전문가들과 함께 강남의 배수 시스템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당시 진흥사거리에서 침수된 서미진씨의 차량에 남은 블랙박스 영상에 남은 기록과 SWMM 시뮬레이션이 분석한 침수 내용과 시간은 거의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뮬레이션 결과 물이 역류한 맨홀들이 발생한 지역은, 강남 침수 상태 당시 맨홀돌이 실종된 지역과 어느 정도 일치했다.

하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맨홀지점은 강수량과 하수도 데이터를 시뮬레이션 결과 서초구청의 주장과 달리 맨홀이 열리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창삼 인덕대 스마트건설방재학과 교수는 "이 구간에서 맨홀이 열리고 침수가 일어났다는 건 여기에서부터 하수관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뭔가 공식적인 하수관망 시스템에 포착되지 않은 문제가 생겨서 사고지점 맨홀에 추가적인 수압을 발생시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침수피해를 당했던 인근 주민들도 지하의 배수 시스템에 대한 걱정과 의구심을 제기했다. 강남 진흥아파트 사거리 일대는 2011년 여름에도 비슷한 침수 사태와 발생한 일이 있었다. 주민들은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종종 맨홀이 역류하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근본적으로 강남의 잦은 침수에는 고절적인 지형 문제도 있다. 강남역 사거리 일대는 지형적으로 양옆에 위치한 서초와 역삼보다 지대가 낮아 침수에 취약한 구조다. 원래는 논과 밭이 대부분이었고 그리 좋은 땅으로 평가받지 못했던 강남은 1970년대 이후 서울 강북에 집중된 인구과밀화와 안보문제 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겉모습은 최첨단으로 발전했던 강남이지만, 정작 지하의 배수시스템은 비를 감당하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고태규 전 서울시 하천관리 과장은 침수사태가 빈번한 원인으로 "고지대인 역삼과 서초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져서 물싸움이 일어나는 형태의 압력수로가 되는 것"이라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과거에는 서울시의 수방대책과 하수체계가 전부 엉망이었고, 강남이 발전하면서 매년 다양한 치수대책을 시도했지만, 땅속에 만들어진 많은 지장물 때문에 압력문제를 근본적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서울시에는 빗물과 치수관리를 위하여 반포천 유역분리 터널이  존재하고, 이 터널은 이번 폭우에 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역류 현상과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 그렇다면 반포천 유역분리 터널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작진은 일본의 사례를 분석했다. 도쿄에서는 약 1조 4천억을 들여 도심 지하에 초대형 규모의 대심도 터널을 만든 이후 홍수를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비가 오면 도쿄 하천의 물을 저류지로 끌어와 담고 있다가 48시간이내에 방류하여 하천의 범람을 막고 도심이 침수되지 않도록 한 것.
 
한국 양천구에 위치한 신월 대심도 빗물터널로 일본의 모델을 본따 만들어졌다. 실제로 2010년 신월동-화곡동 침수 사태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것과 달리, 2022년 강남 침수 사태 때에는 대심도 빗물터널 덕분에 대량의 빗물이 안전하게 안양천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강서구와 양천구는 다른 지역에 비하여 훨씬 피해규모가 적었다.
 
서울시는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직후 상습침수구역 7곳을 지정하며 대심도 배수터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완공된 것은 양천구 신월동밖에 없었다. 당시에 비용 낭비와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시는 최근 다시 배수터널 계획과 설치를 검토중이지만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시설 건립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요구되는데다, 또다른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정치적 공약사업들이 우선될 경우 언제든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 침수 사태의 근본적인 핵심은 예상할 수 없었던 기후만을 탓하기 이전에, 예상할수 있었던 대비를 왜 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시민들은 엄청난 침수피해를 당한 이후에도 정부나 지자체 관계자들이 그 관련 내용이나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록을 남기거나 후속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침수자료의 수집과 공개가 민감한 또다른 이유는, 바로 침수지역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해당 지역의 주민들의 재산상 피해와 반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 역시 집 주변이 침수지대로 분류된 사실 때문에 민원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정보 취합과 가공도 문제지만, 자료를 만들고 공개하기 위해서는 피해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상습적인 침수 피해는 강남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다른 상습 침수구역으로 분류된 서울 신림동에서는 저소득 서민 계층의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신림동 침수 당시 반지하에 거주하던 일가족 세 명이 집안에서 갑작스럽게 차오른 물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모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다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치수대책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자연해재가 많은 일본은 대심도 터널만이 아니라 과거의 침수피해를 교훈삼아 피해지역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대책을 자료화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부동산에서도 활용되며 침수피해 사실을 반드시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일본의 국토교통성 홈페이지에는 재해예측지도를 검색하면 침수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의무화해 놓았다.
 
과거 일본에서도 지금의 한국처럼 재산권 피해를 이유로 재해지역 관련 정보 공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이나 토사 피해 등 대규모 자연재해를 연달아 겪으면서 일본 사회는 정보공개와 공유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면서 방재체계의 발전을 이뤄온 것이다. 현재 일본은 모든 침수 기록을 반드시 남겨놓아야 하며, 임대인은 방수대책을 제대로 만들어놓고 임차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2년의 집중호우는 비가 내릴 수 있는 한계가 그동안 우리가 생각했던 수치보다 훨씬 큰 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 현재보다 30-40% 이상 더 많은 비가 올수 있다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서울시는 앞으로 맨홀에 다양한 추락방지시설 도입을 비롯하여, 그리고 저지대와 침수취약구역, 하수도 역류가 예상되는 구역을 중심으로 맨홀설치 대상 지점을 우선적으로 설치하겠다는 대책을 밝혔다.
 
유난히도 길었던 올해여름, 비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강남의 한 빌딩은 1994년 건물준공때부터 설치한 수문 덕분에 올해 포함 한번도 수해를 입지 않았다. 강남 지역이 지형적으로 수해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대비한 건축주의 선견지명에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다.
 
현대는 각자도생의 시대이고, 나 말고는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만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폭우사태 당시 반지하 저택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일가, 부모님 병문안을 하고 돌아오다가 맨홀에 빠져 세상을 떠난 남매 등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자도생할 수 없었다. 슬프지만 이번 사태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발생할수 있는 사건이다. 지금 또다시 폭우가 내리고 이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했을 때 과연 나만큼은 각자도생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키게 된 배경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겪게되는 물난리를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다. 또한 농사나 치수는 결코 혼자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여러 사람들의 협동이 필요했고, 지혜를 모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게된 것이다. 2022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강남 침수사태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진정한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뼈있는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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