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 ⓒ SBS


2022년 4월 16일 가평계곡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와 조현수가 검거됐다. 이은해의 남편 윤상엽 씨를 살해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다가 도주했던 두 사람이 다시 검거된 것은 124일만이었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두 사람은 '살인 혐의 인정하는가', '보험금을 노렸나'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러브하우스>의 깜찍한 어린 소녀, 동정받던 젊은 미망인을 거쳐, 세기의 악녀이자 괴물이 되어버린 이은해,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지난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그녀의 마지막 시나리오, 이은해-조현수 775일간의 추적'을 통하여 지난 2년간에 걸쳐서 가평계곡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공개했다.
 
이은해가 도주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행적이 확인된 거주지에서는 이은해와 조현수, 그리고 고 윤씨의 여권이 발견됐다. 계곡 사건이 발생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이은해는 남편의 여권과 구급사망일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거주지 임대인이 경찰과 함께 집을 찾아갔을 때 집안은 엉망이 되어있었고, 이은해와 조현수는 급하게 짐을 꾸려서 도주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은해와 <그알>의 인연은 2년전부터 시작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가평계곡 사건을 처음 제보한 것은 바로 이은해 본인이었다. 이은해는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두고 보험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사고사로 종결될 뻔했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유족들의 문제제기였다. 이은해가 2017년 남편 윤씨를 피보험자로 지정하며 가입한 보험에서 사망시 수령할 수 있는 보험금은 무려 8억원이었다. 이은해는 조현수와 남편 윤씨가 생존해있을 때부터 내연관계였다. <그알>은 2020년 첫 방송을 통하여 가평계곡 사건을 조명하며 이은해와 조현수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했다.
 
첫 방송 이후 이은해의 후배이자 계곡사건 당시 일행이었다는 유씨의 제보가 있었다. 유씨는 "방송을 보고 제가 모르던 사실이 너무 많은 데 놀랐다. 사건 당시 조현수가 물속에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일행들은 윤씨가 물에 빠졌을 당시 물속에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저는 경찰조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사고사라고 생각을 했다"라고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유씨는 경찰에 휴대전화를 제출하여 계곡 사건 당일 촬영 동영상들을 복원했다. 동영상에는 조현수를 비롯한 남자 일행들이 수영을 못하는 윤씨가 타고있는 튜브를 계속 흔들어대며 장난을 쳤고, 공포에 빠진 윤씨의 간곡한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런 윤씨의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이은해의 음성도 담겨있다.
 
이은해와 조현수는 <그알>의 취재가 본격화되면서 제작진의 연락을 기피했고 자신과 관련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가 하면, 방송후에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24일 재판부는 이은해의 소송 제기를 기각했다. 제작진은 이은해-조현수가 공개수배가 된 이후 다양한 제보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행적과 숨기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추적했다.

이은해-조현수가 윤씨를 살해하려했던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은해-조현수가 사용하던 대포폰을 통하여 2019년 2월에는 강원도의 한 펜션에서 복어독이 섞인 음식을 먹여서 살해하려고 했으나 치사량 미달로 미수에 그쳤던 정황을 파악했다.

3개월 뒤에는 용인의 낚싯터에서 이은해가 윤씨를 물속에 떠밀어 살해하려고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당시 조현수의 여자친구였던 송씨(가명)의 제보에 따르면 윤씨는 이은해가 자신을 밀었다고 주장했지만, 이은해는 윤씨가 술에 취하여 스스로 빠졌다고 반박했고, "그래 내가 오빠를 죽이려고 했네, 내가 나쁜 X이야"라고 자학하며 오히려 윤씨가 먼저 이은해에게 사과하고 달래도록 만드는 상황을 유도했다고.
 
이은해에게는 내연남 조현수 외에도 이씨라는 또 한 명의 공범이 더 있었다. 제보자인 이씨의 지인은 "'피해자 아내(이은해)가 보험을 들어놓고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를 친다. 그래서 남편을 죽였다며 웃었다"는 이야기를 이씨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폭로했다.
 
