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스포츠 영웅을 논할 때 야구의 박찬호, 골프의 박세리, 축구의 '손차박(손흥민, 차범근, 박지성)'과 함께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과 2014년 소치 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는 김연아는 현역 시절 뛰어난 실력으로 세계신기록을 무려 11번이나 경신했고 그 명성에 걸맞은 스타성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모든 스포츠 선수들의 커리어를 돌아보면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가 전성기를 유지하고 다시 기량이 떨어지는 과정이 있다. 하지만 김연아는 주니어 선수로 국제무대에 등장했을 때부터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끝낼 때까지 출전했던 모든 국제대회에서 3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마디로 국제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퇴장할 때까지 김연아의 모든 커리어가 '전성기'였다는 뜻이다.
김연아를 제외한 모든 스포츠 선수들에게 기복이 존재하듯 가수들에게도 엄연히 기복이라는 게 존재하기에 모든 무대에서 최고의 목소리를 들려주진 못한다.
하지만 이 가수는 최고의 실력파 가수들만 출전했던 노래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시즌3까지 모두 출연하면서 3위 밖으로 떨어진 적이 단 4번에 불과했다. '여자 김조한'이란 수식어로 데뷔했지만 이제는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가 된 '노래하는 요정' 박정현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 가수의 꿈 안고 한국행
▲ 박정현은 데뷔 앨범을 통해 단숨에 '여자 김조한'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 주식회사 블렌딩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90년, 강수지라는 신인가수가 등장했다. 강수지는 데뷔곡 <보랏빛 향기>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강수지를 '해외파 가수'로 분류하기엔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강수지는 히트곡 대부분을 직접 작사할 정도로 이미 상당히 뛰어난 한국어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박정현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미국 문화에 익숙한 전형적인 이민 2세였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 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본토 가스펠과 CCM을 접했다. 박정현은 중학교 때부터 지역 노래대회에서 대상을 타며 일찍 재능을 드러냈고 "동양인이 차별 받지 않으려면 미국인보다 공부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교육철학에 따라 성적도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가수에 뜻이 있던 박정현은 UCLA대학 연극영화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6년 작곡가 김덕윤에게 스카우트돼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박정현은 국내에서 데뷔 앨범을 준비하던 중 한국에 IMF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회사가 파산하는 등 크고 작은 시련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윤종신이라는 훌륭한 프로듀서를 만나 다시 데뷔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
박정현의 1집 앨범 'Piece'는 1998년 2월에 발매됐다. 타이틀곡은 프로듀서 윤종신이 만든 <나의 하루>. 윤종신 특유의 슬픈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발라드곡으로 '내겐 잊는 것보다 그댈 간직하는 게 조금 더 쉬운 것 같아요'라는 가사가 이 노래의 정서를 대변한다. 박정현은 노래할 때 마이크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쉴 새 없이 허공을 가르는 습관이 있는데 눈 앞에 가상의 악보를 그려 놓고 음을 짚어내는 버릇이라고 한다.
박정현 1집에서 타이틀곡 <나의 하루> 못지 않게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은 < P.S I. Love You >였다. 특히 노래 말미에 나오는 폭발적인 고음 '스캣(무의미한 음절로 흥얼거리는 창법)'은 박정현을 국내에 몇 안 되는 '앨범보다 라이브가 더 좋은 가수'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밖에 윤종신의 슬픈 가사가 돋보이는 <오랜만에>와 임재범과의 듀엣곡 <사랑보다 깊은 상처>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9년 3월에 발매한 2집 앨범에서는 윤종신의 군대후임이었던 하림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작곡가 김형석이 가세했다. 박정현은 2집에서 노영심 작사, 김형석 작곡의 아름다운 러브송 <편지할게요>와 윤종신과 하림이 만든 <몽중인>과 <전야제>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물론 김형석의 <편지할게요>와 하림의 <몽중인>은 장르가 발라드라는 것만 같을 뿐 가사부터 분위기, 노래를 부르는 박정현의 감정까지 전혀 다른 노래다.
데뷔할 때는 R&B를 부르는 교포가수라는 이유로 '여자 김조한'으로 불린 박정현은 2장의 앨범을 통해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로 떠올랐다. 그리고 2000년 가을에 발표한 3집을 통해 달달한 타이틀곡 < You Mean Everything To Me >를 발표해 연인들의 촉촉한 연애감정을 자극했다.
많은 박정현 팬들이 이야기하는 3집 최고의 명곡은 토이 유희열이 만든 <아무 말도 아무 것도>였다. 유희열이 '아무도 부를 수 없을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쓴 곡을 박정현이 완벽하게 부르는 것을 보며 크게 좌절했다는 일화가 있는 바로 그 곡이다. '참 많이 좋았나봐 바보처럼 울기만 하죠. 행복하기를 바란다구요? 그냥 그냥 곁에 있어주면 되잖아'라는 가사가 박정현의 목소리와 만나 노래가 가진 슬픔을 극대화한다.
박정현 1~3집을 프로듀싱한 윤종신은 박정현이 더 이상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보컬리스트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윤종신은 박정현을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음악 천재에게 소개해 줬다. 바로 90년대 서태지, 고 신해철과 함께 가요계를 주름 잡았던 '3대 음악천재'로 불리던 공일오비 출신의 정석원이었다. 그렇게 박정현은 정석원이라는 뛰어난 프로듀서를 만나 불세출의 명반을 만들었다.
