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이 53일만인 지난 19일 단식을 중단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임 지회장은 "살아서 끝까지 싸워야겠다는 마음"에 단식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53일의 단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 임 지회장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투쟁을 해야 했을까.
지난 13일 KBS 1TV <시사 직격>에서 '앞으로는 상생, 뒤로는 노조 파괴? 두 얼굴의 SPC' 편이 방송되었다. 이날 방송은 SPC(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등 20여 개 식품 브랜드가 속한 기업 집단) 계열사들의 과도한 노동환경과 함께 노조 차별 등에 대한 문제를 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6일 '앞으로는 상생, 뒤로는 노조 파괴? 두 얼굴의 SPC' 편을 연출한 박병길 PD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 KBS 1TV <시사 직격>의 한 장면
ⓒ KBS
다음은 박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세요?
"저도 대기업을 실명으로 비판하는 방송을 처음 해봤어요. 이게 단순히 대기업을 공격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여기에는 수천 명의 가맹점주가 있잖아요. 그래서 방송이 만약 실제와 너무 다르거나, 제가 방송을 잘못 만들면 수천 명의 가맹점주가 피해를 입잖아요. 그럼 안 되죠. 그런 걸 최소화하기 위해 자극적인 장면이라든지 인터뷰 같은 것들을 신중하게 골라내는 작업이 많았어요. 방송 후 응원하는 연락이 많았어요. 특히 매장에서 일하시는 근로자분들이나 제가 취재했던 분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하고 싶었던 말들을 대신 세상에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얘기를 듣고 오랫동안 힘들었던 것들을 털어낸 느낌입니다."
- SPC 노조 문제는 어떻게 취재하게 되셨나요?
"기사로는 이따금 접하면서 파리바게뜨의 불법 파견 문제라든가 사회적 합의 과정 문제 등은 알고 있었어요. 던킨 도너츠 위생 고발 건에 대해서도 자작극 논란까지 있었다는 건 기사 통해서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 노조 문제까지 얽혀 있다는 것은 방송 두 달 전에 법조계 관계자의 제보를 통해서 들었어요. 저도 호기심이 생겨서 취재해 보니까 이건 방송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죠. 아직도 노조 차별을 조직적으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문제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방송을 만들게 됐어요."
- 처음에 어디부터 취재하셨어요?
"저희가 시민대책위에 연락해서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문서화된 걸 받았어요. 파리바게뜨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다 받게 됐는데 그걸 다 방송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중에 어떤 내용에 포커스를 맞출까 고민했죠. 그리고 지회장에게도 저희가 제보받은 내용들이 사실인지도 확인해야 했죠. 아무래도 제빵기사들 처우 문제가 가장 와 닿더라고요."
- 김성은(가명)씨의 경우 하루에 400개의 빵을 만들어요. 과노동 아닌가요?
"저희도 일반인이라서 하루에 400개씩 빵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사실 가늠이 안 되었어요. 제빵기사들이 특정 노조 관계없이 활동하는 오픈 톡 같은 게 있어요. 거기 보면 거의 매일같이 유사한 물량의 빵을 혼자 만들어 내느라 식사도 못 하고 퇴근 시간도 넘겨서 일한다는 증언이 끊임없이 들어왔어요. 물론 제빵기사 전체가 5300여 명 정도라고 알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닐 거고 그중에는 어떤 분들은 식사 시간도 넉넉하고 퇴근도 여유 있게 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이게 일부일지라도 상당히 많은 기사가 실제 겪고 있는 업무량 과다 현상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 이게 파리바게뜨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제빵업계 다른 회사의 문제인지 궁금하네요.
"안 그래도 동종 업계의 다른 업체는 어떤 상황인가 궁금했어요. 예를 들면 지금 가장 대표적인 경쟁 업체인 뚜레쥬르 같은 경우도 저희가 확인하고 싶었어요. 일단 활성화된 노조가 없어서 이런 내용을 들을 수 없었죠. 일단 저희가 제빵기사들의 지인을 통해서 뚜레쥬르의 기사님들 얘기를 들어봤는데, 제빵업계는 이 정도의 노동량이 필요한 곳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저희가 방송한 내용이 꼭 파리바게뜨만의 일은 아닐 수 있어요. 다만 제빵업계의 여러 근무자들이 점심시간 등 기본적인 노동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 업계 1위의 대표 기업으로서 개선하면 좋지 않을까요.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부분이에요."
- 인력을 더 뽑으면 되는 일 아닐까요?