이은해는 고등학교 시절 가출팸으로 불리던 불량 청소년 무리의 일원이었고, 이씨 역시 여기서 알게 됐다고. 이은해의 동창이라는 제보자는 "너무 질이 안좋아서 어울리고 싶지 않은 친구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제보자는 이은해가 채팅을 통한 조건만남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절도나 갈취를 일삼았다며, 당시 부평경찰서에서는 이은해가 유명인이었을 정도로 자주 들락거렸다고 밝혔다.
 
이은해가 윤씨와의 혼인 기간을 포함하여 지난 8년간 만난 남자는 확인된 것만 6명이었다. 이은해는 무려 3명의 남자와 동시에 동거를 하기도 했고 윤씨와의 만남 전에 이미 결혼한 전력도 있었다.
 
이은해의 전 남편 권씨(가명)는 이은해가 어려운 개인사로 빚이 있어서 술집을 다닐 수밖에 없다는 핑계로 하소연하며 받아간 돈만 5천만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결혼식 비용도 모두 권씨가 부담했다. 하지만 이은해는 축의금 문제로 갈등을 빚은 뒤 어느날 갑자기 잠적하며 문자로 권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후 불과 4개월 뒤에는 윤씨와 결혼했다.
 
윤씨와의 결혼생활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윤씨는 신혼집이 아닌 수원의 반지하방에서 홀로 거주했다. 이은해와 윤씨의 통화기록을 살펴보면 이은해가 여러 핑계로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하며 윤씨를 압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씨는 이은해가 요구한 돈을 메꾸거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하여 친구들에게까지 손을 벌려야했다. 결혼 전만해도 약 3억의 현금자산이 있었던 윤씨는 이은해와 만난 8년간 오히려 3억이 넘는 빚더미에 안게 됐다.
 
표창원 범죄심리분석 전문가는 "이은해가 청소년기부터 금전을 확보하는 수단은 남자였다. 남성의 약점을 이용하여 그들을 갈취하면서 확대되고 발전하여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의 수단으로 삼게됐다"고 분석했다.

제보자는 이은해가 친구들에게 윤씨를 소개하면서도 친구들끼리 있을 때는 '호구'라고 지칭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은해는 윤씨에게 피부가 스치기만 해도 경멸하고 싫어했었다"고 폭로했다. 또다른 지인 박씨는 "남자친구같은 느낌을 못 받았다. 이은해가 지시하면 '알겠습니다. 은해님'이라고 대답하더라"고 밝혔다.
 
윤씨는 이은해와의 통화에서 "돈이 너무 없다. 빚도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은해가 "정말 나를 그만 만나고 싶냐?"고 묻자 "아니야, 헤어지자고 한 건 정말 미안해"라며 사과했다. 심지어 윤씨의 메모중에는 윤씨가 이은해에게 보험금을 주기 위하여 자살까지 고민했음이 드러났다.

이는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김태경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상대의 선량함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에 순응하게 만들어버린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착취다"라고 이은해와 윤씨의 관계를 분석했다.
 
이은해는 자신만을 바라보던 남편에게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었을까. 또한 어떻게 그토록 철저한 설계를 할 수 있었을까.

이은해의 살인 의혹은 윤씨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은해의 전 남자친구였다는 고 이지훈(가명)씨는 2014년 태국으로 이은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익사 사고로 사망했다. 목격자도 영상이나 근거도 없었다. 가평계곡 사건으로 이은해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도 재조명됐다. 당시 이은해와 보험 이야기를 나눴다는 현지 교민은 "이은해가 남자친구가 죽었는데도 슬퍼하는 듯한 모습이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씨의 사망 보험금 3천만 원은 유족이 수령했다.
 