'90년대 음악천재' 정석원과 함께 만든 불멸의 역작
▲ 공일오비 정석원과 의기투합해 만든 4집은 완성도와 대중성을 모두 잡은 박정현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 코너스톤
2002년은 월드컵이 열린 해로 거의 모든 대중문화가 월드컵 기간에 올스톱됐다.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나 드라마, 인기가수의 앨범들은 대부분 월드컵이 열리는 6월을 피하기 바빴다. 하지만 박정현은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인 2002년 6월 15일에 4번째 앨범 'Op.4'를 발표했다.
박정현 4집 타이틀곡은 프로듀서 정석원의 역작 <꿈에>. 꿈에서 만난 떠나간 연인을 붙잡으려는 사람의 애절한 바람을 담은 런닝타임 6분여에 달하는 대곡이다. 박정현은 <꿈에>를 통해 데뷔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음악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꿈에 나타난 연인이 꿈이라는 걸 눈치 못 채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그 연인도 꿈인걸 알게 된 후 느끼는 허탈한 감정이 노래가 절정으로 향할수록 점점 드라마틱하게 고조된다.
박정현은 <꿈에> 이후 잔잔한 발라드 <사랑이 올까요>로 활동했지만 박정현 4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꿈에>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1번트랙 < Plastic Flower(상사병) >을 더 좋아했다. <상사병>은 2집의 <몽중인>, 5집의 <하비샴의 왈츠>, 6집의 < Smile >과 함께 박정현 노래 중 섬뜩한 느낌을 주는 대표적인 '광곡'으로 꼽힌다. 노바소닉에서 활동하던 N.EX.T 출신의 기타리스트 김세황이 기타세션에 참여했다.
같은 해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제목이 같은 <생활의 발견>은 노래 분위기는 밝은 듯 하지만 아련하고 쓸쓸한 정석원 특유의 '생활밀착형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박정현도 애드리브나 기교를 최대한 배제한 채 담백하게 불러 노래가 가진 쓸쓸함을 살렸다. 노래 후반부에 남자 보컬이 나오는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공일오비 팬이라면 한 번에 알아 들었을 이 앨범의 프로듀서 정석원이다.
'헤어샵'도 아니고, '미용실'도 아닌 '미장원'라는 옛스러운 제목이 눈길을 끄는 <미장원에서>는 정석원의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 박정현의 변화무쌍한 보컬이 돋보이는 곡이다. 5집의 <미아>와 함께 함부로 노래방에서 도전했다간 노래에 대한 흥미를 떨어트리게 된다는 노래로 박정현도 방송에서는 좀처럼 부르지 않는다. 정석원은 <여자친구 참 예쁘네>와 <나의 어머니>까지 박정현 4집에서 6곡의 작사·작곡에 참여했다.
1~3집에서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하며 주요 노래들에 관여했던 윤종신은 4집에서 작사가로만 두 곡에 참여했다. 헤어진 연인을 잊는 일을 자꾸 미루게 된다는 내용의 발라드 <게으름벵이>와 영국의 록밴드 Asia의 '< The Smile Has Left Your Eyes >를 리메이크한 <이별하러 가는 길>이다. 특히 <이별하러 가는 길>은 썩 높지 않은 초반부에 사람들을 방심시켜 놓고 후반부에 엄청난 고음으로 듣는 사람을 절망시키는 매우 위험한(?) 곡이다.
나이 들수록 목소리 더 깊어지는 최고의 디바
▲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나가수>는 박정현이란 가수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무대였다. ⓒ MBC 화면 캡처
4집 성공 후 약 2년 간 일본 활동을 하고 돌아온 박정현은 2005년 5집과 2007년 6집을 통해 스스로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음악적 독립을 시도했다. 물론 5,6집은 1~4집 때 만큼의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고 방송 출연 빈도도 크게 줄었지만 박정현은 콘서트를 통해 꾸준히 활동하며 팬들과 호흡했다. 2009년에는 윤종신과 재회한 7집 <눈물이 주룩주룩>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회복했다.
그리고 박정현은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명품 보컬리스트로 거듭났다. 박정현은 <나가수>의 원년 멤버로 출연해 시즌 3까지 30번의 경연에서 3위권 밖으로 벗어난 적이 단 4번에 불과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다. 특히 초창기의 나가수는 김건모, 이소라, YB, 임재범, 조관우, 장혜진, 인순이 등 쟁쟁한 가수들이 대거 출연했는데 박정현은 그 사이에서 대부분 베스트3 안에 포함되는 성적을 거뒀다.
박정현은 2015년 새로 시작한 <나가수 시즌3>에서도 MC를 겸하는 부담 속에서 11주 동안 1위 3회, 2위 5회라는 독보적인 성적을 올리며 '나가수의 노래 깡패'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님을 증명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온 박정현도 어느덧 40대 중반이 됐고 2017년에는 7세 연상의 한국계 캐나다인과 결혼했다. 흔히 가수들은 나이가 들면 목소리가 변하거나 과거의 실력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박정현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목소리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대중들은 이런 대단한 가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조금 더 크게 기뻐해도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