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요?"(승유)

tvN 드라마 <멜랑꼴리아>의 승유(이도현)는 세계적인 수학자가 된 후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을 떠나지 않던 질문도 바로 이거였다. 승유를 제외한 <멜랑꼴리아>의 모든 인물들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수학교사 윤수(임수정)를 몹시 불편해한다. 권력과 부, 사회적인 인정 등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 그저 수학을 좋아하고 교사로서 본질에 충실할 뿐인 윤수를 깎아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곤 결국엔 윤수가 세상을 등지게 만든다.

왜 대체 이 드라마의 사람들은 순수한 열정으로 살아갈 뿐인 윤수를 그토록 싫어했던 걸까?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선 지금, 나는 마침내 그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건 열등감과 우월 콤플렉스였다.
 
 수학천재 승유와 수학의 기쁨을 아는 수학교사 윤수의 이야기를 담은 tvN 드라마 <멜랑꼴리아>

수학천재 승유와 수학의 기쁨을 아는 수학교사 윤수의 이야기를 담은 tvN 드라마 <멜랑꼴리아> ⓒ tvN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윤수

수학교사 윤수는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는 아성고등학교에 부임한다. 윤수는 든든한 배경을 지닌 아이들에게 수학의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이런 윤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학교 권력의 실세 노정아(진경)는 윤수를 늘 감시하고, 최상위권 아이들은 뭔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딴지를 걸어온다. 마치 윤수가 자신들의 특권을 위협이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가운데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숨긴 채 살아왔던 승유가 윤수의 눈에 들어온다.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을 알아본 윤수는 그의 재능을 깨워주고 승유는 다시 수학자로서 꿈을 키워간다. 기존의 상위권 아이들에게 승유는 불편한 존재가 되고, 몇몇은 승유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이들이 더 많이 괴롭히는 것은 이상하게도 '재능'을 지닌 승유가 아닌 순수한 열정뿐인 윤수다.

그러다 윤수와 승유가 '문제를 푸는 동안의 떨림, 흥분, 불안'을 함께 즐긴 게 빌미가 된다. 아성고의 세력가들은 둘의 관계를 부적절한 관계로 포장하며, 윤수의 결혼식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윤수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교사라는 오명을 쓰고 파혼을 당한 채 학교를 떠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윤수를 이토록 미워하고 싫어했던 걸까?

도덕적 열등감과 우월 콤플렉스
 
나는 그 답을 10회 윤수의 약혼자였던 성재(최대훈)와 정아의 동생이자 윤수의 고등 동창인 연우(오혜원)와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연우는 "옳다고 생각하면 장소 사람 가리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은 다했다"며 윤수를 회상하는 성재에게 "난 그래서 윤수가 불편했어요. 나만 잘못된 일에 눈 감는 사람 되는 거 같아서"라고 응수한다. 바로 이거였다. 힘 있는 사람들이 윤수를 그토록 싫어했던 이유는 바로 '도덕적 열등감'과 '우월 콤플렉스'에 있었다.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심리적 성장의 원동력을 열등감에서 찾았다. 그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척이나 약한 존재이기에 근원적인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우월감'을 추구한다고 했다. 여기서 우월감의 추구는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열등감과 우월감이 '콤플렉스'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콤플렉스'는 열등감과 우월감이 역기능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에서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될 때 생긴다. '열등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느낌에 시달리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좌절한 채 살아간다. 또한 열등 콤플렉스는 '우월 콤플렉스'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월 콤플렉스는 성장을 향해 노력하는 우월성의 추구와는 달리 자신을 과시하려 들거나 타인을 깎아내려 열등감을 숨기려는 태도로 표현된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사회적 성취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면에서도 종종 열등감을 느낀다. 비건이나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들의 엄격함을 비난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도덕적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윤수에게 도덕적 열등감을 느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성고의 기득권층은 대체로 '부도덕한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다. 도덕성의 부재를 권력과 부로 숨겨왔던 이들 앞에 나타난 순수한 열정의 윤수는 이들에게 도덕적 열등감을 직면시켰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도덕성을 억누르며 자신들의 선택을 합리화하며 살아왔을 이들에게 도덕적 열등감은 열등 콤플렉스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의 도덕성을 점검하고 성장하려는 우월성을 추구하는 대신, 윤수를 깎아내려 짓밟는 우월 콤플렉스를 발현시킨다.
 
