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으로 유명한 김지하 시인의 타계 소식은, 그의 시를 읽으며 끓어오르는 원시적 울분을 달래던 대학시절을 보낸 내게도, 적잖은 상실감을 안겨 줬다. 그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고 가치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시대를 읽어내고 자신의 시에 그 여러 형상들을 시어로 담아내고자 했던 시인으로서의 발걸음만큼은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봤다.

그의 영면을 혼자 집에서 기리며 김지하 시인만을 위한 '레퀴엠(장송곡)'으로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문득 뇌리에 스치는 곡이 있었다. 워낙에 7·80년대엔 저항시인으로 칭송받았었기에 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 꽤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나, '녹두꽃' 같은 곡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녹두꽃'은 곡 자체가 주는 울림과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크기가 마치 재단을 한 듯 잘 어울려서 들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시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그가 '동학농민운동'의 준엄함을 기리며 쓴 시, '녹두꽃'의 빛나는 시어들이 헌화로 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아주 조용히, 특히 가사에 집중하며 노래를 들어본다.

빈 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타네 불타네
깊은 밤 넋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모질수록 매질 아래

날이 갈수록 흡뜨는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살아 열쇠소리 사라져
버린 밤은 끝없고

끝없이 혀는 잘리어 굳고
굳은 벽속에
마지막 통곡으로 살아
타네 불타네
녹두꽃이 타네
별푸른 시구문 아래 목베어
횃불아래 횃불이여
그슬려라 하늘을 온세상을

번득이는 총검아래 비웃음아래
너희 나를 육시토록 끝끝내 살아/ 녹두꽃 가사


1984년, 내 가슴에 박힌 한 구절
 
 1991년 발매된, 노래를 하는 사람들 <녹두꽃>

1991년 발매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녹두꽃> ⓒ 노래를찾는사람들

 
이 곡은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이기를 즐겨한 작곡가 조념이 70년대에 만든 곡으로 무시무시한 유신의 시절에도 시구절처럼 살아남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정규 3집에 수록되면서 당시 민주화를 주도하던 학생운동의 장에서, 혹은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 때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던 김광석의 목소리로 불려져 후엔 조금 더 대중성을 확보한 곡이기도 하다.

내가 이 곡을 처음 마주하게 된 건 이보다 한참 이른 1984년 여름이었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때이기도 했고 시위 현장에는 반드시 '민중가요'라 불리는 노래들이 현장의 대동단결을 위해 쓰임새 있는 역할을 하곤 했었다. 사물놀이패가 이끄는 구성진 가락도 힘을 모으는 데 일조했지만, 시대가 시대였다 보니 통기타의 어쿠스틱 한 소리 하나에 가식 없는 목소리로 전하는 가사들의 몫도 상당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노래패'가 있었다.

1984년 다니던 대학에서도 바로 그 노래패가 결성됐다. 시위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래를 불렀던 선·후배들이 모여 조금 더 체계적으로 노래로 무리를 이끌고 뭉치게 하자는 의중이 서로에겐 있었던 것 같다. 

10월에 올릴 터 세움 공연(첫 무대)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무대에 올릴 곡들을 신중하게 고민하며 고르던 중이었다. 각자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아니면 구전되어오는 민중가요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하나, 하나 작성해 나가던 무더웠던 어느 여름밤, 갑자기 정적을 깨는 놀라운 기타 소리에 저절로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된 순간이 있었다.

'빈~손 가득히 움켜~쥔....' 

바로, 노래 '녹두꽃'이었다. 처음 접하는 기타 반주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그것인 듯 장대한 울림을 이끌어내더니, 깊숙이 단전으로부터 끌어올리는 목소리를 타고 들리는 시구 하나하나는 머리로 가서 이해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바로 꽂히는 경험을 하게 했다. 워낙에도 기타를 잘 친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선배여서 기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목소리 또한 이렇게까지 경이롭다니!  

타인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에 소름이 끼친 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그때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무대를 뚫고 나오던 선배의 녹두꽃의 한 소절은 뭐랄까, 딱 첫 소절만으로 듣는 이를 사로잡아버리는 마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선배의 '녹두꽃'은 후에 무대에 올려져 노랫말이 가진 힘이 어떻게 선순환을 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가 됐다. 자리에 앉아있던 군중은 열광했고, 한 목소리로 따라 불렀으며 몇몇은 눈물을 머금기도 했었으니까.

녹두장군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이 지닌 역사적인 전사에, 시인 스스로도 시대의 역행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됐던 이야기가 더해져 노래 '녹두꽃'의 가사는 자연스럽게 자유와 항쟁의 깃발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지닌 가장 순수한 혼의 모습으로 써진 시구라 믿고 싶을 정도로 '녹두꽃'의 구절구절은 힘이 있으나, 때론 처연하고 가끔은 숭고하다. 들을 때마다 곡과 가사의 합이 아름다움을 넘어 구석구석 뼈저리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비록 시인은 이 생에서의 짧은 시간을 마무리했지만, 그의 시는 노래의 곡조에 집을 짓고 치열했던 한 시대를 지나 백발의 성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영원한 시절을 누리고 있다.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어쩌면 영원히 불릴 노래에 자신의 영혼 한 자락을 심어둔 시인은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녹두꽃'은 오래전 시인의 손끝으로부터 피어나 마침내 지지 않는 꽃으로 오늘도 은은하게 사방을 밝히고 있으므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후에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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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음악방송작가로 오랜시간 글을 썼습니다.방송글을 모아 독립출간 했고, 아포리즘과 시,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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