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제천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이자 '올해의 큐레이터'로 활약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

제17회 제천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심사위원이자 '올해의 큐레이터'로 활약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지난 17일 폐막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엔 특별한 손님이 있었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등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다. 그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지난해부터 신설한 '올해의 큐레이터'를 맡았고,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과 음악아카데미 강좌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본래 개막에 맞춰 한국을 찾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악화되는 바람에 일정이 취소됐다. 서면을 통해 만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꽤 오래 전부터 기대했고 주최 측과 긴밀하게 상의하고 있었는데 직접 방문하지 못해 매우 아쉽다"며 속마음부터 드러냈다. 모든 관련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영화음악의 역할을 묻다

이번 제천국제영화제가 마련한 '올해의 큐레이터' 섹션에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 직접 선정한 자신의 대표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을 비롯해 감독에게 영감을 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팔로우> <밤의 열기 속으로> <냉혈한> 등 네 작품이 상영됐다. 관객과의 온라인 대화, 그리고 영화 학교 수강생들을 위해 그는 미리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좋은 스피커를 마련하는 등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올해 축제를 위해 ZOOM 기술을 활용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학생들에게 보다 사용자 친화적인 방식으로 제 생각을 전할 수 있었고, 제가 말하려는 주제에 대한 예시도 잘 보여줄 수 있었다. 사실 한국 방문을 비롯해 한국 관계자들과 협업은 지난 몇 년 동안 일상의 일부였다. 코로나19로 상황이 매우 복잡해졌지만, 나름 기술의 도움으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20대엔 재즈 밴드를, 30대엔 연극 배우를 하며 음악과 공연 전반에서 활약한 마이크 피기스 감독에게 음악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대표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 등 몇몇 작품에서 그는 직접 음악 감독까지 자임하며 작품에 입체감을 더하려 했다. 제천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작품들 또한 그 맥락에 있었다.

"영화제의 음악적 요소를 감안할 때 영화 제작자면서 작곡가로서 영감을 받은 예시를 선택하려 했다. 제 영화에서 제가 선택한 음악들은 영화와 음악과의 관계성은 물론이고, 영화 제작 과정에까지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재즈 음악가로서 즉흥 연주와 작곡을 결합하던 경험도 제겐 중요하다. 영화와 음악에 접근하는 핵심적인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제 첫사랑이면서 동시에 훈련이기도 했다. 제가 생각하는 방식의 일부기도 해서 영화 작업 때 특별히 음악 자체를 의식하진 않는다. 직관에 가깝지. 그래서 특정한 선율이나 영화적 주제보단 영화의 색과 톤부터 생각한다. 일단 톤이 정해지면 조심스럽게 주제를 추가할 수 있다. 솔직히 전 백지의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음악은 영화적 결함을 숨길 수도 있기에 음악은 최대한 영화적 구성을 해놓고 난 뒤에 추가하려고 한다."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현장.

제1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 현장.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한국과의 협업, 순조롭게 진행 중"

그의 작품에서 음악 비중이 커 보이지만 영화란 종합 예술이라는 걸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음악을 쓸지 말지의 문제보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작업은 어떤 영화적 시스템을 활용할지에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주요 투자사들이 투자를 거절하는 바람에 저예산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등을 기점으로 그는 영국과 미국 할리우드의 변두리에서부터 차츰 실력을 인정받아 왔다. 

갈수록 예산 양극화가 심해지는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해 묻자 그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질문"이라며 답을 이어갔다.

"갈수록 독립영화는 확실히 사정이 어려워지고 있다. 소수의 거대 배급사들이 유통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점점 독립영화에 접근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예산에 관계없이 좋은 영화라면 분명 그것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있다는 걸 믿고 싶다. 지금 당장은 많은 콘텐츠가 매우 상업적이어야 안전하다고들 생각하는데 마치 이건 알고리즘의 저주처럼 보인다."

같은 이유로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 서비스에 대한 나름의 우려를 드러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 산업 위기가 가속화 한 측면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는 "영화적 경험을 보존하기 위해 좀 더 열심히 싸울 필요가 있다"며 "결국 영화란 여러 명이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방향을 향한 채 높은 수준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보고 듣는 것"이라 분명히 정의했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그는 현재까지 다섯 번 넘게 한국을 방문할 정도로 한국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범아시아 협업 프로젝트이자 옴니버스 영화인 <셰임>(SHAME)을 준비 중인 그는 한국 영화인들과도 작업을 예고한 바 있다. 

"현재 <셰임>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대본이 거의 완성됐다(사실 이번 주에도 작업 중이긴 하다). 코로나 상황만 잘 통제된다면 올해 가을에 촬영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제작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도전이긴 하지만 내겐 익숙한 프로젝트기도 하다. 제작 과정에서 최상의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이 즐겁다. 한국영화 시스템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어떤 혁신적인 걸 도입할지 생각하고 있다.

한국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서양과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가 되면 특별한 지점이 보인다. 서구적 맥락과 매우 다른 심리가 한국 사회에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는 중이다. 저 같은 이야기꾼에겐 그런 게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도 제게 중요하다. 천천히 지금 배우고 있다."


일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그는 여전히 의욕적이었다.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차기작이 내심 기대되는 이유다.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의 가지 수는 제한적일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무한하다. 매일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매울 새로운 걸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내 안에 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마이크 피기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셰임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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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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