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구열이 높다는 샌프란시스코의 공립 로웰고등학교 학생들
EBS 국제다큐영화제 <아이비리그 캐슬>
앨번은 어느 대학에 원서를 넣을지, 원서를 몇 개나 쓸지에 관해 엄마의 조언에 의지하면서도, 과한 참견과 의사결정을 독점하려는 엄마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앨번에게는 입시도 스트레스지만,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엄마에 대한 불만이 더 큰 문제처럼 보였다. 이 두 모자가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면서 3년 전, 잠시 미국에 살 때 어덜트 스쿨에서 만났던 대만인 수잔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수잔 아주머니는 아들을 어려서부터 쉴 새 없이 채근하고 엄격하게 공부를 시켰다. 덕분인지 아들은 학창 시절 내내 우등생이었고, 당연히 일류 명문대로 진학했다. 또한 졸업 후 높은 연봉으로 구글에 입사해서 엄마를 한껏 기쁘게 했다. 그런데, 자랑스럽던 그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돌변했다. 부모에게 말도 없이 어떤 여자와 결혼을 했고, 구글을 그만두었으며,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아들의 선언 이후, 수잔 아주머니는 큰 충격과 괴로움에 휩싸였고, 우울함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아들은 왜 갑자기 이해 안 되는 행동과 주장을 하기 시작했을까? 어린 아들을 다그치던 젊은 수잔은 이런 미래를 상상이나 했을까? 과연, 어디서부터 수잔 아주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잘못되었을까? 나는 내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며 살고 싶은지 두고두고 생각해보게 됐다.
앨번처럼 같은 동양계지만, 이안의 엄마는 좀 달랐다. 입시보다는 이안이 즐거워하는 정치 풍자 취미 활동을 지지해주며, 유명 대학이 아니더라도 이안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안은, 유명대학은 아니지만, 전액 장학금으로 1년 후 애모리 대학에 편입이 보장되는 단기대학에 원서를 넣고 합격한다. 자신의 진로를 포기하지 않고 엄마와 상담가의 조언을 수용하여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 같았다.
레이첼도 흑인 싱글 엄마의 열성적인 지지와 협력 아래 입시를 치르고 있었다. 레이첼 엄마는 부족한 성적에 따끔한 질책을 하기도 하지만, 요구하고 명령만 하는 건 아니었다. 따뜻한 말로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자립적인 성인이 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자주 당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레이첼은 그런 엄마의 전적인 지지와 기대를 토대로 좀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었다.
한편, 전혀 부모의 도움 없이 입시를 잘 치러낸 학생들도 있었다. 다재다능한 중국계 미국인 소피아와 심화과정인 AP 수업을 듣는 셰이라는 11학년 백인 학생이 그랬다. 특히, 무책임하고 자신을 방치하는 아빠와 함께 사는 셰이는, 스스로 집안일을 하면서도 꿋꿋이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학업에 열중하였고, 결국 놀랍게도 스탠퍼드에 합격한다.
▲ 영화<아이비리그 캐슬> 자료화면
EBS 국제다큐영화제 <아이비리그 캐슬>
미국에서도 입시 환경 속에서 부모-자녀가 마음고생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점은 비슷했다. 치열한 입시 압박 속에서 가족별로 조금씩 다른 대응을 하며 입시를 치러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과하게 아들을 걱정하는 앨번 엄마의 경우와 부모의 특별한 도움 없이도 스스로 헤쳐나가는 소피아와 셰이를 보며, 부모의 적정한 역할과 부모-자녀의 균형을 이루는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입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 중의 한 단계이다. 좋은 대학, 유명한 대학에 가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녀가 부모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잃게 되고, 친밀감을 나눌 친구들을 점점 찾을 수가 없게 된다면, 그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기필코 달성해야 하는 목표인지 의심해 봐야 할 것 같다.
좋은 교육을 위해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덴마크 교사, 메테 페테르센은 <삶을 위한 수업>에서 이렇게 말한다.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에요. 우리는 아주 다양한 길을 통해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요.
숨 쉴 틈 없이 몰아대는 고등학교 생활에서 이런 철학을 견지하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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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