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일(OiL)>의 1부, 농장 콘월, 1889년의 한 장면

연극 <오일(OiL)>의 1부, 농장 콘월, 1889년의 한 장면 ⓒ 황선하

 
"엄마는 가족에게 가장 좋은 걸 주는 거야. 나갈 거면, 문 잘 닫고 가거라."

남편을 사랑하지만, 가부장적인 환경에 갇힌 젊은 아내는 새로운 결심을 세운다. 여기를 떠나 새로운 삶을 찾기로. 뱃속에 있는 아기의 성별을 모르는데, 당연히 아들일 거라 말할 정도로 남성 중심의 사상이 그녀를 옥죄었는지 모른다. 그런 여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기 때문일까. 다른 길을 꿈꾸는 며느리에게 마지막 말을 넌지시 건넨다. 자신의 아들을 벗어나 새 삶을 선택한 며느리를 막지 않았던 시어머니. 그의 말이 1막 마지막에  던져지자 묘한 여운이 감돈다. 

몇 년간에 걸친 준비작업을 마치고 대학로극장 쿼드(QUAD)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그의 일환으로 오는 28일까지 계속되는 '개관 페스티벌'의 라인업으로 연극 <오일(OiL)>(박정희 연출)을 선택했다. 총 6주 동안 무용, 국악, 다원 등 다양한 장르가 연이어 펼쳐진다. 개관 직후에 시작한 클래식(음악)이 끝나자 '대학로'하면 떠오르는 연극이 페스티벌의 두 번째 주를 장식했다. 그동안 스테이지에 올랐던 작품들 중에서 선택했단다. 수많은 후보들이 있었겠지만, '대학로극장 쿼드'의 선택은 <오일>이었다. 

국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해온 이자람 씨가 정극에 도전해서 관심을 준 것일까. 물론 이 씨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외국 소설에 한국적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전력(?) 덕분인지 '융합'을 꿈꾸는 극장의 취지와 일치할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연극이 진행되는 100분 동안 정통성에서 벗어나는 시도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오일>이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엘라 힉슨'(Ella Hickson)의 원작에 충실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극단 풍경'이 제작한 <오일>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창작지원사업을 통해 완성됐다. 공연예술 단체에게 최대 3년까지 지원하는데, 이 작품은 2019년에 선보인 <작가, 작품이 되다1-장주네>와 이듬해에 공개한 <작가(The Writer)>에 이은 3개년 프로젝트('작가 展')의 대미를 장식한 결과물이다. 지난 2021년 5월, 더줌아트센터에서 박정희 연출가는 <오일>이 지향하는 바를 이렇게 드러냈다.

"관객에게 조금 더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고, 그 삶이 다른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는 공연을 올리고 싶었어요."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연극
 
 연극 <오일(OiL)>의 한 장면

연극 <오일(OiL)>의 한 장면 ⓒ 황선하

 
여기엔 엘라 힉슨의 통찰력 덕분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무엇보다 100분을 꿰뚫고 있는 '여성 서사'를 빼고는 다른 것을 설명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영국의 소재를 우리에 맞게 재구성해 무대에 올려야했던 박 연출자의 심정도 분명 그랬을 것이라 짐작한다. 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인생의 마지막까지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갈등에 사묻힌 모녀. 이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당대를 겪었던 여성의 섬세한 심리와 여성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 분명하다. 

제목에서 유추하듯 <오일>은 기름의 흥망성쇠에 따라 막이 구분된다. 다시 말해, 현대 인류를 풍족하게 해준 '석유'의 발견과 쇠퇴가 연극의 시대적 배경이다. 설정이 흥미롭다. 그것은 석유가 본격적인 에너지원으로 발견된 1889년부터 이제는 고갈되어 지구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2051년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필자는 한 여성(메이)의 삶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일생이 석유의 160여 년과 묘하게 겹치는데, 20대의 임산부에서 아흔의 노모까지 숫자를 굳이 일치시킬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람이 어떻게 162년을 살 수 있을까?"라고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석유와 관련된 역사·환경·정치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한 여자의 기구한 일생을 떠올리며 그에 심리에 더 집중하면 충분하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 인류의 역사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으로 흘러왔다. 이것은 서양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낯선 경험이 아니다. 여성의 이야기는 좀처럼 듣기도, 볼 수도 없었다. 이렇게 백인 남성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를 재해석하고 여성의 시각에서 들려주고 싶었던 엘라 힉슨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박 연출가가 대략적인 줄거리만 듣고 이 작품을 선택한 계기도 여기에 있다고 고백했다.

