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근영.

배우 문근영. ⓒ 크리컴퍼니

 
 
배우 문근영은 '얼떨결에', 그리고 '일이 커졌다'라는 표현을 강조했다.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그것도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선보이게 된 사실에 짐짓 쑥스러워했지만, 영화를 놓고 보면 상당한 내공이 느껴진다. 10일 부천시청의 한 호텔에서 마침 첫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온 문근영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심연> <현재진행형> <꿈에 와줘>는 문근영을 필두로 안승균, 정평 이렇게 세 배우가 함께 하는 창작집단 바치(희극배우를 뜻하는 '노룻바치'라는 단어에서 따옴-기자 주)의 프로젝트다. 본래 유튜브에만 공개하기로 했다가 <유리정원>(2017)으로 인연을 맺은 신수원 감독의 권유로 영화제 출품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세 작품은 각각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느꼈을 법한 고뇌와 한계, 그리움 등을 대사 없이 배우의 몸짓과 눈빛으로만 표현한 게 특징이다.
 
치열함과 꼼꼼함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큐 사인을 외치는 것이 민망해서 처음엔 조감독이 외쳤다"라며 문근영이 입을 열었다. 꼼꼼한 사전 준비와 격렬한 토론으로 이뤄낸 창작물이었다. 직접 각본과 연출은 물론이고 콘티 그리고, 로케이션까지 맡았다던 그는 "배우가 배우의 것을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자유로움을 느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사실 연출을 작정하고 한 게 아니라 아직도 누군가 감독님이라고 부르면 낯간지럽긴 하다. 연기를 하고 싶어 모인 집단이거든. 계기는 단순하다. 왜 연기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을까. 가수는 작사를 하거나 작곡을 하고, 댄서도 자기 춤을 만들어 표현하는데 말이다. 연기자의 숙명이자 한계지. 누가 써 준 글과 연출, 편집, 그리고 다른 인물들이 없으면 생성되지 않는 셈인데 거기서 비롯된 갈증이 컸다."
 
세 작품은 모두 문근영을 비롯한 세 배우의 개인 경험과 소회, 마음이 담긴 작품이다. 연기적 한계를 느꼈다가 극복하고, 또 다른 한계를 느끼다가 결국 정체된 것만 같은 순간들을 물 속과 수면, 물 밖의 공간에서 헤엄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게 <심연>이었다. <현재진행형>은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데 나이가 들고, 경제적 상황도 나아지지 않으면서 느낀 고뇌가 1인 2역의 몸짓 연기로 담겨 있고, <꿈에 와줘>는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듯 보이는 청년이 꿈에서 그녀와 재회하고 다시 헤어지는 과정에서 터지는 감정을 표현했다.
 
"내적으론 연기자의 자질을 두고 스스로 의심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 일과 난 맞지 않는 걸까 느끼는 순간들은 아마 다들 있을 것이다. 배우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인생이라는 무대에 서 있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을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대본을 제가 썼지만, 배우들과 같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현재진행형> 때는 누가 옆에서 보면 싸운다 싶을 정도로 정평 배우와 설전을 벌였다. <꿈에 와줘>는 제가 대본을 세 가지 버전으로 썼는데 수정고는 다섯 번이나 된다. 안승균 배우에게 대본으로 많이 까였다(웃음). '누나, 이거 아냐'이러면 수긍하면서 바로 수정에 들어갔지. 근데 그런 과정이 재밌었다. 제게서 뭔가 끄집어내고, 끄집어내지는 게 신기했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세 편의  단편 영화를 공개한 문근영 감독이 10일 오후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세 편의 단편 영화를 공개한 문근영 감독이 10일 오후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회제

 
 
세 작품 모두 대사가 없는 이유도 있었다. 몸짓과 눈빛, 그리고 음악과 조명이 전면에 나선 것에 문근영 감독은 "평소 춤을 좋아하기도 하고, 댄서들 공연을 찾아보다가 연기로도 뭔가 배우만의 것을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심연>에 이어 두 작품도 대사를 넣지 않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를 보실 때 배우의 눈빛이나 몸짓에 집중하기보단 대사와 표정 등에 많이 집중하시잖나. 아니면 (집에서) 귀로 듣기만 하면서 드라마를 즐기시기도 하고. 우린 대사 없이 서정적으로 몸짓과 눈빛을 표현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음악도 사실 <심연>을 보면 물에서 진행되기에 사운드가 전혀 없잖나. 촬영할 때 연기에 도움을 받기 위해 선택한 여러 노래가 있었는데 그중에 Yolk(백동훈) 님 곡이 있었다. 용기 내서 SNS 메시지를 보냈고, 함께 하시게 됐다."
 
"오래 연기하는 배우로 남고 싶어"
 
이처럼 영화 전반에, 심지어 커튼 같은 소품까지 직접 사서 배치하는 등 열정을 오롯이 담아낸 작품들이었다. 문근영은 "성격상 효율성을 중시하기에 준비 과정이 꽤 치밀했다"라며 "<꿈에 와줘>는 이틀, 두 작품은 하루 만에 찍어야 했다"라며 말을 이었다.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설 땐 가진 걸 꺼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렵게 느껴졌는데, 뷰파인더 앞에 (감독으로) 있을 땐 굉장히 똑똑해야겠더라. 전체를 봐야 하니까. 동시에 그 안에서 우연성을 발견할 때가 있잖나.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하면 그걸 써야지. 제가 짜놓은 퍼즐이 흐트러지더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걸 다시 잘 배열하는 게 일이었다."
 
 10일 오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문근영 감독의 단편영화가 공개됐다. 관객과의 대화 행사 전경.

10일 오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문근영 감독의 단편영화가 공개됐다. 관객과의 대화 행사 전경. ⓒ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회제

 

방은진, 문소리, 윤은혜 등 해외로 보면 줄리 델피나 사라 폴리, 조디 포스터 등 여성 배우이면서 감독인 사례가 꽤 많다. 상업영화나 장편 영화 제안이 있다면 응할 것인지 묻는 말에 문근영은 "그 제안을 하신 분께 다시 생각해보시라고 할 것 같다. 제가 장편은 아마 욕심을 안 낼 것 같다"라며 웃으며 답했다.
 
"물론 연출은 계속 하고 싶다. 배우들이 제가 원하는 연기를 해줬을 때의 짜릿함이 있더라. 영화의 모든 과정이 제 손을 거친다는 게 너무 좋았다. 캐스팅, 대본, 미팅, 콘티, 그리고 장소 섭외와 후반 작업까지 말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그거는 처음 해보는 거라 그렇다고(웃음).
 
목표라면 그저 현장에서 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감독으로의 포부는 아직 없다. 연출도 연기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전엔 뭔가 항상 힘들게 연기를 했다.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는 마음이었는데 바치를 하면서 뭔가 갈증이 풀리고 해소된 게 있다. 너무 한 치 앞만 봤다 싶었다. 인생을 길게 펼쳐서 거기에 연기를 곁들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떤 배우, 어떤 감독? 그 '어떤'이라는 말에 갇히지 않고 싶다. 차기작은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문근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정평 안승균 창작집단바치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