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
영화사 진진
전태일 열사가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된 건 자신이 재단사로 일하던 공장의 어린 여성노동자들로부터 비롯된다. 열사가 생전에 자신의 차비 대신 풀빵을, 자신은 밥을 먹었다며 감자탕을 사먹이던 어린 '시다'들은 바로 그 노동교실의 첫 학생들이 되었다.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의 80%가 여성이었고 대부분 미싱 보조로 일했다.(남성 노동자는 일종의 '관리자'로 재단사나 미싱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13-16살 미성년인데도 하루에 평균 13-14시간 노동이라는 살인적 조건에 처해져 있었다. 국민학교도 못 마치고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그들은 노동교실에서 난생처음 무상교육의 희미한 단초를 경험한다.
그들에게 노동교실은 '다시 만난 세계'가 되어주었다. 늘 잠이 모자라고 항상 배고팠지만 그녀들은 고된 노동이 끝나자마자 노동교실을 찾는다. 노조 활동가들은 당시 밤 10시30분까지 열리던 교실 수업에 30분이라도 참여시키고자 밤 10시가 되면 시장 내 공장들을 샅샅이 돌면서 공장주와 맞붙어가며 퇴근을 독려했다.(즉 이런 '투쟁'이 아니라면 11시까지 일했다는 것) 대체 노동교실에선 무엇이 이뤄졌을까?
'7번 시다', '1번 미싱사', '공순이'로 불리던 소녀들은 노동교실에서 오랜만에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 그곳에선 본명을 불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게 글을 깨치고 자기가 번 돈을 관리할 수 있게 은행 통장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한 명의 독립된 존재로서 '인간' 대접을 처음 받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주 약간이나마 노조의 활동으로 숨쉴 틈을 찾게 된 시간을 활용해 여러 단체 활동이 이뤄지고, 이 과정을 통해 우애를 다지고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미싱타는 여자들>의 초반은 당시 십대 소녀들이던 주인공들의 그 시절과 노동교실에 대한 추억 회상으로 채워진다. 고단하고 어려웠던 시절, 한창 꿈꿔야 할 시절을 박탈당한 채 기계처럼 취급받던 그들에겐 노동교실 활동은 거의 유일한 천연색 기억이었으리라. 빛바랜 흑백사진이나마 소중히 간직했던 기록을 꺼내고 과거 회고를 하는 이제 중년에서 노년이 된 '소녀'였던 이들이 지금 들으면 상상하기 힘든 경험들을 줄줄이 꺼내며 관객들을 타임머신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시다'들의 소박한 꿈이 공장 사장과 정부당국에는 불순하게 보일 뿐이었다. 노동교실은 출발부터 거듭 감시와 탄압에 시달리게 된다. 공권력의 눈에는 노동교실에 자원봉사로 교육을 담당한 진보적 지식인과 대학생들은 불순분자였고, 수업에 개근하는 노동자들은 '의식화'되는 중이었으리라. 영화 속에서 당시를 증언하는 주인공들의 노동교실 사수를 위한 투쟁은 매일이 격전과도 같다. 그럼에도 생에 처음 의지할 곳을 만났던 여성노동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단결로 부당한 탄압에 맞서 농성과 연대투쟁을 거듭한다.
2. 9월 9일이 무슨 날이기에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
영화사 진진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는 이제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돌보던 '시다'들의 '어머니'가 된 이소선 여사는 노동교실의 여성노동자들에게는 믿고 의지할 기둥과도 같았다. 노동운동은 물론 온갖 민주화 투쟁에 함께 하던 이소선 여사가 1977년 가을 어느 날 경찰서에 연행된다. '어머니'의 체포 소식에 격분한 여성노동자들은 농성에 나선다. 영화 중반에 큰 비중으로 소개되는 '9.9 농성' 사건이다. 처음엔 당황해하던 공권력은 이내 무자비한 진압에 나선다. 십대 소녀들은 저항하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오자 각자의 궁리와 결단으로 진압을 막을 방도를 모색한다. 각자 투신하거나 할복을 시도하던 이들은 경찰이 이소선 어머니를 곧 석방시켜주겠다는 구두약속을 믿고 해산하지만 곧 대거 체포된다.
이미 노동조합 활동과 노동교실 사수 관련 제법 투쟁 경험은 있었다지만 이날 체포된 여성노동자들은 뭔가 심상찮은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왜 하필 9월 9일에 시위와 농성을 시도했냐는 질문공세가 쏟아진 것이다. '9월 9일이 무슨 날인가?' 아마 달력을 찾아보기라도 했으리라. 달력엔 하지만 아무 표시도 없었다.
'멸공', '반공'을 국시로 삼아 조자룡 헌 창 휘두르듯 전가의 보도 또는 요술지팡이처럼 써먹던 독재 권력은 우발적 농성에 색깔론 딱지를 붙인다. 9월 9일은 1948년 북한정권이 출범한 날, 일명 '9.9절'인데 이 날에 시위를 했으니 좌경용공세력이라는 혐의다. 정작 여성노동자들은 9월 9일에 그런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지도 그날 처음 알았는데도 말이다. 주인공들은 당시 어이없는 상황을 하나둘 토로하기 시작한다. 조작된 공안사건의 위력은 그들이 이전에 경험했던 '탄압'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직 미성년이라 경찰에 체포될 자격이 못되던(!) 여성노동자는 주민등록을 조작해 구속시키기까지 했단다.
