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임 낫 데어>의 한 장면
스폰지
"게걸스러운 대중들이 이제 그의 남은 광기를 나눠 갖겠지요."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 영안실 침대에 누워있는 주드의 시체 위로 들리는 묵직한 목소리다. 잭, 주드, 존, 로비. 이들은 모두 언론과 대중의 왜곡된 시선에 의해 해석되고 재단된다. 그들의 언어, 그들의 과거는 이내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로 돌아오고, 누군가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 혹은 그의 자유를 제한한다.
영화가 시작 되고, 영화의 제목(I'm not there)과 함께 배우들의 이름이 단어의 몇몇 문자들만 보였다가 나중에야 온전한 원래 형태로 화면에 오른다. 부분의 조합이 원래의 단어, 문장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추측할 뿐이고, 이것은 이 영화가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토드 헤인즈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들에 상상력을 발휘해 한 편의 근사한 전기 영화이자 음악 영화를 완성했다. 그는 밥 딜런의 인생을 아는 척 자만하지 않고, 영화에 등장하는 기자처럼 그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영화 <아임 낫 데어>의 한 장면스폰지
여러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케이트 블란쳇이 특별히 눈에 띈다. 관객은 우선 밥 딜런과 너무도 닮은 케이트 블란쳇의 외모에 놀라고, 여자가 남자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캐릭터만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녀의 연기력이 인정받은 지는 이미 오래지만 <아임 낫 데어>를 통해 배우로서 그녀의 가능성은 보통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무엇도 가능한 수준으로 확장된다.
호주 연극계에서 이미 유명했던 케이트 블란쳇은 영화 데뷔 2년 만에 <엘리자베스>(1998)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만 대중들에게 그녀의 이름은 무명에 다름없었다. 2001년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에서 꽤 비중이 큰 조연을 거쳐 2004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에비에이터>에서 캐서린 햅번을 연기하며 대중적인 지지도를 확보했다. 이어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고한 감독들, 짐 자무쉬, 웨스 앤더슨, 리들리 스콧, 우디 앨런 등 여러 감독들과 함께한 흥미로운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2017)와 같은 블록버스터에서부터 오는 2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실험 영화 <매니페스토>(2016)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총 천연색이다. 또한 그는 각 영화 안에서 그 영화에 가장 잘 맞는 색을 취하고 있다.
다다이즘부터 누벨바그까지, 20세기 아티스트들의 선언들을 영상으로 옮긴 <매니페스토>에서 전혀 다른 13명을 연기하는 그녀를 보면 단지 실감나는 분장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뿜어내는 각각의 다른 에너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영화를 선택하고, 어떤 연기를 보여 줄지 쉽게 가늠할 수 없지만 당분간, 아니 꽤 오랫동안 그녀의 출연이 곧 그 작품을 봐야할 이유가 될 것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