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멘터리 3일>의 장소영 작가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장소영 작가는 지난 2011년 제작팀에 합류해 꼬박 10년을 함께 일해온 인물이다. 그의 손을 거쳐간 에피소드만 100여 개 가까이 된다는 장 작가는 일상을 살 때는 생각 못하다가 이런 시간이 되면 새삼 프로그램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그는 "늘 특별하고 유명하고 잘난 사람들 이야기만 듣다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보지 않았던 이웃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촬영한 내용들을 보다 보면 이게 정말 소중한 기록이구나 확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 작가는 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에는 이렇게 오랜 기간 방송할 수 있을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10년 전에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몇 년이면 끝나겠지, 대한민국 8도가 얼마나 넓다고 언젠가는 (소재가) 고갈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신기한 건 매주 아이템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게) 나온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것도 있고, 비슷한 공간이라도 사는 사람들이 다르다. <다큐 3일>은 연출로서 의도하지 않고 인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주제로 삼는다. 그렇다보니 현장에서 우리가 누구를 만날지 모르는 거다. 어떤 사람이 무슨 돌발상황을 일으킬지도 모르고 거기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저희도 (촬영에 가기 전에) 막연하게 짐작하고 그림을 그리지만 그대로 꼭 되리라는 법도 없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때로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그 공간에 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간을 재해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워진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하게 될 줄 몰랐지."(장소영 작가)
특정한 공간의 72시간을 빼곡히 담아내기 위해 현장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바로 VJ다. 각자 카메라를 들고 공간에 직접 들어가 그 곳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장면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제작진은 '현장 디렉터'라고 부른단다.
이지운 PD는 <다큐 3일>의 제작 시스템에 대해 "연출진이 기획의도를 공유하고 사전 브리핑을 하면, 4명의 VJ들이 각자 독립적인 연출권을 갖고 현장으로 흩어진다"며 "PD는 VJ들의 보고를 받는다. 각자 흩어진 현장의 정보를 모아서 업그레이드 해서 '이렇게 가봅시다' 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그게 반복되는 연출 구조"라고 설명했다.
"PD는 몸이 하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다 따라다닐 수 없다. <다큐 3일>에 처음 온 PD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가 4명의 VJ들 중 한 명을 따라다니는 거다. 직접 인터뷰 하려고 하고. 그게 관습대로 하는 건데, 결국에는 다시 센터 자리로 돌아온다. 현장에서 무엇을 물어볼 것인지, 이 사람을 계속 찍을 것인지, 다른 사람을 더 찾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PD의 디렉션 하에 VJ가 현장에서 판단한다. 그래서 굉장히 둥근 상태의 기획 원안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현장에서 VJ들이 여기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들을 해야 나중에 (촬영분을) 모았을 때 애초에 서로 약속한 대로 갈 수 있다."(이지운 PD)
이날 두 사람은 방송을 완성하기까지 VJ들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고 연신 강조했다. PD가 아이템에 따라 성향이 맞는 VJ를 선발하고 조합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다음은 VJ에게 온전히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베테랑 VJ들이 <다큐 3일> 팀에 많이 포진돼 있는 이유도 그래서라고 했다.
장소영 작가는 특히 "기술 면에서도 베테랑이지만 무엇보다 진정성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열린 마음으로 이분의 말을 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방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것도 점점 잊어버리고 얘기하게 되는 거다. 처음에는 '카메라, 어우 짜증나'라고 하시지만, 이틀째 삼일째가 되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VJ와 출연자가 대화를 한다"고 귀띔했다. 이어 VJ들이 흔히 겪게 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어떤 할머니가 어느 VJ한테는 '나는 이런 거 너무 싫고 인터뷰 안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둘째날 셋째날 엉뚱하게 다른 감독님한테 잡힐 때가 있다. 그 분이랑은 또 성격이 맞는 거다. 그러면 미주알 고주알 자기 이야기를 막 털어놓으신다. 처음 VJ는 이 할머니가 여기 가서 인터뷰한 걸 모르지 않나. '아 실패했어, 그 분은 안 될 것 같아'라고 했는데 테이프를 까보니까 다른 카메라에 실컷 수다 떠는 할머니가 그 할머니였던 거다. 퍼즐이 그런 식으로 맞춰지는 일이 자주 있다. 이런 건 예상이 안 되는 부분이다." (장소영 작가)