"그렇죠. 저희도 그걸 문제로 삼았던 부분인데요. 피비파트너스(파리바게뜨 제빵 카페기사가 소속된 SPC의 계열사)로 소개되는 제빵 기사들 소속 업체가 인력회사예요. 점주들에게 받는 제빵기사 인건비는 한정돼 있잖아요. 매장에 고정으로 있는 기사들 월급이 나가고, 그분들이 쉴 때 지원 기사들이 일을 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그 지원 기사의 인건비가 비싸요. 여유롭게 운영하기 어려운 거죠. 지원기사가 부족하면 피해가 매장에 고정된 기사들한테 가는 거죠. 휴무도 잘 못 쓰고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어 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 파리바게뜨에서는 코로나19 증상이 있어라도 확진 전엔 근무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양성이 나와도 근무를 요구받은 것 같던데.
"저희도 처음 그 제보를 받았을 때는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싶었어요. 있어도 일부 중간관리자 한두 명이 그냥 말실수한 거겠지 싶었어 검색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SNS상에 유사한 사례가 여러 건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유증상이고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상황이었고 충분히 의심 증상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도 어떻게 근무 조치를 하라는 매뉴얼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물론 저희가 회사에 확인해 보니까 만들어 놓은 매뉴얼은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매뉴얼이 일선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심지어 중간관리자들도 잘 몰라요. 만들어 놓기만 하고 실제로 쓰이지 못하는 규정을 내놓고 '이건 매뉴얼이 있으니까 우리는 잘못 없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기자주- 이와 관련 피비파트너즈 방송을 통해 '코로나 대응 매뉴얼이 있었고, 증상 의심시 검사를 받게 하고 점포 출근을 제한했다"며 "회사에 접수된 사례는 없었다'고 답변했다)."
- 임산부의 경우, 일의 양은 줄이지 않고 퇴근 시간만 앞당기도록 해 몸에 무리가 갔는데요.
"이것도 인력 부족 이야기인 셈이고요. 원래 복수 기사 제도라고 해서 그런 매장은 한 명을 더 지원받거나 아니면 단축 근무 매장이라고 해서 (빵을) 너무 많이 만들 필요가 없는 매장 같은 경우는 근무 시간을 줄인 채로 운영하는 매장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짧게만 일해도 되는 매장에 임산부를 배치하는 게 가능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임신했다고 해서 쉽게 (매장을) 옮길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런 매장주들이 임산부를 거부하는 문제도 있고, 이 과정에서 노조 차별이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었어요(기자주- 피비파트너즈 측은 방송을 통해 '특정 노조원들에 대한 차별행위는 없었다'고 답변했다)."
- 노조 차별은 불법 아닌가요?
"노조 차별은 불법이죠. 그래서 이번에도 제가 방송에서도 소개했지만, 예전에 있었던 특정 노조 가입을 종용하고 특정 노조 탈퇴를 요구한 것 관련해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불법 부당 노동행위라고 판정받았어요. 그리고 최근 노조에 따라서 승진 차별도 있었다고 방송에서 소개됐는데요. 차별 정황이 인정됐다는 지방노동위 판결도 있었고요. 저희가 방송하기 2주 전에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역시나 자격 조건이 원래 안 되는 사람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제기된 모든 사람이 승진 차별 받은 게 인정됐습니다."
- 노동관계법 개정안 독소조항에는 '교섭 청구 단일화' 조항이 있는데,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면 복수노조 허용의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요?
"일단은 제가 알기로는 복수 노조 제도 자체가 소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교섭 창구 단일화가 되면서 소수 노조가 정작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 소수 노조의 목소리가 회사에 닿기 어렵게 되는 부작용이 있죠. 일단 교섭 창구 단일화 하게 된 취지는 이해해요. 워낙 많은 노조가 난립하게 되면 여기저기서 협상만 하느라 예기치 못한 불평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도 교섭 창구 단일화를 하고 있지만 보완시스템이 있다고 해요. 예를 들면 지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노조 2, 3개가 서로 인원수 맞추기를 해서 한 명이라도 더 많으면 그 노조가 전체 업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시스템인데, 미국 같은 경우는 그게 아니라 무노조인 사람들도 포함하고 교섭에 참여하지 않는 작은 노조 사람들까지 모든 근로자를 포함해서 그중에 대표를 뽑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조금만 변형하고 개선하면 교섭 창구 단일화의 효과도 유지하면서도 좀 더 민주적이고 모든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할 수 있는 교섭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물론 미국의 시스템에 맞다고 할 순 없죠. 그 제도도 단점이 있겠죠. 지금 우리나라의 교섭 창구 단일화에 문제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사례들도 비교해서 개선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죠."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취재하면서 가맹점주 협의회라든가 회사 측이라든가 심지어 한국노총 소속 제빵기사분들에게 '일부분의 얘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5300여 명의 제빵기사 중에 민주노총 소속의 기사 이야기로만 생각하시는 거예요. 민주노총 소속 기사는 지금 200여 명 남아 있는데 200여 명의 이야기만 가지고 모두가 다 이런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물론 그런 일들을 겪는 소수의 문제가 있는 건데 그렇다고 우리가 방송에서 외면해야 하는 것인가죠. 소수의 일이지만 대기업이 책임감을 갖고 시스템을 보완해 소수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