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경 텔레그램에 단체 채팅방을 개설해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거래 및 유포한 일명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닉네임 '갓갓' 문형욱이 1번 방부터 8번 방까지 총 8개의 채팅방을 개설해 영상을 판매했다는 이유를 들어 비슷한 사건들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N번방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다른 가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저지른 범죄를 모두 포함한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텔레그램 성 착취 방의 운영자 중 한 명인 조주빈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는 '텔레그램 탈퇴'라는 단어가 물밀듯 올라왔다. 수사망을 피하려는 것으로 추정되는 N번방 이용자들이 대거 메신저 이용을 그만두겠다며 탈퇴 방법을 검색한 것이다. 일반적인 성범죄 양상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이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여론은 가해자 특정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신상이 공개된 사람은 박사 조주빈을 포함한 단 여섯 명, 다른 가담자들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때, 일부 언론은 이 사건을 특정 개인의 문제 또는 병리적 문제로 치부하기도 했다. 명백히 집단적 협업 형태의 범죄임에도, 가담자들의 책임을 도외시한 것이다. 주요 피의자들을 단죄하는 일보다도 디지털 성범죄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성매매의 깊은 뿌리를 뽑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됐다.
 
N번방, 그곳에 있던 사람들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속 재현된 텔레그램 채팅 장면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속 재현된 텔레그램 채팅 장면 ⓒ 넷플릭스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대두되었다. 디지털 기술이 유포·재유포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피해 규모의 파악이 어렵고, 공간의 익명성으로 인해 은폐가 용이하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또, 동성 간 참여와 연대의 성격을 띠는 남성 커뮤니티의 특성 때문에 중대 범죄라는 인식이 낮아 악질적 행위가 성행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전통적 유형의 성범죄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사회가 인지하게 됐고, 온라인 공간을 매개로 피해의 지속성과 확장성이 크므로 근절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적 움직임에도, 피해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은 계속되고 있다. 가해 집단이 스폰서 아르바이트, 일탈 계정 등을 빌미로 여성들을 유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 매체는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을 다룰 때 피의자보다도 피해자인 여성에 더욱 주목했다. 그 결과, 문제의 원인이 여성에 있는 것이라며 모욕하는 2차 가해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성범죄는 여전히 여성들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근본적 원인이 남성들의 '수요'에 있다는 것을 간과한 까닭이다. 성 착취물에 대한 남성들의 수요가 없다면 피해 여성은 존재할 수도, 존재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은 성 착취를 조장하거나 방조한 남성들의 문제로 다시 논의되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는 여성의 성을 구매하는 남성과 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남성 집단의 공모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여성을 상품으로 공급하는 사회 구조 아래서 성을 착취해 온 개인 나아가 집단, 그리고 고질적 문화로 포장된 음지 속 성구매 행위를 드러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고,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수요와 공급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성 착취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특히 수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성매매는 수요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권 신장 운동으로 여성의 주체성이 부각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와 상반되게 성범죄 피해자의 대부분이 수동적인 여성, 연약한 미성년자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수요가 공급을 앞선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남성의 수요를 충족할 만큼 여성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판매자는 취약한 지위의 여성을 사이버 지옥으로 강제 유인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를 맞춘다. 이것이 텔레그램 성 착취 방을 만들어낸 기본 원리이다.
 
특히 텔레그램은 플랫폼의 특성상 보안이 뛰어나고, 이용자의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한다는 특징 때문에 성 착취를 촉진하는 기제가 됐다. 성적 이미지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여성에게 실질적인 폭력을 가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포르노 시장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연출된 영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성적 학대를 동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인 수요뿐 아니라, 착취를 조장하는 측면에서의 수요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수요자에는 성 착취물을 제작 및 배포한 판매자뿐 아니라, 피해자가 제공하는 성적 서비스를 시청한 성 구매자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시장 구조의 일원으로 자리함으로써 피해 여성에게 실질적인 해를 가하고, 성범죄의 굴레로 내모는 일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모든 남성은 아님(#NotAllMen)?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속 성 착취 피해자를 묘사한 모습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속 성 착취 피해자를 묘사한 모습 ⓒ 넷플릭스

 
디지털 성범죄는 남성과 여성 간 이루어지는 개별 행위로 볼 수 없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된 성 착취 시장 내에서의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에 가깝다. 성을 구매하는 소비자, 구매를 조장하는 집단, 상품으로 공급되는 피해 여성이 시장을 이룬다.

