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미 프로농구) 최다우승 기록에 빛나는 레전드 빌 러셀이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됐다. 8월 1일(한국시간) 러셀의 유족들은 그의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셀이 세상을 떠났음을 전했다. 유족들은 "러셀이 평화롭게 아내 곁에서 생을 마감했다. 빌의 아내와 가족들은 여러분의 애도에 감사를 보낸다"고 전했다. 본명은 윌리엄 펠턴 러셀(William Felton Russell)이었고, 1934년생으로 향년 88세였다.
 
러셀은 단지 한 명의 운동선수를 넘어 NBA와 현대스포츠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러셀은 1955~1956시즌 모교인 샌프란시스코 대학을 NCAA(미국대학스포츠연맹) 농구 55연승과 토너먼트 2연패로 이끌었고, 같은 해 열린 멜버른 올림픽에서는 미국농구대표팀의 일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러셀은 1956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 지명된 후 바로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되며 프로에 진출하여 입단 첫해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NCAA에서 우승하고 바로 이듬해 NBA 우승 타이틀까지 거머쥔 선수는 러셀을 포함하여 단 4명 뿐이다. 이후 러셀은 1969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프로선수 생활 13시즌간을 오로지 셀틱스에서만 '원클럽맨'으로 활약했고, 무려 11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반지의 제왕'에 등극했다..
 
셀틱스는 통산 17회 우승으로 라이벌 LA 레이커스와 함께 NBA 최다우승팀이다. 1957년 창단 첫 우승을 시작으로 역대 우승의 2/3 정도를 바로 '러셀 시대'에 이뤄냈으며 특히 1959년부터 1966년까지는 미국 프로스포츠사에 전무후무한 8연패의 대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심지어 말년에 2번의 우승은 러셀이 '선수겸 감독'으로서 뛰면서 이룬 기록으로, 이는 러셀 외에는 전무하다.
 
러셀이 현역으로 뛰는 동안 셀틱스가 우승을 놓친 것은 1958년(세인트루이스 호크스, 현 애틀란타)과 1967년(필라델피아 76ers) 단 두 시즌 뿐이었다. 러셀의 셀틱스가 파이널에 진출하여 패한 것은 1958년 단 한번이었다. 만일 이 두 시즌마저 우승을 차지했다면 러셀과 셀틱스는 사상 초유의 13연패-커리어 전 시즌 우승이라는 만화같은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 러셀의 셀틱스는 NBA 최초의 '왕조'로 불리우며 이른바 지금까지도 최고 명문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셀틱 프라이드'라는 용어가 이때부터 탄생했다.
 
NBA 역사를 통틀어도 선수 개인으로 러셀보다 많은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전무하다.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과 통산 득점 1위 카림 압둘자바가 각각 6회, 현역 최고의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판 커리는 4회 우승을 차지했다. 심지어 러셀과 동시대를 풍미하며 역대 최고의 센터 자리를 다투는 라이벌 윌트 체임벌린은, 개인기록에서는 러셀보다 훨씬 우위임에도 정작 우승은 고작 2회에 불과하다. 다만 감독까지 범위를 넓히면 선수로서 2회, 감독으로서 11회 우승을 차지한 필 잭슨(시카고 불스, LA 레이커스 감독)이 NBA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경험한 인물이다.
 
미국 스포츠사에서 조던이 이른바 선수 개인으로서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 올타임 넘버원)의 반열에 올랐다면, 러셀은 팀스포츠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자(WINNER)'라는 수식어로 불리고 있다. 현재 NBA 파이널 MVP(최우수선수)도 러셀의 이름을 따서 '빌 러셀 어워드'로 불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러셀은 아이러니하게도 파이널 MVP 경험이 없다는 것. 이 부문 시상이 러셀의 마지막 시즌인 1969년부터야 도입되었고, 당시에도 러셀은 셀틱스를 정상으로 이끌었지만 파이널 MVP 타이틀은 준우승팀인 레이커스의 제리 웨스트가 가져갔다.
 
팀우승 못지 않게 러셀의 개인 기록과 수상 이력도 충분히 화려하다. 러셀은 NBA에서 통산 963경기 출전하여 평균 15.1득점 22.5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득점과 리바운드 수치가 바뀐게 아니다) 네 차례 리바운드 부문 1위에 올랐다. 정규리그 MVP에 5회나 선정됐고, 올NBA팀 11회, 올스타에는 12회나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업적을 바탕으로 러셀은 까마득한 후배 세대인 조던-압둘자바-제임스-체임벌린 등과 함께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의 선수를 논할 때마다 최소한 열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거론되는 레전드중의 레전드다.
 
