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아>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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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를 만든 곽민승 감독은 본 작품이 첫 장편 개봉이다. 그런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건 2013년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단편 <밝은 미래>다. 영화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젊은 음악도가 자기 목숨과도 같이 아끼던 악기 오보에를 생계문제로 팔기 위해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이야기다. 당시에도 이미 한국독립영화에서 청년세대가 꿈을 잃어가면서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내용을 담은 비슷한 유형의 작품들은 양산되다시피 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소재만 놓고 보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법한 작업이지만 해당 영화는 특별히 그 잔향이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 익숙해진 내용인데도 유독 잊히지 않던 건 그런 주인공을 안쓰럽게 연민하는 듯 보이던 카메라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후 감독의 작업은 일정부분 방향을 선회한 듯 보인다. 2015년 선보인 단편 <럭키볼>과 2020년 웹 드라마를 연장한 장편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 등 후속작업들은 데뷔작과 다른 결의 세계를 선보이게 된다. 감독의 최근작들은 비록 세상의 시련은 강력한 실체로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 자그마한 피난처를 설정함과 함께 그 공간과 공간 속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기운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서로 위로받는 기능에 중점을 둔다. 그런 영화 속 체험을 통해 스크린 안과 밖의 사람들이 다시금 재기를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하는 데 주안점을 두려는 태도다.
일반 관객에겐 사실상 감독의 이름 세 글자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셈인 <말아> 역시 그런 흐름을 충실히 따른 결과물이다. 대 역병 가운데 바로 주변 지인들이 겪고 있을 시련과 고통은 물론 영화를 보는 본인 또한 처해 있을 여러 불안과 위기 가운데 극장에서 접하게 될 본 작품은 제법 충실한 동기화를 거쳐 영화의 홍보 카피처럼 '힐링 & 롤링'을 선사할 것이다. 비록 영화가 온전하게 주인공의 인생역전이라는 '판타지'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저 새 출발을 위한 응원의 기운만으로도 주인공 주리와 동병상련을 느끼며 영화를 보게 될 동 세대 관객에게는 충분히 공감을 획득할 만한 작업이다.
4_배우들의 '케미'로 완성되는 작은 피난처 같은 영화의 풍경
물론 이 영화가 지나치게 단순화한 사회적 배경은 한국독립영화가 감춰진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고 해부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온 역할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기능이 변형되면서 자극적인 표현에 의존하다 보니 어느새 '선정주의'로 흘러가지 않는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려나오던 걸 떠올린다면 정말 영화적 표현을 감당할 각오 없이 굳이 그런 도전에 나설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온전히 체득하지 못한 사회적 모순을 억지로 영화에 담으려 하다 보니 그저 뉴스 스크랩 수준의 '재연'으로 그치는 작업도 적지 않게 보아왔던 참이라 곽민승 감독의 영화 비전이 반드시 안일한 선택이라 폄하할 근거는 될 수 없다. 중요한 건 작가로서의 진정성이 담보되느냐, 영화 속에 주제의식이 녹아들어 있느냐의 문제다.
그럼에도 다소 낙관 일변도로 흐르는 세계관을 떠받치는 아틀라스 같은 존재는 당연 주인공 주리 역의 심달기 배우다. 이제는 상업영화나 안방극장에서도 약방 감초처럼 자주 등장하는 존재감을 가지게 되어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기억하는 이들이 제법 될 테다. <말아>의 영화 속 세계 중심 그 자체인 주리 역으로 심달기 배우의 캐릭터는 그저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배우가 펼쳐 보이는 영화 속 주인공 캐릭터는 그녀가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한 이후 주로 기용되어온 캐릭터들의 총집 편에 가깝다. 그늘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고 지켜주고 싶은 그런 이미지가 당당히 장편영화의 원탑으로서도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래도 가끔은 몇몇 독립영화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늘진 기운도 다시금 재회하고픈 심정은 어쩔 수 없다.
영화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어머니 영심 역할을 맡은 정은경 배우와 주인공이 구성하는 모녀 간의 빛나는 호흡이다. 오랜 연극무대 경험부터 점점 독립영화 쪽으로 보폭을 넓혀가는 정은경 배우의 능청스럽지만 사려 깊게 엇나가는 딸을 관찰하고 배려하는 <말아> 속 연기는 영화의 기조를 반영하듯 자연스러운 가운데 말 대신 태도로 청년세대가 기대하는 조언과 응원을 충족시킨다. 김밥을 통해 세상이 서로 연결된다는 단순하고 평범하지만 정합적인 세계가 조용히 화면 안에서 펼쳐진다. 그렇게 감독이 구축하고 배우들이 마무리해내는, 팬데믹 속 작은 안식처는 대 역병이 사라지고 나더라도 한동안은 그 역할을 잃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작품정보> |
말아 ROLLING
2021|한국|롤링&힐링 청춘 시네마
2022.08.25. 개봉|76분|12세 관람가
감독 곽민승
주연 심달기(주리 역), 정은경(영심 역), 우효원(이원 역)
출연 정의순(춘자 역), 손석배(산악회아저씨 역), 유연석(꼬마손님 역)
제작 왓에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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