작정하고 집요하게 덤빈 공권력은 상당수의 어린 노동자들에게 실형을 살게 만든 것은 물론, 출소 후에도 낙인을 찍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제 그들은 생활터전이던 평화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된다. 여성노동자들은 의기소침해지고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한다. 영화 전반부에서 시련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꿈을 꾸던 그들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당시를 괴로워하는 풍경은 객석의 관객에게까지 그 암울한 기억을 전염시키는 수준이다. 그저 과거의 지난 역사가 아닌, 아직도 당시 어린 여공들을 짓밟던 국가폭력에 의한 거대한 '트라우마'의 일부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
영화사 진진
영화에선 뿔뿔이 흩어지게 된 주인공들의 회상에 비중을 두고 이후의 역사는 크게 다루지 않지만 다수가 살 길을 찾아 떠나는 와중에도 일부는 옳다고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청계피복노조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에 의해 끝내 강제 해산되지만 이들은 5공화국의 노동악법 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1984년부터 '법외노조'로 활동을 재개한다.(청계피복노조는 이후 1988년에 합법화를 이루고 1998년부터 서울의류노조에 통합돼 명맥을 잇고 있다)
노동교실의 수제자들이던 당시 주역들은 이후 적지 않은 상처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을 이어가거나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인으로 끈끈한 생명력을 발휘했음이 영화 속에서 인터뷰와 자료조사 등으로 찬찬히 드러난다. 그렇게 자신들이 지나온 지난한 세월,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을 그대로 압축해놓은 것 같은 시간을 애증으로 곱씹는 전개가 조금 느슨해질 즈음,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들 마지막 10분의 체험이 시작된다.
그 순간이 어떤 내용과 구성일지는 감이 좋은 이들이라면 짐작하기 그리 어렵진 않을 테다. 하지만 머리로 상상하고 추론하는 것과 실제 그런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영역이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될 것이다. 실제 사실이 담보하는 무게감이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방심한 관객에게 한방 제대로 카운터를 날린다.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펀치다.
이제 영화제 공개당시 부제였던 '전태일의 누이들'이란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감정의 고양이 펼쳐진다. 그녀들의 장구한 구술사를 목격한 이들이라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부터 1987년까지 전태일 열사가 점화한 노동운동의 불꽃을 간수해 들불이 피어오를 때까지 지켜낸 이들은 바로 열사가 풀빵을 사줬던 '시다'들이었던 것이다. 10대 소녀들은 자신들을 위해 스스로를 불사른 누군가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열사의 유언을 실현하기 위해 청춘을 바친 셈이다. 청계피복노조 뿐 아니라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제5공화국의 극악한 노동운동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 명맥을 이어간 이들은 대부분 '시다'의 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영화의 성취,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스틸영화사 진진
본래 여성노동자 구술사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영화는 중심골격을 구성하기 위해 인터뷰 대상자 중 몇 명에게 역할을 집중시키고, 섬유산업 중심으로 짜여 있던 포커스를 과감하게 변경한다. 그리고 역사 탐구가 아니라 시대를 살아온 이름 없는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하는데 공을 들인다.
당시 시대상의 재현을 위해 이제 60이 넘어버린 '시다'들의 청춘 시절을 되돌릴 초상화 스케치를 비롯한 미술작업은 (영화의 포스터 그림처럼) 정석적인 노동영화와는 다른 질감을 선사한다. 그 외에 본래 아카이브 작업에 기반을 두고 출발한 만큼 충실한 공적/사적 사진자료와 여기저기서 찾아낸 생존자들의 인터뷰들을 적극적으로 채워 넣었다. 특히 당대를 복원하는 음악의 힘은 다소 예상했던 활용임에도 정석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잊힌 역사의 색다른 단면이 궁금한 이들, 목소리를 얻지 못했던 존재들의 부활을 목도하고픈 이들이라면 필히 관람해야할 작품일 테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작품 속 주역의 일원인 신순애의 2014년 저서 <열세살 여공의 삶>에 많은 내용을 빚지고 있다. 당시 평화시장 여성노동자들의 삶, 그들에게 노동교실과 청계피복노조의 의미, 그리고 탄압 이후 지난했던 생존투쟁과 과거에 대한 기억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이 책 또한 필독서로 자리매김할 테다. 물론 '누이들'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면 전태일 열사에 대해 다시 거슬러 회귀해야할 필요도 생길 것이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21세기에도 이마트 사내 '불온도서'라는) 전태일 평전과 그에 기반을 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리고 지난해 후반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태일이>를 다시보기 할 시간이다. 평전을 조영래 변호사가 정리할 때 도움을 받았던 '시다'가 <미싱타는 여자들>의 주인공 중 한명인 신순애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이 '횡단'에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될 테다.
여기에 그들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생애를 담은 전기 다큐멘터리 <어머니>(2011, 태준식 감독)를 다시 끄집어낼 때도 된 것 같다. <미싱타는 여자들>의 주역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미싱을 잡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면, 2020년 등장해 독립영화계에서 화제가 되었던 이나영/조민재 감독의 단편영화 <실>도 놓치면 후회할 작품이 될 테다. 거대한 한국현대사에서 그 족적에도 불구하고 묻혀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본인들은 전혀 의도치 않았을지언정) 세상을 바꾸는 데 밑거름이 된 지난한 싸움의 기억은 꼬리를 문 연쇄작용을 통해 이 작품 <미싱타는 여자들>을 만나게 될 관객에게 '거꾸로 본 한국현대사'의 교범으로 각인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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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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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전태일의 누이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