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연기와 인생의 주연, 조연은 따로 없습니다. 액터 인사이드는 연기를 해오며 온갖 희로애락을 겪었을 배우들을 응원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털보 사장(임성재)은 분명 영우(박은빈)와 그라미(주현영)의 안식처와도 같았다. 밖에서 씩씩거리며 들어와도 늘 그랬듯 김초밥으로 영우에게 안정감을 줬고, 천방지축 현영에겐 꿀 같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해 온 털보 사장 민식, 알고 보면 연극 무대와 독립, 상업 영화에서 고루 활약한 배우 임성재의 평소 연기 철학이 반영된 캐릭터였다.
 
24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성재는 "배우들끼리 얼마나 친했고 진심이었는지가 그대로 담긴 작품"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기억하고 있었다. 손님이라고는 두 사람 뿐인 포차를 한결같이 지켜온 털보 사장을 두고 그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아저씨로 이해하고 있었다.
 
바다 같았던 털보 사장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보시고 다 알고 계셨다. 제 연기를 믿어주신 부분이 컸다. 개인적으론 민식은 영우와 그라미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라미를 되게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재 옆에 있어 주는 친구라고 여긴다. 현장에서 주현영씨가 잘 이끌어줘서 털보 사장 캐릭터도 살아난 것 같다.  
저도 그렇지만 현영씨가 준비성이 철저하다.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배울 게 많았다. 여러 버전의 연기를 준비해 오곤 했는데 서로 던지면 잘 받아주곤 했다. 대본 리딩 때 처음 만났는데 사전에 친해질 시간이 없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첫 촬영 때부터 너무 좋았다."

 
임성재가 개인적으로 꼽는 털보 사장의 명장면은 다름 아닌 최수연(하윤경)과의 소개팅 신이었다. 영우의 소개로 자리에 나간 민식은 '바나나 먹으면 내게 반하나?' 같은 말 그대로 철 지난 아재 개그를 선보이며 스스로 망치고 만다. 캐릭터 당사자에겐 안타깝겠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선 큰 재미를 준 장면이기도 하다.

"사실 가장 많이 준비했는데 촬영은 가장 빨리 끝났다. 엔지(NG) 없이 한 번에 찍었거든. 이유야 어쨌든 항마력(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버티는 힘을 뜻하는 은어)이 필요한 장면이라 털보 입장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할지, 민망함을 알면서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후자를 택했다. 나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데 손님이 워낙 없으니 사회생활이 늘지 않은 거지(웃음). 드라마에서 티는 잘 안 나지만 메뉴판을 침 발라 넘기는 모습은 민식의 아재스러움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나름 준비한 것이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일부 시청자들은 털보 사장 민식에 대한 여러 가설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임성재는 "그 나이 되도록 결혼 안 한 이유를 두고 사실 털보는 건물주다, 부자 아들이란 반응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론 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그라미와 영우가 있으니 그 자리에 있는 게 좋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라고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감사하게도 몇몇 분들은 털보 사장 세계관이라며 올려주신 게 있다. 영화 <비상선언>에서 이병헌 옆에 앉아 목베개 한 사람, <헌트>에서 날렵하게 총 쏘던 사람 등등 아주 잠깐 나오지만 제 출연작에서 절 찾아주신다. 곧 개봉할 <공조2: 인터내셔날>에도 출연했는데 털보 사장처럼 귀여운 구석이 있는 캐릭터니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웃음)."
 
포기하지 않는 뚝심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비롯해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배우 임성재.

" 드라마에서 티는 잘 안 나지만 메뉴판을 침 발라 넘기는 모습은 민식의 아재스러움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나름 준비한 것이다." ⓒ 샘컴퍼니

 
그 자리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걸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털보 사장과 임성재가 맞닿은 지점이 있다. 2017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사실 고교생 때부터 친구들과 영화를 찍으러 다니고, 나아가 대학을 중퇴하고 광주 지역 극단에 들어갈 정도로 연기에 진심이었다.
 
지난해엔 배우 손석구의 감독 데뷔작인 단편 <재방송>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변산> 출연도 전작 <순정> 때 잠깐 등장한 모습을 주연 캐릭터였던 박정민이 기억하고 있다가, 오디션을 제안한 경우였다. 이처럼 그의 진가를 알아본 동료 배우들이 손을 내밀 정도로 내공을 품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석구 형은 그냥 제 연기를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단 한 신 나왔거든. 그걸로 저의 모든 걸 판단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사적으로 혹은 공적으로 제게 질문을 많이 하셨다. 탐구를 해주신 거지. 그리고나서 본인이 쓰고 있는 작품에 출연해달라고 제안하셨다. 당연히 좋았지. 연출가로서도 재능이 뛰어난 배우기에 전 배우로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괴롭힐 생각으로 출연했다. 호기심이 왕성할 때잖나(웃음). 아마 절 상대하시는 감독님들이 피곤하실 거다. 근데 궁금한 건 참을 수 없다."
 
물론 좌절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극단 시절 자신의 연기에 자괴감을 느낀 때가 있었고, 생활고를 느꼈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본 배우 손현주의 연기에 반한 이후 그의 마음에 크게 자리 잡은 연기를 두고 임성재는 "정해진 수순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상가 건물에 방을 얻어 살았다. 공용화장실을 썼어야 했는데 거기서 괜히 (손현주 선배) 대사를 따라하고 연기 연습이란 걸 하곤 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오면 아닌 척하고. 좋아하는 건 해야 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단편을 찍었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연기를 한 게 아닐지. 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일하기도 했고, 돌잔치 사회도 보고, 뮤지컬 웨딩 이벤트도 했다.
 
작심하고 연기를 하겠다 결심한 순간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대학을 그만두고 연기한 게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같다. 그때 극단 오디션을 위해 극장 지하로 내려가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영원히 이 지하에서 나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서울로 갈 생각은 안 했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무슨 큰 공연을 하거나 엄청 유명해지고 싶은 꿈은 없었거든. 사실 광주도 작지만 되게 바쁜 도시다! (웃음)"

 
마치 사춘기처럼 스물여섯 무렵에 왔던 슬럼프를 그는 무대를 통해 극복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여러 동료, 선생님, 환경적 영향도 있었겠지만 결국 무대에서 좌절했기에 무대에서 다시 일어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소위 주인공 욕심은 없는 것 같다. 좋아하는 작품 찾아보고 연출가 분들 만나며 이야길 많이 하면서 소소하게 글 쓰는 버릇도 생겼다. 그렇다고 어떤 작품을 연출할 정도는 아니다. 제게 주어지는 역할을 잘 해내는 게 최선이다. 제가 욕심이 많다. 일단 사랑을 많이 받고 싶다. 예쁜 짓 많이 할 준비가 돼 있으니 오래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역할이 크든 작든 확실하게 작품에 도움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임성재 우영우 주현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액터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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