현대농구에서는 3점슛의 가치가 높아졌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농구는 '센터놀음'이라는 격언이 진리로 통했다. 러셀의 진가는 농구에서 팀플레이로서의 빅맨이 지녀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추고 '센터의 모범'을 정립한 선수로 인정받는다는 데 있다.
 
러셀은 현역시절 착화신장 208cm으로 현대 기준으로는 조금 작지만, 윙스팬 224cm의 긴 팔과 엄청난 운동능력 그리고 왼손잡이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센터로서 가장 이상적인 신체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셀은 찰거머리 같은 1대1 수비는 물론 높은 농구 지능을 바탕으로 한 팀 디펜스 능력까지 출중했다. 센터뿐만 아니라 전 포지션 통틀어 농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러셀은 아무래도 현대의 팬들에게는 많이 잊혀진 1950-6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선수이다보니, 후배들처럼 선수의 활약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영상 기록이나 세부적인 관련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선수를 평가할 때 러셀 본인의 이야기나 그의 시대를 함께 지켜본 관련자들의 증언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일각에서는 러셀의 업적이 과대평가된 게 아니냐는 반응도 존재했다.
 
사실 러셀의 시대만해도 NBA팀이 불과 9개밖에 없었고 선수들의 신체조건이나 리그의 수준도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평가다. 체임벌린의 한경기 100득점, 러셀의 파이널 한경기 40리바운드 경기, 웨스트의 파이널 시리즈 평균 40득점처럼 현대농구에서는 다시 나오기 불가능하다는 기록들이 종종 속출할만큼 거품이 끼어있던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러셀은 다른 역대급 선수들에 비하여 크게 떨어지는 득점력으로 '수비형 센터'의 이미지가 강했던 반면, 스탯으로는 온전히 드러나기 힘든 그의 수비력을 증명할 세부적인 지표는 많이 발전하지 못한 시절에 활약했다. 그의 진가가 가장 돋보였던 블록슛 기록은 러셀이 은퇴한 후에는 1970년대부터야 정확한 집계가 이루어졌다.

NBA 올해의 수비수와 수비팀(All-Defensive Team) 타이틀은 러셀의 은퇴 시즌인 1969년부터 도입되었으며 당시 러셀은 최초이자 마지막 수상을 기록했다. 시대의 한계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을 감안해도 러셀의 가치는 NBA 전문가들과 농구계 관계자들에게 이구동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러셀이 NBA에 남긴 진정한 업적은 단지 눈에 보이는 우승과 수상 기록이 전부가 아니었다. 러셀이 현역 시절을 보냈던 시기의 미국 사회는 아직 인종차별이 공공연하게 만연하던 시절이었고 NBA도 지금과 달리 백인 선수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훨씬 높았다. 심지어 러셀이 활약한 보스턴 역시 인종차별이 유난히 심했던 지역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NBA 최초로 드래프트에 지명된 흑인 선수인 척 쿠퍼(1950년)을 비롯하여 러셀까지 흑인 선수에게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한 팀도 보스턴 셀틱스였다.
 
러셀은 이러한 차별과 텃세의 벽을 오직 실력만으로 뛰어넘어 레전드의 반열에 오르며 흑인 운동선수들의 위상을 높였다. 후배 세대의 흑인 스타들에게 NBA에 입성하여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제시했다. 모범적인 선수생활과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흑인들의 목소리와 권익을 대변하는 데도 앞장서며 은퇴 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메이저리그(미국 프로야구)에 재키 로빈슨이 있었다면, NBA에서는 러셀이 있어서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 후 러셀의 등번호 6번은 셀틱스에서 영구결번이 됐다. 1975년에는 흑인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제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렸다. 2011년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의 훈장이자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자유 훈장(메달 오브 프리덤)'을 수여받았다.
 
2017년에는 NBA로부터 평생공로상(라이프타임 어치브먼트 어워드)을 수상했으며, 지난해에는 NBA 75주년 기념 '위대한 선수 75인' 센터 부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러셀은 스포츠 선수로서이자, 한 인간으로서도 평생에 걸쳐 누릴수 있는 모든 영예를 다 누리고 이제 영면에 들며, '영원한 승자'로서 팬들의 기억속에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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