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의사들은 환자에게도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며 사과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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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유연석) 역시 열등감이 없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재벌 아들이지만, 돈이나 권력으로 군림할 생각이 전혀 없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사로서의 본질적 의지만이 그를 움직인다. 그는 환자들의 처지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자신의 월급을 털어 수술비가 부족한 환자들을 돕는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자처한다. 이는 물질과 권력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준완(정경호)은 그야말로 솔직하다. 수술방에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도 내고, 레지던트에게 종종 화도 낸다. 하지만, 그의 솔직함에는 꼼수가 없다. 그는 그 순간 상황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폄하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뒤끝이 없다. 화를 내고 과도하게 사과하며 미안해하지도 않고, 이를 이용해 타인을 통제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 역시 그가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주인공 5인방 뿐만이 아니다. 각성수술 도중 환자에게 자신의 꿈이 좌절된 경험을 털어놓는 신경외과 레지던트 치홍(7회, 김준한), 거절당할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석형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민하(10회, 안은진) 역시 열등감 없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자존감 높은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편견없이 평등한 인간관계
열등감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이들은 소위 '꼬인 마음'이 없다. 때문에 편견을 갖지 않고 보다 열린 마음을 사람을 대하고 누구와도 '평등한 관계'를 맺는다. 먼저, 성별에 따른 편견이 없다. 홍일점 송화와 다른 4명의 친구들은 이성보다는 사람으로서 서로 교류한다. 송화를 둘러싼 애틋한 감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은 송화를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대한다.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성역할에 갇히지 않고 진솔하며 평등하다.
환자를 대할 때도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한다. 실수가 생겼을 땐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때로는 자기 개방도 한다. 자신을 환자가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이들의 모습에 환자들은 스스로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병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더욱 확고히 다진다. 또한 이들은 환자들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9회 딸의 이식수술을 앞두고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익준은 "개인의 선택이니까 비난은 못하죠"라고 말한다. 이처럼 환자들의 다양한 처지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몸을 맡기고 픈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아가 병원이라는 조직 내에서도 평등한 관계를 추구한다. 병원의 경영진인 소위 윗분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간호사, 수련의 등과의 관계에서는 교수라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각자의 다른 역할들을 존중하고, 이들의 노력과 수고를 늘 기억한다. 행여 후배들을 심하게 다그친 후에는 '미안하다'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 뿐 만이 아니다. 드라마 속 '높은 사람'들인 병원장(조승연)과 이사장(김갑수) 역시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멸치똥을 따며 수다를 떠는(5회) 인간으로 그려진다.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의사들의 마음에 환자들 역시 스스로를 더욱 소중히 대한다. tvN
이처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인물들은 참으로 이상적이다. 열등감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누구와도 편견없이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들. 아마도 이는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에이 저런 의사들이 어디있어' 하면서도 이 드라마에 흠뻑 빠져들고 힐링을 얻는다. 아마도 이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모습이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내면에 이들처럼 열등감 없이, 누구나와 평등하게 관계 맺고, 서로를 보살피고 존중하며 살아가고픈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런 우리 내면의 이상향을 보여주기에 매력적인 것일 테다. 판타지면 어떤가.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에서 잊고 있던 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픈 욕구가 일깨워진다면, 조금이라도 더 진실하게 살아가며 서로를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만으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주는 힐링은 충분히 의미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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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