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촛불"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도서출판 느린걸음
좀 더 심각하게 들어가 보자. 영화가 취하는 정세인식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하의 정권과 그 비호세력 vs 민주시민 전체의 구도다. 시민들은 건전한 상식선을 회복하기 위해 ('이게 나라냐?' 구호처럼) 한마음으로 일어섰다. 사람들은 유난히도 춥던 그해 겨울 굳건히 광장에서 함께 했고, 그들이 버틴 덕분에 갈팡질팡하던 야당이 어렵게 의견을 모아 단합할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혼란에 빠진 집권여당의 균열과 이반을 더해 2016-2017 정권퇴진운동은 온 세계에 자랑할 만한 평화시위로 정권 탄핵에 성공하며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렇게 당시를 규정하는 역사인식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성격의 것이다.
그것은 바로 1987년 6월 항쟁이 6.10에서 점화돼 6.29 선언으로 종결되었다는 견해의 21세기 버전인 것이다. 영화 < 1987 > 등에서 재조명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나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 등이 언론의 특종보도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이에 고무된 시민들이 '몸빵'을 하는 사이에 정치권이 드라마틱한 물밑 협상을 진행했고, 무정부상태나 계엄령 등의 혼란 없이 사법부 등 제도권이 정상 작동하며 위기를 극복했다는 현대판 신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낭만과 우연의 대서사시다.
이렇게 거대한 풍경화를 그려내듯 하는 당시 상황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동일하게 촉발시킨다. 1987년 6월 항쟁은 온 국민이 단합한 빛나는 역사적 체험인 반면, 그 뒤를 이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나 6월 항쟁 이후 1991년 '열사정국'에 이르기까지 몇 년간 사회 각 분야별로 확산된 권리투쟁들의 여파를 단절시키거나 그저 부산물처럼 분리시키는 문제가 부산물처럼 노출되는 것이다. 2016-2017 기간 동안 광화문 일대, 그리고 전국 방방곳곳에서 분출되던 다채로운 변화의 욕구와 시위의 저변을 책임졌던 분야별 사회단체들이 던지던,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굵직한 제기사항들은 본 작품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촛불의 거대한 군집과 똘똘 뭉친 대오의 퇴진 요구 손 피켓만 또렷하게 뇌리에 남을 뿐이다.
'민주묘총' 깃발은 한두 컷 잡히지만 퇴진투쟁에 맨 처음부터 끝까지 결합은 물론 물리적 지원을 책임지는 데 일조했던 '민주노총'의 존재는 영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상식적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 마비에만 국민들이 분노했던 건 아니다. (영화에서도 빼먹지 않고 언급하듯) 세월호 침몰과 그 대응과정의 난맥상, 국정교과서 논란과 블랙리스트 파동, 친 기업 행보와 사회양극화 방치 등 숱한 실정으로 인한 사회적 분노의 폭발이 저변에 무수히 도화선처럼 드러나고 있었기에 적절한 계기가 마련되자 활화산처럼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나의 촛불>에서는 그런 역동성이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기계적 공식처럼 이래서 나오게 되었다거나 망설였지만 사람이 많아서 좋았다는 정도가 각인될 따름이다.
반면에 (분명히 영화의 시선으로 봐도) 끊임없이 주저하고 계산하기 급급하던 야당 인사들은 -그들의 당시 행보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없지 않음에도- 사실상 이 영화의 주역이자 해설자처럼 군림한다. 분명 작품의 기조 자체는 그들을 위한 면죄부 수여로 기울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 겨울 엄동설한에 반 년간 주말을 길바닥에서 견뎌냈던 수백만 명 시민이 공급한 화력과 버텨주는 방어력에 기대어 조삼모사 정치공학 계산을 거듭하는 데 혈안이었던 유력정당 정치인들의 행태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너무 크다. 솔직히 어느 순간에는 그들의 역사비화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들이 왜 그렇게 부각되어야 할까? 이유를 잘 모르겠다.
반면에 박근혜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나 다양한 깃발 아래 모여 광장의 풍경을 풍부하게 만들던 단체와 그룹들은 그저 지나가는 한두 마디 언급이나 사진 몇 장, 아니면 듬성듬성 어쩌다 등장해도 지독하게 도구적으로 쓰일 뿐이다. 거리 곳곳에서 고유한 의제와 주장을 펼치며 시위를 조력하는 필수임무를 소화하던 집단들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당시 매주 집회마다 화제가 되었던 다양한 재기 넘치는 깃발들은 그저 흥밋거리로만 다뤄진다. 영화를 만든 이들의 상황인식과 시각이 서슴없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아마 영화 홍보영상을 보고 적지 않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졌을 법하다. 대통령 선거 직전인 요즘 시류를 겨냥한 듯한, 당시와 비교해 정치적 입장이나 상황이 180도 바뀐 모 대선후보 관련 내용이 강하게 언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본편에선 크게 두드러질 게 없는 정도의 증언과 입장 표명으로만 나온다. 영화는 2019년에 만들어졌고 그때만 해도 2022년 현재의 상황을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테니 사람들의 기대치(?)에 비해 정작 영화 속 역할은 미미한 편이다.
