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의 엄마들 (왼쪽부터 오윤희, 심수련, 천서진)

'펜트하우스'의 엄마들 (왼쪽부터 오윤희, 심수련, 천서진) ⓒ 드라마 ‘펜트하우스’ 공식 홈페이지


시즌 1~3 모두 20%가량의 높은 시청률(최고시청률 29.2%)을 기록했던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지난 10일 종영했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악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을 그렸다는 '펜트하우스'. 그러나 정작 그곳에 '현실 엄마'는 없었다.
 
'펜트하우스'는 실제 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운 공간이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최고로 비싼 집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는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바가 없다. 아이들에겐 자신의 안녕에 지극정성인 엄마도 있다. 엄마들의 시간은 오로지 자식을 위해 흐르고, 덕분에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도 끊임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다.
 
그런데도 '펜트하우스'의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지나치게 자주 한다. 엄마 노릇에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왜 이들은 자신을 부족한 엄마라고 여길까. 드라마가 제시하는 '좋은 엄마'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다. '펜트하우스'는 서사 내내 자식을 위한 엄마의 극단적인 희생을 내세운다. 그 결과 심수련, 오윤희, 천서진. 세 명의 이름은 모두 모성에 갇힌 채 사라진다.
 
복수를 결심한 강한 엄마 '심수련'
 
 복수를 다짐한 엄마 '심수련'

복수를 다짐한 엄마 '심수련' ⓒ 드라마 ‘펜트하우스’ 공식 홈페이지

 
극 초반 심수련은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 채 남편에게 순종하는 수동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다 친딸 민설아를 무력하게 잃고 죽은 딸을 위한 복수를 결심하면서 '강한' 엄마로 변모한다.
 
심수련의 복수는 "너도 자식 잃은 슬픔 똑같이 겪어봐야지"라는 대사에서도 잘 드러나듯 누군가의 삶을 추락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녀는 때때로 납치, 사기 등을 저질러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도 한다. 이는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는 방식이지만, 엄마로서 당연한 행동으로 묘사되고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는다.

물불 가리지 않는 복수의 과정에서 심수련 역시 내상을 입는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과 안위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딸을 죽인 진범을 찾고 남은 자식들을 책임지는 게 그녀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친딸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뒤늦게 남편의 추악한 범죄 사실을 알게 되는 인물 심수련. 드라마는 심수련이 처한 상황에 대해 동정하기보다는 그녀 자신이 부서지면서까지 복수를 선택하게 만든다. 엄마라면 어떻게든 자식을 지키는 게 먼저니까. 그래서일까. 심수련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펜트하우스'는 심수련이 엄마가 아닌 다른 존재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시청자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남편 없이 삶의 풍파 헤쳐가는 워킹맘 '오윤희'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오윤희'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오윤희' ⓒ 드라마 ‘펜트하우스’ 공식 홈페이지

 
오윤희는 남편을 잃고 혼자 딸을 키우는 생활력 강한 엄마의 전형이다. "내 자식만큼은 돈 때문에 설움 받지 않아야 한다"며 안 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그럼에도 딸 로나에게는 일하는 엄마, 가난한 엄마라는 게 늘 미안하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엄마로서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오윤희를 자책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펜트하우스'에서 '좋은 엄마'란 그야말로 가정 내에 머무르며 자녀 양육에 몰두하는 헌신적인 어머니다. 그렇기에 오윤희는 경제활동을 하면서 집안일에 돌봄까지 해내고 있지만, 양육에 전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부족한 엄마가 된다.
 
급기야 한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죽은 딸 곁으로 가겠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다.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인 오윤희가 자식의 죽음으로 인해 자살을 택한다는 전개는 엄마의 삶마저 앗아가는 '펜트하우스'의 극단적인 모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신만의 욕망을 추구하는 유일한 엄마 '천서진'
  
 욕망의 끝, 악한 엄마 '천서진'

욕망의 끝, 악한 엄마 '천서진' ⓒ 드라마 ‘펜트하우스’ 공식 홈페이지

 
'펜트하우스'에는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손에 넣는 악인 천서진도 있다. 그녀 역시 딸 은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위대한 엄마'이지만, 엄마 중 유일하게 '청아 재단 이사장'이라는 자신만의 욕망을 지녔다. 하지만 권력획득을 위해 벌인 온갖 악행이 탄로 나면서 천서진은 재산과 명예를 모조리 잃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한편 드라마가 그녀를 단호하게 처벌하는 건 단지 '권선징악'을 구현하기 위해서일까. 천서진은 주단태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가정을 파괴했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식을 이용한 인물이다. 심지어 그녀가 처벌받는 과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는 다름 아닌 그녀의 딸 은별이였다. '엄마의 욕망이 가정을 벗어날 때 엄마는 모든 걸 잃게 된다'는 서늘한 경고로도 느껴진다.
 
가령 시즌 2에서 천서진은 딸 은별이를 매개로 전남편 하윤철과 다시금 사랑을 느낀다. 또, 딸을 지키기 위해 모든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딸의 죄를 덮어쓴다. 그러자 드라마는 강력한 빌런이었던 천서진에게 공감의 여지를 남긴다. 동시에 주단태만이 모두의 적이 된다. 천서진이 가정윤리에 따르자 일어난 변화였다.
 
진짜 현실 편집된 채 '얌전한 목소리'만 남았다
 
화려한 미장센 사이로 '엄마는 위대하다'는 얌전한 목소리만 남았다. 살아서는 자녀와의 관계로만 자취를 남겼던 세 여성은 죽는 순간까지도 누군가의 엄마였다. '엄마로의 죽음'을 통해 세 사람의 생애는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미화됐다. 죽음마저도 소비된 느낌이다.
 
작가조차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인정한 드라마에 모성 이데올로기를 들먹이며 비판적 함의를 갖는 게 어쩌면 과도한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드라마는 결코 드라마로만 존재하지 않아서 이런 식의 묘사가 현실에서 어떤 요구로 돌아갈지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엄마는 일과 가정, 엄마와 한 개인의 삶을 양립하기 위해 끊임없는 균형 잡기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 수반되는 강도 높은 노동과 막중한 책임감도 여전히 엄마의 몫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사랑 자체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각자의 사정과 개성에 따라 다양한 엄마가 있을 수 있다는, 또 엄마 역할 이면에도 고통과 갈등이 있다는 진짜 현실은 편집한 채 그저 모성애를 획일적이고 '위대'하게 그리는 건 곤란하다. '자신만의 욕구도, 호기심도, 자아실현도 없이 필요 이상으로 헌신적인 엄마'는 현실에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청년언론 <고함20>에도 실립니다.
펜트하우스 모성 이데올로기 심수련 오윤희 천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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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_최은영, 쇼코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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