표창원은 이 사건에 대해서는 "우연한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 범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다. 그 사건을 통하여 이은해는 사망 사고 현장에서의 과정과 시스템, 매커니즘에 대하여 '학습'이라는 걸 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윤씨의 보험 가입을 설계한 것도 이은해의 가출팸 일원 중 한 명이었고 이은해와 교제했던 사이였다고. 제작진은 해당 보험설계사를 만났다. 설계사는 자신을 찾아와 보험을 먼저 제안한 것은 이은해였고 보험료가 비싸더라도 보장금액이 큰 조건을 요구했다고.
 
윤씨의 생명보험은 보험료 미납으로 2년간 6번이나 실효된 적이 있었지만 모두 이은해가 다급히 보험료를 납입하여 부활시켰다고. 공교롭게도 복어독 살해시도와 낚싯터 살해시도는 모두 미납 보험금을 납부한 지 각각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에 벌어졌다. 그리고 윤씨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가평계곡 사건은 윤씨의 사망보험금이 실효되기 불과 4시간 전이었다.
 
김현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 교수는 "보험설계사가 아무 것도 안했는데 먼저 가입한 것은 정말 의아한 거다. 처음부터 이상한 의도로 가입했고 이상한 행위들이 중간에 있었고 끝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거다. 본인들이 보험금을 편취할 때 목표가 되는 것들은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이은해는 보험사기 전력이 다수 있었다. 정씨는 이은해가 현지 경찰서에 허위 분실신고를 하여 발급받은 증명서를 보험사에 제출하여 여행자 보험금을 수령하는 보험사기를 수시로 질렀고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고 폭로했다. 조현수도 이에 수시로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를 받고 이들은 보험사기 혐의는 인정했다. 이들이 가로챈 금액은 약 8백만 원. 김현수 교수는 "여행자 보험으로 150-20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들은 0.001%다. 이들은 상당히 준비된 사람들이다. 보험 시스템을 악용하는 데 상당한 경험과 지식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은해-조현수의 범죄행각과 장기 도주에는 '또다른 숨은 조력자'가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이은해-조현수의 은신처는 일산의 한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이은해의 지인이라는 한씨는 "숨어지내다가 유명 로펌의 변호사를 구할 돈이 마련되면 자수하겠다"는 이은해의 '자수 플랜'을 공개했다.
 
이은해는 '고씨'라는 의문의 인물을 받아 도주생활을 하면서도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을 통하여 돈을 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해에게 일을 맡긴 것도 고씨였고, 일을 배당받아 감시하에서 통제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은해-조현수는 도피행각중에도 고씨를 만나 고급 술을 마시고 호캉스까지 즐기며 여유로운 생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해는 도심을 누비고 다니며 지인들과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수사망을 피하기 위하여 대포폰을 사용하는 등 철저한 모습을 보였다.
 
제작진은 이은해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친구 배씨(가명)를 설득하여 이은해-조현수의 은신처 정보를 확보하고 바로 경찰에게도 알렸다. 바로 그날인 4월 16일 이은해와 조현수는 검거됐고 19일에 구속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은해의 부친이 먼저 딸의 은신처를 경찰에 신고하며 자수 의사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검거는 시간 문제였던 상황이었다.
 
표창원은 이에 대하여 "현재 상황에서는 자수라고 볼 수 없다. 자수의 의미란 '나의 죄를 스스로 인정하고 밝힐테니 형사절차를 밟아주세요'라는 자백이 결부된 출두다. 그들이 자신의 누명을 주장하고 법적으로 대응한다면 이는 결코 자수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계곡 사건의 진실찾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자칫 단순 익사사고로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이 법의 심판대에 올려질 수 있었던 것은 유족들의 간절한 바람과 제작진의 끈질긴 취재 노력, 소중한 정보를 알려준 제보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 아무리 악마의 완벽한 설계도 진실을 향한 물길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은해와 조현수는 자수 후에도 침묵을 지키며 변호사의 조력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어쩌면 그녀가 구상한 마지막 설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의 이름은 이제 이은해가 아닌,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알고싶다 가평계곡살인 이은해 조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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