결국 <나의 촛불>은 영화를 볼 많은 이들에게 그저 ① 몇 번의 아름다운 '감성폭발' 평화시위 감동 재현과 ② '제0공화국' 부류처럼 권력 내부와 주변 인사들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유형의 정치비사가 기계적으로 혼합된 이야기로 기억에 남을 결과물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반복되는 질문. 영화 제목에서 강조되는 '나'의 주체는 과연 누굴까?
5_'도구적' 용도가 아닌, 성찰과 기억의 작업을 기다리며
사실 본 작품과 유사한 성격의 작업은 없는 게 아니다. 심지어 이미 2017년에 소개된 적이 있다. 퇴진행동의 핵심 무대였던 광화문 광장에서 매주 진행된 퇴진공동행동 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던 영상 활동가 기록 팀은 자신들이 촬영한 거대한 영상 아카이브 기록을 활용해 개별 작가들의 시선과 주제를 담는 2차 가공을 진행한다. 그 결과물이 10편의 단편 다큐멘터리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광장>(아래 광장)이라는 기획이다. 이 작품은 몇 군데 영화제에서 공개된 바 있다.
거의 아는 이가 존재하지 않지만 해당 작품이 가진 함의는 특히 <나의 촛불>과는 상이한 특성이 많다. 탄핵된 박근혜 정권과는 다른 세상을 열망하는 당시의 기대와 함께 쉽게 해결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과 성찰을 담아 공동창작자들은 여러 주제와 분야별로 어울리는 화두를 선정해 소개한다. 지하철 여성 청소노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위 현장과 뒷정리 풍경, 박근혜 대통령을 특정 동물로 비하하던 풍조 속에서 대두된 동물복지와 권리 논란, 정권은 바뀌었지만 철회되지 않고 이어지는 사드배치, 거리에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기폭제 역할을 담당했지만 주변부로 밀려나야 했던 미성년자 청소년, 성소수자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이 본 작품에선 주류로 설명된다.
단순히 <나의 촛불>에서 소외된 다양한 변방의 목소리가 해당 작품에서 부각되었기 때문에 대조하는 건 아니다. 동일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음에도 <광장>의 접근법이 차이나기 때문이다.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다루지만 <광장>은 그 무수한 인파 속에서도 다양한 얼굴과 면면을 수소문하며 각자의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시도를 끈질기게 이어나간다. 그리고 87년 세대가 앞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례와 '당대' 시위와의 경험을 비교 고찰하는 일화도 포함되는 등 지금 다시 봐도 흥미를 끌만한 도전적 시도가 넘쳐났던 작업이다.
<광장>은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다시 소환될 필요가 차고 넘친다. 이외에 <나의 촛불>에서 스쳐 지나가버린 세월호 유가족들의 시선과 그들의 눈으로 본 당시 시위국면은 지난해 개봉했지만 묻힌 주현숙 감독의 독립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 등에서 풍성하게 보충 가능하기도 하다. 보완재와 대체재가 없지 않은 셈이다.
결국 2016-2017 박근혜 정권 퇴진운동, 우리가 '촛불', 혹은 '촛불시위', 거창하게는 '촛불혁명'이라 부르곤 하는 역사적 대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역사의 차원으로 넘기기보다는 현재적 의의를 정립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화두다. 몇 편의 작품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가진 <나의 촛불>이 드러낸 영화 속 시대정신에 대한 판단과 중심이 관련 소재를 공유하는 타 작업과 상이하기 때문에 결정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아울러 개봉 시기나 영화에 담긴 색깔 등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어떤 '의도성'을 상상할 것이다. 물론 영화를 만든 이들은 보편성과 객관성에 입각해 만들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저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기기엔 아직 그 시절 우리가 품었던 꿈과 희망이 무척 멀기만 한 상황에서, <나의 촛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또 다른 기억투쟁의 과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이끈다.
| <작품정보> |
나의 촛불 Candlelight Revolution
2019|한국|다큐멘터리
2022.02.10. 개봉|87분|전체관람가
감독 김의성, 주진우
출연 고영태, 박영수, 손석희, 심상정, 유시민, 윤석열, 추미애, 김성태, 이혜훈,
박지원, 정세현, 안민석, 하태경, 우상호, 필립 메스메르, 박주민, 정세균
기획/제작 (유)주기자
배급 리틀빅픽처스
공동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