"무조건적인 페미니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드러나지 않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여성의 모습을 봐주길 바랍니다." 

석유의 흥망성쇠와 한 여성의 일생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연극 <오일(Oiㅣ)>의 한 장면

연극 <오일(Oiㅣ)>의 한 장면 ⓒ 황선하

 
영국인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대입시켜야 할까. 시대에 따라 전개되는 5막에는 각자마다 역사적 사건이 다르게 깔려있다. 석유가 처음으로 발견된 19세기 말과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 지배하던 20세기 초에 당시의 여성이 받은 사회적 차별을 간접 경험하길 바란다. 새로운 자아를 찾고 싶어 가정을 버리고 어린 딸과 함께 탈출했지만, 딸만큼은 누구보다 다른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던 엄마를 보았다. 하지만 1908년의 시대적 상황은 모녀를 편하게 놔두지 않았고, 여성으로 받았던 핍박은 당대의 여성을 이해하는데 그 어떤 것보다 적절한 수식어는 없어 보인다. 

막이 변하면서 석유파동이 일었던 1970년대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 이해가 쉬웠다. 게다가 4막인 2021년은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의 동시대성을 완벽히 재현했다. 과거의 여성상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꿈을 쫓는 딸(에이미)은 시대가 변하지만 늘 엄마(메이)와 충돌한다. 역할이 조금 바뀌어 엄마가 지난 과거를 후회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이들의 갈등은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딸은 엄마에게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충격적인 말을 던지면서까지 패륜적 갈등은 암흑속으로 빠져버린다. 목표를 향해 자신을 내려놓는 메이는 큰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사랑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하지만 딸은 일보다는 사랑과 행복을 좇는 신 여성상을 지향하는 것에서 극한 대립각을 세운다. 

20대부터 90대까지 긴 시간이 연극을 지배한다. 한 세기 반에 걸친 역사적 배경에 따라 석유의 일대기는 한 여성의 심리를 보여주기 위한 조연에 불과하다. 나는 한 여성의 일대기를 넓은 스펙트럼으로 열연했던 두 모녀에 집중하라고 제안한다. 무엇보다 <억척가> <서편제> <노인과 바다> 등에서 연기력을 검증한 이자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한 여성이 고민했던 내재적 갈등을 5막에 따라 서로 다르게 연기했다. 엄마이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으로, 자기와는 다른 환경에서 똑같은 실수와 고난의 길을 걷게하지 않으려는 강인한 엄마로 말이다. 억척스러운 보릿고개를 이겨내고 자신의 고난은 나에게서 끝내고 싶었던 우리의 엄마가 떠오른다. 두 번 다시 자신의 딸에게는 똑같은 고통을 반복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런 엄마를. 

메이가 떠날 수 있도록 아무 말 하지 않고 보내준 시어머니, 한평생 억척스럽지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서 직진으로 일관했던 엄마,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꿈꿨던 딸. 이 삼대는 각자의 시대상을 담은 여성상이 완벽하게 투영됐다. 석유를 발견한 19세기 말,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았다고 시작한 연극은 마지막 5부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뷰를 보게 된다. 중국이 새로운 핵 에너지원을 발견해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제안으로 연극은 끝난다. 석유에서 핵으로 더 나은 연료로 갈아탔지만, 역사는 되풀이된다. 그럼에도 아직도 같은 고민에 휩싸인 인류에게 던지고 싶었던 마지막 내레이션이 울려퍼진다.

"그동안 통제와 조작이라고 생각한 게 사실 사랑이었던 것 같아. 넘치도록 큰 사랑, 끝도 없고, 무한한… 그런데 나는 할 수가 없었어. 이제 그것은 사라질거야. 그걸 다시 찾을 수도 없어. 그게 사라지고 나면 아마도 나는 조금은 후회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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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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