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시즌 1 예고 이미지
MBC
시즌 1이 성공을 거두면서 출연자 섭외는 좀 수월해지지 않았냐고 질문을 던지자 최 작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청자는 많아졌지만 실제 촬영으로 이어지기가 어려웠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촬영에 동의해야 하고 6개월여의 시간 동안 카메라로 일상을 찍을 수 있어야 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고인을 가상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느냐였다.
VR 제작을 위해서는 다양한 표정이 담긴 여러 각도의 사진, 음성, 영상들이 필요했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가족들이 흔치 않았다. 최 작가는 섭외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특히나 이 프로그램은 아이템의 운이 있는 것 같다. 운명처럼 저희에게 온다"고.
실제로 시즌 2 '로망스' 편 체험자와의 만남은 추모공원에서 시작됐다. 최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를 모신 추모관에서 고 성지혜씨와 그의 가족사진을 보고 이끌렸다. <너를 만났다> 제작진은 추모공원을 통해 김정수씨 가족의 의사를 물었고, 그는 이 연결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아내가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작가님을 보낸 것 같다"고.
실제로 김정수씨는 출연을 반대하는 사춘기 딸아이들을 설득해가면서까지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 정수씨의 마음을 알기에 제작진 역시 조심스러웠다. 6개월 간 촬영하면서 아빠와 다섯 아이들의 일상에 대한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관찰자가 됐다. 엄마의 빈 자리에도 불구하고 남은 가족의 삶은 계속되니까. 걷잡을 수 없이 슬픈 순간도, 슬픔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부러 웃는 모습도,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도 다 삶이니까. 제작진의 노력을 알아봐 준 것일까. 처음엔 출연을 반대하던 아이 둘도 점차 마음을 열었다.
"감동적이었던 게 이 가족은 VR 체험을 앞두고 '엄마가 온다'고 표현을 한다. '엄마가 오는 날', '엄마가 올 때', '우리 엄마가 오면요. 이런 모습으로 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더라. 그게 제작진에게는 굉장히 감동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가족들을 위해 우리도 정말 잘 만들고 싶었다."
이 '잘 만들고 싶은 마음'에 제작진은 애가 닳았다. PD도, 작가도, AD도, 그래픽 팀도 각자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제작진은 김정수씨와 아내, 다섯 아이들이 10년 가까이 산, 추억이 가장 많이 깃든 집을 구현해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아파트 구조와 가구 배치, 온 가족의 손때 가득한 물건 등 VR로 구현 가능한 모든 사물을 재질까지 따져가며 만들어냈다. 그런 디테일들이 높은 몰입도를 낳았다. VR 체험 당일, 김정수씨의 체험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우리 집이다!" 외쳤다.
김씨는 VR 체험 내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3년 간 억눌러왔던 그리움이 터져 나온 것일까. 가상 현실 속의 아내일지라도, 멀리서 그림자라도 보고 싶다던 그는 손을 떨며 아내의 얼굴선을 어루만졌다. 체험이 끝난 뒤 우는 아빠에게 "딸기 코 됐다"며 농담을 건네던 네 딸들 역시 아빠의 품에 안겨 그동안 참아왔던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엄마에 대한 기억이 가장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막내가 예상 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빠 품에 안겨 우는 둘째 누나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괜찮아"라고 위로한 뒤 천진난만하게 스튜디오를 뛰어다녔다.
"휴먼 다큐도 오래 했고 가족도 잃어보았기 때문에 '상실'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다 착각이었구나 싶더라. 내가 아는 건 극히 지엽적인 것이고 삶에 모르는 영역이 정말 많구나 하는 걸 느꼈다."
쉬운 길 택하고 싶지 않아...방송 이후 더 활발해진 출연진
▲'너를 만났다' 최미혜 작가 MBC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의 최미혜 작가.
이정민
출연자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VR로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일까. 방송이 나간 뒤 일부 시청자들은 "체험을 할 때 출연자의 감정 해소를 위해 인형을 가져다 놓거나 사람을 세워 둘 순 없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제작진은 의견이 조금 달랐다. 세상을 떠난 가족을 '가상' 현실로 만나는 것이지 '가짜'인 대역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 작가는 "VR 세트장에 인형이나 타인을 세우는 건 오히려 쉬운 방법"이라며 "출연자들의 감정이나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깊이 고민해서 세운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너를 만났다> 시즌 1과 2 방송 후, 세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달리, 출연자들의 만족도는 높다고 한다. 시즌 1의 엄마 출연자는 방송 이후에 유튜브와 브런치 등을 통해 세상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시즌 2 출연자 김정수씨는 "방송 볼 때 가족 모두 슬픔보다는 웃으며 즐겁게 시청했다"며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제작진에게 근황을 전했다. 누구보다 출연자들의 근황을 걱정하던 최 작가에게는 가장 안심되는 소식이었다.
"(출연자들에게)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슬픈 동시에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특히 아이들에게 우리 방송이 아픔을 주는 자료가 아니라 엄마를 기억하는 추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나중에 이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영상을 보여주며 '외할머니가 이런 분이었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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