"촬영분을 보다 보면 다 보인다. 첫날에는 계속 거절 당했다가, 둘째날에는 이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되고. 누가 왔다갔다 하는지, 그 중에 재미있는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셋째날에는 그 사람 집에 가보기도 하고. 이게 뭘 뜻하는 거냐면, 그만큼 처음이 어렵다는 얘기다. 상황을 뚫는 것은 VJ 개인의 힘이 굉장히 크고 이들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다 있다. 길 가다가 카메라가 와서 물어보면 보통 경계하고 싫어하지 않나. 방송만 봐서는 그런 고통을 모르는데, 전체 촬영분을 보면 보인다. 우리나라에 이런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VJ 풀이 많지 않다. 단언할 수 있다." (이지운 PD)
3000분 촬영 중 방송에 담기는 건 45분
72시간 동안 4대의 카메라가 꼬박 촬영한 3000분 내외 분량의 영상 중에 방송에 담기는 것은 겨우 45분 정도다. 그렇다 보니 안타깝게 잘라내야 하는 장면들도 많단다. 장 작가는 "편집은 버리는 게 묘미라고 하던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은 그게 아니다. 이것도 넣고 싶고 저것도 넣고 싶고 늘 아쉽다"고 토로했다. 방송에 담지 못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두 사람은 "그거 얘기하자면 밤도 샐 수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된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방송에는 안 나갔지만 작년에 만난 충청도 할머니가 제작진을 만나서 우시는 장면이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경로당이 문을 닫았다.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서 서로 안부도 묻고 밥도 함께 해드셨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되니까. 자식들이 일일이 살펴야하는데 그게 힘드니까 요양원으로 보내버리신거다. 아직 건강하신데. 평생 옆집에 사시던 할머니가 울면서 '나도 이제 저렇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근데 이해는 한다. 경로당이나 마을이 돌보던 노인을 이제 자식들이 돌봐야하는데 노인을 누가 돌보겠냐. '알지만 너무 슬프다, 내 친구 어떡하냐'고 우셨지." (장소영 작가)
매주 바쁘게 돌아가는 제작 일정이지만 그 와중에도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제작진들의 고민도 적지 않았다. 장 작가는 "요즘 프로그램의 인기가 예전같지가 않아서 고민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과 새롭게 해나가야 하는 것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느라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지상파 밖에 머물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여기는 오래된 지상파의 맛집인데, 여전히 맛있다'는 걸 어떻게든 알리고 싶다. 사실 제작진들의 고민이 많다. 예전에는 줄서서 먹는 맛집이었는데 지금은 식당도 많아지고 맛있는 것도 많아졌지 않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 음식에 자신이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옛날처럼 줄을 안 설까. 그 많던 시청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것만 찾았었는데, 이제는 움직이려고 한다. 전단도 돌리고. 홍보도 해야지." (이지운 PD)
<다큐 3일> 제작진들의 이러한 고민은 모바일 전용 콘텐츠 '조연출 다이어리'로도 이어졌다. 본 방송 이틀 전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는 조연출 다이어리는 AD들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5분 내외의 영상이다. 내용은 대개 본방송에 나오지 않는 비하인드 스토리로 채워진다. 안산 다문화특구 편에서는 주요한 AD가 직접 다문화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기도 하고, 카약 특집에서는 72시간 카약 타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정제된 분위기의 본방송과 달리 인터넷 '밈'을 활용하는 등 속도감 있고 자유로운 편집도 재미 포인트다.
▲KBS <다큐멘터리 3일>의 이지운 PD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정민
이지운 PD는 "본방송 위주의 경직된 유통을 좀 벗어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예산은 없고, 잘려나가는 B컷들이 아깝기도 했다. 우리 조연출들 실력이 되게 좋아서 직접 만들어보라고 했다"며 "(조연출이 직접 체험하는) 과정들도 매번 촬영 테이프에 녹아있었는데 그동안은 그걸 다 버렸다. 그런 걸 한 번 공개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탄생 계기를 설명했다.
앞으로도 <다큐 3일>의 본령을 잊지 않고 일상을 기록해 나가겠다는 제작진들은 무엇보다 휴머니즘에 그치지 않으려 한다는 고민과 다짐을 전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얘기만 하는 프로그램으로 비쳐진다. 그 부분이 작가로서 되게 고민이다. 좋은 얘기만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예쁜 얘기만 하시잖아요', '미화하시잖아요' 이런 반응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어떤 한 공간의 음과 양을 같이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게 점점 쉽지 않다. 좀 더 치열하게, 더 많은 사람과 더 밀착적으로 얘기를 해야 되는데 아직은 마스크를 끼고 있고. 현재로서는 요즘 세태를 그려내기에 바쁘다. 코로나를 지나 좀 더 시기를 기다려야 하나. 고민을 더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다." (장소영 작가)
"<다큐 3일>을 휴먼 다큐로 규정하시면 좀 서운해하는 제작진들이 있을 거다. 그동안 훌륭한 저널리즘의 기능을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사직격>이나 <KBS 스페셜>같은 프로그램에서 현안을 다루는 시각과 문법이 있겠지만, 우리 프로그램만의 해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정인이 사건(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을 <다큐 3일>의 방식으로 다룬 게 지난 2월에 했던 나주 영아원 편이다. 르포와 다큐멘터리 사이, 이 이야기는 저희 제작진 내부의 굉장히 오래된 논쟁이다. 언제나 고민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이지운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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