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시스 2집은 세련된 음악과 특유의 우울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즈의 나라
작곡과 출신으로 음악적 자부심이 강했던 정재형은 1996년8월에 발매된 베이시스 2집에서 파격적으로 다른 사람의 곡을 타이틀로 들고 나왔다. 바로 심현보가 가사를 쓰고 테크노 밴드 E.O.S의 리더였던 강린이 작·편곡한 (베이시스 기준에서는) 빠른 템포의 <단순한 게 좋아>였다. 정재형은 최신유행하던 5:5 가르마와 선글라스로 한층 멋을 부렸고 두 여성 멤버도 클래식 바이올린 대신 감각적인 디자인의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들고 활동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변덕은 아무리 뛰어난 제작자나 가수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1집 활동에서 베이시스가 너무 무겁고 진지하다고 일갈했던 대중들은 트렌디하게 꾸민 베이시스를 보며 원래 가지고 있던 매력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베이시스는 힘들게 했던 변신을 짧게 마무리하고 원래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베이시스 2집에 <내가 날 버린 이유>를 능가하는 우울한 노래가 있었다는 점이다.
베이시스는 <단순한 게 좋아> 활동을 빨리 끝내고 후속곡 <작별의식>으로 활동곡을 바꿨다. 한국 가요 역사상 최고의 작사가로 꼽히는 박주연이 쓴 우울한 가사에 정재형이 곡을 붙였고 김형석이 슬픈 편곡으로 노래가 가진 우울함을 극대화했다(하지만 노래가 너무 어려워 멤버들도 라이브로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했다). 참고로 정재형은 <작별의식> 활동 당시 외모 잠재력이 폭발하며 잠시나마 미남가수로 군림했다.
베이시스는 극과 극의 분위기를 가진 <단순한 게 좋아>와 <작별의식>으로 활동했지만 대중들은 베이시스 2집에서 그 중간의 느낌이 나는 대중지향적인 노래를 찾아냈다. 바로 베이시스 노래 중 최고 히트곡으로 꼽히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였다. (사실 '소개시켜줘'는 문법상 '소개해줘'라고 해야 맞지만 작사가 김혜선의 '시적허용'으로 이해해 특별히 노래 제목과 가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재형의 보컬을 최소화한 채 바이올린 없이 무대에 오른 두 여성 멤버의 분량이 노래 대부분을 차지하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는 유난히 리메이크가 많이 된 노래이기도 하다. 지난 2000년에는 고호경이 댄스곡으로 리메이크했고 2010년에는 록밴드 럼블피쉬가 리메이크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레드벨벳의 조이가 이 노래를 다시 부르면서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리메이크 10년 주기설'을 이어 받았다.
좀처럼 작사를 하지 않는 정재형이 가사와 곡을 모두 쓴 <간둥이의 슬픔>은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이의 설움을 노래한 곡이다. 당시 간둥이들의 공감을 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8번 트랙 <우는 남자(雨=男子) - 이 시대의 아버지들께->는 가족들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를 비에 빗댄 곡이다. N.EX.T의 <아버지와 나>, H.O.T의 <아빠 사랑해요>, 싸이의 <아버지> 등과 같은 주제를 가진 노래라 할 수 있다.
베이시스 2집의 빼 놓을 수 없는 명곡은 발라드 작사가로서 심현보의 진가가 드러난 12번 트랙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다. 세상을 떠난 남자가 자신을 잊은 여자를 그리워하는 노래로 간주와 후주에 나오는 '만일 아직까지 세상에 사랑이란 게 존재한다면 그건 내 안에 있는 것도 그대 안에 있는 것도 아닐 겁니다. 사랑은 그대와 나 사이의 빈 공간, 그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라는 심현보의 청승 맞은 내레이션 가사가 압권이다.
본색 드러내며 대중들과 가까워진 정재형
▲예능인 정재형은 베이시스 시절과는 전혀 다른 유쾌함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MBC 화면 캡처
베이시스는 2장의 앨범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두 여성 멤버 김아연과 김연빈은 2집 앨범을 끝으로 유학을 떠나며 베이시스에서 탈퇴했다. 홀로 남은 정재형은 1997년 베이시스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비행> <세상의 모든 이별>이 들어 있는 3집 앨범을 발표했다. 정재형은 1999년 김동률이 가사를 쓴 타이틀곡 <체념>이 들어 있는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 후 프랑스로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의 파리고등사범음악원에서 영화음악과 작곡 과정을 공부한 정재형은 프랑스 유학 중에도 영화 <중독> <오로라 공주> <미스터 로빈 꼬시기>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의 영화음악을 맡았다. 2004년에는 남다른 친분이 있는 엄정화의 8집 'self control'을 프로듀스하면서 타이틀곡 <Eternity>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90년대부터 시작된 엄정화와의 우정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02년 솔로 2집 <나같은 사랑이라면>을 발표했던 정재형은 2008년에 발표한 3집 타이틀곡 <Running>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가수로서도 건재를 과시했다(Running>을 통해 정재형을 알게 된 일부 대중들은 그가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원곡자임을 알면 적잖게 놀란다). 현재는 유희열이 수장으로 있는 안테나 뮤직의 맏형으로 음악과 예능을 병행하며 활동하고 있다.
만약 정재형이 2010년 <놀러와>에 출연하지 않아 개그맨 이봉원과 닮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또는 2011년 '무도 가요제'에서 정형돈과의 케미를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베이시스 출신의 음악 잘하는 뮤지션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아픔에 같이 눈물을 흘리고 동생의 구박에도 마냥 해맑게 웃고 있는 지금의 정재형이 '우울함의 끝'을 노래하던 베이시스 시절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건 분명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