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부를 판 남자> 포스터

영화 <피부를 판 남자> 포스터 ⓒ 판씨네마(주)

 
사람이 가볍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초국적 자본은 세상에 사고팔지 못할 게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 끝에 맴도는 감정은 대부분 무력감이다. 인간 세상의 가장 중한 것마저도 돈에 팔려나갈 수 있다는 것, 그 흐름을 인간이 막아낼 수 없으리란 것, 그리하여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곧 도래하리란 전망이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지배한다.

올해로 마흔다섯이 된 스위스 남성 팀 스타이너의 사례는 인간이 어디까지 팔려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지난 2006년 예술작품이 되었다.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가 그의 등에 문신을 새기면서부터였다. 단순히 문신에 그쳤다면 작품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델보예는 스타이너를 실제 미술관에 전시했다. 미술관에 앉아 관람객들에게 문신이 새겨진 등을 내보였다.

더욱 충격적인 건 그가 거래됐다는 점이다. 스타이너는 2008년 15만 유로(한화 2억 원 상당)에 독일의 수집가에게 팔렸다. 그는 죽고 난 뒤 등가죽이 벗겨져 미술작품으로 남게 될 예정이다. 스위스와 벨기에, 독일의 법은 인간이 자기 등을 예술가에게 팔아치우고 죽은 뒤 등가죽을 작품으로 남기더라도 제한하지 않는다.

델보예와 스타이너의 이야기는 예술 애호가를 넘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인간이 저 자신을 물건처럼 거래하게 된다면 인간의 존엄을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는 철학적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그러나 스타이너는 그 스스로가 캔버스라는 사실에 만족한다. 작가 델보예와 독일인 수집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 판씨네마(주)

 
그 남자는 왜 제 등가죽을 팔았을까

튀니지 영화인 카우타르 벤 하니야는 이 이야기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서아시아의 불안한 정세와 이 사건을 엮어 인간성에 대한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이야기는 이렇다.

샘(아흐야 마하이니 분)은 시리아에서 사는 가난한 남자다. 그에겐 세상 전부와도 같은 여인(데아 리앙 분)이 있지만 그녀와 함께 하는 길은 너무나도 멀리 있다. 급기야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의 불안한 정세가 그를 그녀로부터 떨어뜨려 놓는다. 누명을 쓰고 군부에 수배당한 샘은 급기야 레바논으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그가 난민이 되어 레바논에서 병아리 감별을 하며 사는 동안 사랑하는 여인은 외교부 관료와 선을 보고 결혼해 벨기에로 떠난다.

그런 샘의 앞에 세계적인 예술가 제프리(코엔 드 보우 분)가 나타난다. 제프리는 파우스트의 앞에 나타난 메피스토텔레스처럼 샘에게 믿기 어려운 제안을 한다. 그의 등에 문신을 새겨 살아 있는 예술품이 되어달란 것이다. 그 대신 샘을 유럽에 보내주고 돈까지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샘은 파우스트가 그랬듯 그의 손을 잡는다.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 판씨네마(주)

 
팔지 않아야 할 것을 판 대가

상상하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샘은 벨기에 미술관에서 자신의 현실을 깨닫는다. 매일 미술관에서 인간이 아닌 작품처럼 멍하니 앉아 있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지루하다. 벨기에에 오면 사랑하는 여인을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도 무참히 깨어져나간다. 그녀의 곁엔 이미 남편이 있는 것이다.

<피부를 판 남자>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믿기지 않는 실화를 토대로 했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영화 같은 그 이야기를 영화는 나름의 상상력으로 차근히 따라간다. 시리아의 무참한 삶은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낡은 집의 바퀴벌레처럼 수시로 드러나 소름끼치게 한다. 사랑은 마음이 아닌 이유로 갈라지고 가족들도 강제로 떨어진다. 샘이 제프리에게 '옳은 땅에서 태어났군요' 하고 말하는 순간은 오늘날 제3세계로 불리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영화 속 피부를 판 남자는 기실 그 혼자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자식을 팔고 아내를 팔면서 살아간다. 지극한 궁핍과 불안, 결핍이 인간으로 하여금 팔지 않아야 할 것을 팔도록 한다. 사람이 스스로까지 팔아치우는 세상이 어떠한 곳인지가 이 영화가 그려내려 한 것이다.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 판씨네마(주)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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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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