이 시장 구조 속에서 이용자는 수요를 창출하고, 운영자는 수요에 맞추어 피해자를 상품화해 공급하며, 성 구매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관리해 온 것이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불특정 다수의 남성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돈만 내면 어떤 고약한 성적 욕망이든 충족할 수 있다는 기대 심리를 끌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운영자는 언제든지 고립될 수 있는 취약 여성을 표적 삼아 끊임없이 상품을 공급한다. 즉, 일련의 성 착취 과정은 수요와 공급 구조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 착취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남성 구매자들의 수요가 쟁점이라는 부분은 늘 간과되고는 한다. 성 구매자의 존재는 어떻게 그토록 쉽게 자취를 감출 수 있었던 것일까? 이는 널리 퍼져 있는 남성 성욕에 대한 그릇된 통념 때문이다. 흔히 말해 남성의 성욕은 여성과 달리 통제가 어렵고, 그렇기에 성적 충동이 더 빈번하다는 식이다. 여성의 몸은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성 관념이 성 구매를 용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특히 일부 남성들은 동성 집단의 영향으로 여럿이 함께 성을 구매한다. '남자라면 돈으로 여자를 살 수 있어야 한다'라는 부추김이 관행처럼 굳어진 남성 문화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후에는 여성이 피해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성 구매를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남성들이 이러한 관행을 따르지 않고,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성 착취 문제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지금껏 성 구매나 성 착취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남성들을 비난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해 남성들의 잘못된 성 관념이 면책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성 구매를 단순 유흥거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남성 집단 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개인 역시 인식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수요의 주체는 남성이기에 성매매 근절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성범죄 근절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속 성 착취 피해자를 묘사한 모습

<사이버 지옥 : N번방을 무너뜨려라> 속 성 착취 피해자를 묘사한 모습 ⓒ 넷플릭스

 
성 착취 피해자들은 여러 형태의 폭력에 시달린다. 수단과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의도는 피해자를 통제하는 데 있다. 여성은 통제에서 오는 상실감뿐 아니라 피해 사실이 알려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쉽게 굴종하게 된다. 

극악무도한 지시를 따라야만 신원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은 디지털 성범죄 시장의 익명성과 맞물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 왔다. 말을 잘 들으면 촬영물을 유포하지 않겠다는 말로 종용해 여성이 착취 커뮤니티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여기게 만든다. 가해 집단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 시장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피의자들이 피해 여성에게 가해 온 착취는 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텔레그램 성 착취 방의 피해자들이 처했던 현실이다.
 
이러한 사안의 중대함에도 성 착취물 사건 중 열에 일곱은 재판조차 받지 않는다. 벌금 또는 집행 유예 등 법정 최소형 미만의 선고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솜방망이 처벌은 피의자가 자신을 범죄자라기보다는 운이 없어 걸린 사람 정도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성 구매자에게 유독 관대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도 여성 인권 감수성이 없는 남성 집단이 성 구매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남성 집행 담당자들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과 유사한 모방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N번방의 영상 또한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플랫폼과 다크웹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영상이 재생될 때마다 강간은 재연된다. 사소한 클릭 한 번이었을지 모르지만, 산정할 수 없는 피해를 공모한 것이다.

하지만 성 착취물을 수만 명 앞에 전시해 피해 여성을 양산한 범죄자는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괴롭다며 신상 공개 처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전에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마우스 커서로 저지른 살인 행각, 21세기형 디지털 연쇄 살인, 이제 더는 일탈이나 단순 호기심이었다는 변명 뒤에 숨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N번방 사건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사건 디지털 성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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