 수학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윤수는 아이들도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만나지만, 주변인물들은 이런 윤수를 못마땅해한다.

수학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윤수는 아이들도 이런 순수한 마음으로 만나지만, 주변인물들은 이런 윤수를 못마땅해한다. ⓒ tvN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살아있는 양심'
 
문제는 도덕적 열등감을 느끼는 마음 뒤에는 여전히 '양심'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도덕적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인 삶이 옳지만,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몇몇 인물들은 이런 갈등을 잘 보여준다.
 
윤수의 애인이었던 성재는 양심을 지녔지만 권력과 타협하는 인물이다. 그가 윤수에게 끌렸던 것은 아마도 자신은 원하면서도 실천할 수 없는 순수한 가치를 윤수가 추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수와 성재는 계속 삐그덕거린다. 윤수처럼 살아갈 수 없는 성재는 윤수에게 오래된 수학책을 버리라 하거나(2회) 힘들면 그만두면 된다는 식으로 윤수의 일을 폄하한다(4회).

6회에서는 "남의 집 자식 피눈물 흘리게 하면서 내 아이 앞세우는 건 달라"라는 윤수의 말에 화를 내는데 이는 양심이 건드려진 것을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10회에는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였어"라고 말하는데 그가 애써 자신의 양심을 타당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연수가 윤수에 대해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 예린(우다비)이 윤수 앞에서 '미안하다' 말 대신 '유감'이라고만 표현한 것(10회)은 모두 이들이 자신의 양심과 손잡는 순간,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윤수를 가해자로 몰아간다. 윤수를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양심에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윤수와 승유는 '수학에 몰입하는 기쁨'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윤수와 승유는 '수학에 몰입하는 기쁨'을 공유하며 가까워진다. ⓒ tvN

 
이처럼 <멜랑꼴리아>의 인물들이 윤수를 싫어하고 괴롭힌 까닭은 이들이 도덕적 열등감과 우월 콤플렉스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진정한 우월성을 추구했다면, 윤수의 순수함을 본받아 더 윤리적이고 올바른 교육환경을 만들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학교는 "입시 결과가 명예고 품위고 권력이야"(2회, 정아)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곳이다. 이런 가치를 숭상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성장을 도모하는 우월감이 아닌 타인을 짓누르는 우월감 콤플렉스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려운 건 우리 현실도 이렇다는 것이다. 친구를 이겨야 성공한다는 교육 풍조에 길들여진 많은 이들이 '우월감 콤플렉스'에 빠져 타인을 깎아내리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늘 볼 수 있다. 
 
'우울'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 드라마의 제목 <멜랑꼴리아>는 아마도 이런 우울한 현실을 반영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드라마 속 세상은 더 암울해질지도 모르겠다. '바로잡기'에 나선 윤수와 승유의 대응에 이들은 더 잔인하게 굴 테니 말이다. 한 가지 희망은 바닥을 친 후엔 '우월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월감을 추구하는 시점이 오리라는 점이다. 3회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을 담은 그림 '멜랑꼴리아'에 대한 윤수의 설명처럼 말이다.
 
"보통은 우울이란 게 무기력하고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는 그런 상태를 의미하지만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닥을 치게 돼. 무의 상태에 이른다고 할까. 그렇게 다 비워지고 나면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되지."
 
그 바닥이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너무 깊고 어둡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멜랑꼴리아 임수정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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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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