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청량하고 사랑스럽고 긍정적인 청춘 드라마가 나왔다. 더군다나 스포츠물이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포츠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꿈과 우정, 사랑을 한데 버무린 이 맛있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매력을 조목조목 짚어본다. 

꿈도 운동도 힘으로 밀어붙이는 소녀검사, 나희도
 
스물다섯스물하나 펜싱 할 때 가장 빛나는 소녀, 희도

▲ 스물다섯스물하나 펜싱 할 때 가장 빛나는 소녀, 희도 ⓒ TVN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봐, 그러면 마음이 좀 나아지거든."

펜싱이라는 꿈을 향해 겁 없이 전진하는 무대포 소녀 나희도, 그녀의 최대 매력은 남자주인공 백이진의 말을 빌리면 '뭔가를 함부로 하'는 것이다. 그저 펜싱이 좋은 그녀는 국가대표이자 금메달리스트인 동갑내기 소녀 고유림을 우상처럼 좋아한다. 그런 그녀가 있는 태양고로 강제 전학을 가기 위해 학교 일진과 싸움하기, 일진들의 패싸움에 끼어들기 등을 시전하지만 삶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다. 

싸우기 위해 시비를 건 날라리 일진 소녀는 희도에게 앞으로 메달을 딸 운동선수가 몸조심하지 않는다며 도리어 그녀를 걱정해주고, 패싸움에 들이닥친 경찰은 자발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희도에게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며 그녀를 피해자로 착각한다. 미성년자로 경찰에 발각되기 위해 나이트에 간 희도는 비운의 도련님 백이진을 만나 원치 않는 도움을 받기도 한다. 

희도의 꿈은 단 하나, 세계 최고의 검사 고유림의 라이벌이 되는 것이다. 덧붙여 가장 좋아하는 만화 <풀하우스>가 나올 때 바로 볼 수만 있다면 18세 명랑소녀 희도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꿈에 대해서는 옆과 뒤는 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에너지가 넘치는 희도 주변에는 긍정적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스포츠물 남자주인공이 주로 하던 역할을 여성에게 넘겨주니 생각보다 더 재밌다! 이 드라마의 최고 매력은 바로 너다, 나희도!

진중한 젊은이 백이진, 희도를 사랑하게 되다
 
스물다섯스물하나 반듯한 심성의 이진은 꼴통같은 희도에게 그만 반하고 만다

▲ 스물다섯스물하나 반듯한 심성의 이진은 꼴통같은 희도에게 그만 반하고 만다 ⓒ TVN

 
한때 재벌집 아들이었고, 세상 그 누구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사람이 있었다. 스물두살의 잘생긴 청년 백이진. 

그러나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빚쟁이들은 이진에게 찾아와 책임을 종용한다. 그런 이진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학교를 그만 두고 가장이 되어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책임감보다 아버지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까지 함께 빚을 지고 어렵게 되었다는 부채의식이다. 그래서 이진은 자신의 멱살을 잡은 빚쟁이들에게 약속한다. 자신은 절대 행복해지지 않겠노라고. 

그런 이진에게 어느날 갑작스럽게 말괄량이 나희도가 나타난다. 시대가 준 혹은 아버지가 준 짐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착한 청년 이진은 겁없이 당당하고 때로는 대책없는 희도로부터 반짝거리는 순간을 발견한다. 행복해지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진에게 희도는 제안한다.  
 
"네가 그랬잖아. 앞으로 어떤 순간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난 그말에 반대야. 근데 너는 이미 그 아저씨들한테 약속했으니까 이렇게 하자, 앞으로 나랑 놀 때만 그 아저씨들 몰래 행복해지는 거야, 둘이 있을 땐 아무도 몰래 잠깐만 행복하자."

