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밴드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자동차 위에 앉아있는 남성이 윈 버틀러다.

록밴드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자동차 위에 앉아있는 남성이 윈 버틀러다. ⓒ Arcade Fire

 
캐나다 록밴드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는 2000년대 대중음악에서 손꼽히는 인디 록의 아이콘이다. 아케이드 파이어는 부부인 윈 버틀러, 아이티 출신의 레진 샤샤뉴를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다. 2004년 데뷔 앨범 < Funeral >을 발표한 이후, 이들은 곧바로 인디록의 구세주로 떠받들어졌다. 록와 바로크 팝의 문법을 가로지르며, 삶과 죽음을 논하는 이 앨범은 압도적인 성취였다. 생전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이 앨범을 수십장 씩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고, 아케이드 파이어와 함께 'Wake Up'을 불렀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명반 행진은 멈추지 않았고, 3집 < The Surbubs >는 2011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유랑 악단처럼 수많은 악기가 어우러지는 이들의 라이브는 보는 이의 마음을 격정적으로 움직여왔다. 글래스톤베리와 프리마베라, 후지록 등 전 세계 대형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모두 꿰차며, 인디 밴드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다.

나 역시 아케이드 파이어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처음 'Wake Up'을 듣고 '어떻게 이런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감탄했다. 라디오헤드와 더불어 아케이드 파이어의 공연에 가는 것이 일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고, 군대에 있을 때도 < Funeral > 앨범을 매일 밤 CD 플레이어로 열심히 듣곤 했다. 뮤직 펍에서는 언제나 아케이드 파이어의 'Rebellion(Lies)'를 신청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가혹한 사실이 한 가지 전해졌다. 밴드의 리더이자 핵심인 윈 버틀러가 세 명의 여성, 한 명의 젠더 플루이드(성별 정체성이 유동적인 젠더의 일종)로부터 성추행 고발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을 늘 높이 평가해 온 매체인 유명한 피치포크 매거진은 특집 기획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2015년부터 2020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고발인 중에는 음악 산업 종사자도 있고, 아케이드 파이어의 열성 팬도 있다. 윈 버틀러는 메시지를 통해 이들에게 성적인 사진을 전송하고, 성적인 행위와 사진 등을 유도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들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윈 버틀러는 네 명과의 혼외 성관계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는 피치포크에 보낸 공식 성명에서 "모든 성관계는 합의 하에 이뤄졌지만, 내 행동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매우 미안하다"고 말했다. "변명이 될 수는 없으나 정신 건강 문제와 아동 학대의 트라우마, 그리고 30대에 겪은 유산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첨언했다. 한편 윈 버틀러의 아내이자 밴드 동료인 레진 샤사뉴 역시 "그가 동의 없이 여성을 만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는 길을 잃었었지만 다시 길을 찾았다"라며 남편을 두둔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보만으로는 유무죄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몇 가지 있다. 부적절한 혼외 성관계가 존재했으며, 이 성관계에는 아티스트와 팬의 비대칭적인 관계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폭로자들이 흔한 '그루피(록스타를 쫓아 다니면서 성관계를 갖고자 하는 팬덤)'로 치부되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미투운동(#MeToo·나도 당했다)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던 2018년, 국내 인디 밴드 신에서도 뮤지션의 성폭력 혐의가 공론화되었다. 그중 일부는 밴드에서 탈퇴하거나 음악계를 떠났던 바 있다. ('인디 신 내 성폭력' 문제는 미투 운동에 앞서 2016년부터 트위터 등 SNS를 중심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음악에는 죄가 없다. 그 음악에 열광했던 팬들에게도 죄가 없다. 사랑했던 시간을 부끄럽게 만드는 아티스트, 팬의 순수한 마음을 통해 욕망을 채우는 이들에게 죄가 있다 할 것이다. 여전히 아케이드 파이어의 모든 대표곡을 따라부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듣는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이 예전만큼 영혼을 울리는 소리로 다가오기는 힘들 것이다. 나의 록스타들에게 고한다. 완성도가 낮은 앨범을 내도 좋으니, 사랑했던 시간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달라!
아케이드 파이어 윈 버틀러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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