이진은 희도의 이런 제안에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차마 행복할 수 없는 자신에게 '몰래 행복하자'고 말하는 희도에게서 사려깊은 마음씀을 알아본 이진은 자신보다 네살이나 어리지만 그만 그녀에게 반하고 만다. 그 이후로 이진의 행보는 '희도 바라기'이지만 천방지축 희도는 사랑의 감정이 뭔지 모르는 열여덟일 뿐이다.

진부한 악역 캐릭터 따위는 필요없어
 
스물다섯스물하나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림, 그래서인지 운동만 생각하는 희도가 부럽고 밉다

▲ 스물다섯스물하나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림, 그래서인지 운동만 생각하는 희도가 부럽고 밉다 ⓒ TVN

 
나 역시 나우누리, 하이텔 세대다. 그래서인지 희도와 유림이 각각 '라이더37'과 '인절미'라는 닉네임으로 온라인 시조새격인 PC통신을 하는 모습이 정겹고 반갑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온라인 상으로 진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티격태격, 서로를 못잡아 먹어 안달이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비싼 스포츠인 펜싱을 하게 된 유림은 국가대표라는 기대감까지 더해 18세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꽤나 무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1인자는 어디에도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기에 더욱 외롭기만 하다. 그런 그녀 앞에 루키처럼 나타난 희도는 어쩐지 자신의 왕좌를 무너뜨릴 것 같아 불안하다. 그런데도 희도는 당당히 너의 라이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자신이 다칠지도 모르는 순간에 도와준다. 미워죽겠는데 대인배인 희도를 보면 자신의 바닥이 보여 더욱 괴롭다.

통상적인 드라마에서 유림은 사랑과 펜싱의 라이벌 구도로 악역이어야 할 캐릭터였겠지만 드라마는 영리하게도 진부한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는다. 유림 또한 그저 10대 소녀일 뿐이다. 펜싱을 잘하고 기대치에 부응하고 싶지만 감당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유림은 펜싱으로는 최고였지만 희도와 다른 친구들을 만나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운동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고유림으로 성장해나간다. 

펜싱 선수들이 서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칼을 들고 겨눠보는 것이다. 칼과 칼을 맞대고 부딪치고 피하면서 서로의 습관, 경기운영 방법,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나가듯 우정을 비롯한 인간관계 역시 직접 부딪치고 갈등하고 화해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깊게 알아갈 수 있다. 희도와 유림, 두 소녀는 경쟁 구도 속에서 마음껏 갈등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알아가면서 화해하고 참된 우정을 만들어 나간다. 

청춘들에게 지금 필요한 세 마디, 앙 가르드-프레-알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tvN의 히트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공식을 차용하면서도 기존 드라마들의 클리셰를 비틀어 1990년대 이야기에 세련미를 더한다. 희도와 유림이 펜싱검처럼 우산과 스탠드를 잡고 위험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고, 다정한 남자들인 이진과 지웅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다독인다. 재벌집 왕자님이 가난한 캔디를 구하는 서사여 이제는 안녕! 

모든 스포츠물이 그러하겠지만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요 키워드는 바로 '성장' 이다. 펜싱을 너무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희도, IMF로 집안이 몰락한 도련님 이진 그리고 금메달리스트로서의 부담감과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일찍 철이 들어 외로웠던 국가대표인 유림 이 세 사람이 사랑과 우정이라는 관계에서 서로를 어떻게 성장시켜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발랄하면서도 결이 고운 드라마다. 

극중에는 '(IMF) 시대가 너희들의 꿈을 뺏었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리고 희도는 '시대가 내 꿈을 빼앗기도, 기회를 주기도 한다'라고 이진에게 말한다. '시합에서 항상 졌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기 위해 비극을 희극으로 바꿔 생각한다'는 희도의 말에서 이 드라마는 어쩐지 지금의 고달픈 청춘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펜싱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청춘들에게 지금 필요한 단 세 마디를 하기 위해 말이다. 앙 가르드(기본 자세), 프레(준비), 알레(시작)!
드라마 스물다섯스물하나 김태리 남주혁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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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여행을 좋아하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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